尋劍堂

금강경(金剛經) 강의(15) - 13. 如法受持分

難勝 2008. 7. 7. 04:37

                            금강경(金剛經) 강의15


13. 如法受持分 (법답게 받아 지니다)


본문: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云何奉持我等佛告須菩提是經 名爲金剛般若波羅密以是名字汝當奉持 所以者何 須菩提佛說般若波羅蜜卽非般若波羅蜜是名般若波羅蜜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所說法不 須菩提白佛言世尊 如來 無所說 須菩提 於意云何 三千大天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 須菩提言 甚多世尊 須菩提 諸微塵 如來說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 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甚多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 운하봉지 불고수보리 시경 명위금강반야파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소이자하 수보리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소설법부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래 무소설 수보리 어의운하 삼천대천세계 소유미진 시위다부 수보리언 심다세존 수보리 제미진 여래설비미진 시명미진 여래설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 견여래부 불야세존 불가이삼십이상 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설삼십이상 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 이항하사등신명 보시 약부유인 어차경중 내지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심다


해석: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이 경전을 무엇이라 이름하오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전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가 마땅히 받들어 지녀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이니 아니라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어떤 법을 설명한 바가 있느냐 없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아무것도 말씀하신 바가 없사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먼지의 수를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심히 많사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먼지를 먼지가 아니라고 말하나니 이것이 이름이 미진이며 여래가 말하는 세계도 그것이 세계가 아닌 것이니 이것이 이름이 세계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오면 여래께서 삼십 이상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곧 상이 아니오라 이름을 삼십이상이라 하시는 것이옵니다.』

『수보리야, 만일 어떤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있어서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몸과 생명을 가지고 보시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 가운데 내지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해 설명해 주었다면 그 복이 심히 많으니라.』


강설(講說): 제 십삼분(第十三분)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인데 부처님 뜻에 어기지 않도록 이 경전을 받아 가진다, 수지(受持)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경의 문자(文字)를 받아 가지는 형편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견성(見性)을 해 가지고 이 문자이전(文字以前)의 실상(實相) 자리의 내용을 체득(體得)해서 수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완전히 성불(成佛)해 가지고 부처님을 수지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범부가 우선 부처님 흉내라도 내어야 할 것이니 먼저 근본적으로는 견성을 해라. 그래서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닌 중간 보살이라도 되어서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행하라.」 그것이며 나중에 필경에는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법을 지니는 것을 법답게 진리와 같이 이 경전(經典)의 정법(正法)인 부처님 법을 받아 가진다는 뜻으로 여법수지(如法受持)라 한 것입니다.


본문: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佛告須菩提 是經名爲 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 운하봉지 불고수보리 시경 명위금강반야파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해석: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이 무엇이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였다. "이 경은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녀라.


강설(講說): 이제 수보리 존자께서 사십년 동안 부처님을 모시고 밤낮 없이 많이 듣기는 했지만 질서 정연하고 조리(條理)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누구든지 배우기만 하면 제나름대로 깨닫고 했는데, 이번에 금강경 설명하시는 것을 들으니 참 그야말로 대각세존(大覺世尊)이시라고 느껴졌고 마음이 기뻐서 「이 경전 이름을 뭐라고 저희들이 이름하여 받들어 모시겠습니까.」하고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 경 제목을 약하여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하셨습니다.  이 금강경의 금강철퇴를 가지면 무엇이나 두들겨 부수어서 안 깨지는 것이 없고 다른 것을 가지고는 이것을 깨뜨릴 수가 없는 보물(寶物)입니다. 이것은 여물기만 해도 안 되고 날카롭기만 해도 안되며 굳세고 날카롭고 아주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면서 만사만능(萬事萬能)하며 환하게 통달해서 세간중생들 법이나 출세간의 성불하는 보살들 법이나 부처님세계 할 것 없이 하나 빠짐 없이 환히 다 통달한 지혜에 견주어 붙인 이름이 금강입니다. 말하는 이 자리 말 듣고 앉은자리, 그 자리가 불멸의 존재고 영원불멸의 생명체인 동시에 만사만태(萬事萬態)를 다 통달해 가진 금강반야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금강에다 이 마음 자성자리를 비유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지혜이므로 반야라 한 것이니 반야는 곧 지혜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지식은 과학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는 것으로 이런 지혜는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본분(本分)을 망치도록 하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모든 사람을 결과적으로 지옥으로 보내고 꽁꽁 뭉쳐져서 생사에 윤회하도록 만드는 이야기뿐입니다. 금강과 같은 그런 존재가 있는데 말하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 하는 것을 가리키는 이야기가 참된 반야고 지혜입니다. 이렇게 자성(自性)만이 오직 있는 참 구공(俱空)까지 된 그것이 실상반야(實相般若)인데 그러나 그 실상반야를 깨달아 가지고 거기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소승나한(小乘羅漢)이 되어 버릴 뿐이므로 그 때문에 성불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육도만행(六度萬行)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행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이 복혜쌍수(福慧雙修)입니다. 그 방법은 곧,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의 여섯 가지인데 이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마지막 바라밀인 지혜바라밀 하나만 빼 놓고는 앞의 선정하는데 까지는 전부 복을 닦는 수행입니다. 한량 없는 복 닦는 방법이니 우주를 점령해서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그만한 신통조화(神通調和)를 성취하기 위해 닦는 것이 앞에 다섯 가지 복짓는 방법입니다.  마지막 지혜바라밀이 곧 복혜쌍수(福慧雙修)인 것입니다.

  또한 이런 법을 다 듣고 그렇게 해야 하겠다고 깨닫는 그것이 반야이고, 필경 견성(見性)까지 해서 견성한 뒤에 하는 수도(修道)가 진짜 수도인데 그렇게 해 가지고 수지(受持)해 올라가야겠구나 하는 것도 내내 그 자리가 하는 것이고 수지 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반야입니다.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이름하라 하셨고 이런 뜻으로 받들어 지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본문: 所以者何 須菩提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소이자하 수보리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해석: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는 것은 반야바라밀이니 아니라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강설(講說):그 다음에 부처님께서 왜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지어 가지라 했느냐 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반야바라밀 . 관조반야바라밀 . 실상반야바라밀의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서 이제까지 그게 실지로 말하면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설명해서 이 문자반야는 어떻고 또 관조반야는 어떻게 살피는 것이라 했지만 실은 살필 것도 없다. 마지막 자성자리인 실상반야는 어떻고 어떤 것이라 설명했지만, 또 그래서 그것을 실천해서 바라밀을 해서 부처가 되고 하는데 지혜가 제일이니까 그랬지마는 사실은 그게 반야바라밀이 아닌 것이므로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긍정하시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시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것으로 언제나 같은 말씀 같은 그런 내용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그 말씀하시는 구절(句節)에 의지해서 그 구절은 해결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여지 것 고구정령(苦口叮口寧)으로 이십년 동안 설명하셨는데 이제 「사실은 그게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문자나 반야에 의지해서 걸려 있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보시하는 것이나 계행 가지는 것이나 인욕이나 다 잘하면 세상에 알려지고 저절로 밖으로 드러납니다. 또 정진하는 것도 모두 보고 알 수가 있고 또 선정한다고 앉아 가지고 며칠씩 먹지도 않고 하게 되므로 그것도 알 수 있습니다. 요새 미술가들도 선정과 같은 그런 것이 있습니다. 한 일 주일씩 안 먹고 삼매(三昧)에 들어가서 구상을 합니다. 우리 한국에도 그런 굉장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일 주일씩 어떤 땐 한 달씩 자기도 모르고 앉아서 구상하고 그럽니다. 이렇게 일종의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가면 자연히 지혜가 나옵니다. 이 여섯가지 바리밀 가운데 구경(究竟)에 들어가면 다 하나가 됩니다. 이 금강경은 반야바라밀을 밝히는 경전이고 반야를 역설(力說)하는 경전이기 때문에 복 짓는 수행도 따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수즉파파즉수(水卽波 波卽水)로 물과 물결을 둘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복 짓는 것이나 지혜를 닦는 것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반야바라밀을 그렇게 애써 설명했지만 그게 반야바라밀이 아니니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해라.」 하신 말씀에 이해가  잘 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역시 같은 뜻입니다. 견성하기 위해 참선한다고 벽을 향해 돌아앉아 있지만 그것은 초학자(初學者)가 금강반야(金剛般若)를 체득해야 하겠으니 이 마음자리를 깨닫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지, 실상금강이란 마음자리에서는 그것은 다 버려야 할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금강반야의 실체는 아니고 하나의 방법으로 설명하느라고 이름한 것뿐입니다.

  바라밀이다, 도피안이다, 하는 말은 생사니 번뇌니 망상이니 하는 것이 떨어져서 불생불멸하고 영원불멸하는 생명체가 온전히 티 하나 없이 드러나면 도피안이고 이것을 성불했다, 생사를 해탈했다, 그럽니다. 그때 가면 일체가 무소부지(無所不知)하고 무소불능(無所不能)한 본체의 지혜가 나타납니다. 그걸 설명하느라고 금강이니 반야바라밀이니하고 또 부인(否認)하고 그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마음 자체가 곧 반야바라밀이 다 되어 있습니다. 이미 말씀은 다 끝나신 것이지만 이것을 문자로 설명하면서 틀림없이 이론으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일을 위해 「불설 반야바라밀은 곧 그것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니라.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본문: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有所說法不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來 無所說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소설법부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래 무소설

해석: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어떤 법을 설명한 바가 있느냐 없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아무것도 말씀하신 바가 없사옵니다.』


강설(講說): 『수보리야, 여래께서 어떤 법을 설한 게 있느냐.』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한 바 아무 법도 없으십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시고 다녔지만 한 번도 입을 떼신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반야경을 네 곳에서 십 육회의 법회를 가지면서 설법하셨습니다. 그런데「내가 무슨 말한 법이 있느냐.」 물으니까 「아니 올시다.  부처님께서 입 떼신 일도 없고 언제 누구보고 법문 한 말씀 못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은 지금 계속 얘기하시고 계시면서 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실상반야는 말로나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고 문자로 기록 할 수는 더욱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당신께서 소개하고 싶은 것을 소개하는 말씀이 아니라 필경 아무도 모르게 되어 있는 자리고 말로서는 소개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깨친다고 하는 것은 번뇌 망상을 제거해서 장난치던 그 사람이 장난 안 하고 앉아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당 지옥의 생각을 해서 꿈을 꾸고 돌아다니다가 꿈꾸는 생각을 걷어 버리니까 눈 뻔히 뜨고 꿈꾸는 것이고 꿈을 깨 놓고 보면 잠 자본 일도 없고 꿈꾼 일도 없고 그렇습니다.  꿈속에도 그 사람이고 꿈 밖에도 그 사람 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실 부처님께서 당신 말씀하고 싶은 그 얘기를 한번도 얘기해 보지 못합니다.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한테 나도 꿈꾸는 몸뚱이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 꿈속에 들어가서 얘기를 실컷 하는 격이니,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고 그저 헛 말 하고 앉아 있는 것이고 잠꼬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잠꼬대를 가지고 얘기한다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꿈을 깨고 보면 꿈속에서 하던 일은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수보리 존자 말씀이 「부처님께서 언제 무슨 말씀하셨습니까.」하고 반문을 했고, 부처님께서도 「네 말이 옳다.」고 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몽중지사(夢中之事)니 꿈꾸는 중생들과 상대하는 얘기인데 또 다시 술에 취해 가지고 여기가 동쪽인지 남쪽인지도 모르고 헤메는 판이므로 이렇게 달래 주는 것이지만 턱도 안 닿는 얘기입니다. 비록 술이 취해서 정신의 착란을 일으키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런 잠꼬대 같은 말을 가지고「내가 말한 일이 있느냐」고 하니까 「말이 안됩니다.  금강경이고 반야고 이걸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그게 무엇인지 그 주인공 주체를 찾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어떤 법도 금강경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하신 것입니다.


본문:須菩提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 所有微塵 是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須菩提 諸微塵 如來        說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수보리 어의운하 삼천대천세계 소유미진 시위다부 수보리언 심다세존 수보리 제미진 여래설비미진 시명미진 여래설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해석:『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먼지 티끌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여래가 말한 먼지 티끌은 먼지 티끌이 아니므로 먼지 티끌이라 하며 여래가 말한 세계도 세계가 아니므로 세계라 하느니라.』


강설(講說): 부처님께서 또 수보리 존자에게 물으십니다.『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먼지, 삼천대천세계를 구성한 그 전자의 수가 많으냐 많지 않으냐.』 하셨는데, 수보리존자 경계로 봐서는 우리가 콩 한 개 보는 만큼 쉽게 압니다. 그래서『참 많습니다, 세존이시여.』하고 사뢰었습니다. 그러나 수보리 존자의 경계로 봐서는 엄청날 것도 없습니다. 여기서는 일반 중생을 대신해서 하는 말씀이므로 「참 많으옵니다.」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리고 수보리야, 이 먼지 이 미진 그것을 부처님은 미진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 미진이라고 내가 설명했던 미진이 그게 곧 미진이 아닌데 그것을 미진이라고 말하며, 여래가 말하는 세계도 세계가 아니니 이 이름이 세계니라.」하셨습니다.  천백억 지구덩이 별세계가 모인 것을 사바세계라하고 극락세계도 무수한 불세계(佛世界)중 하나인데, 화엄경(華嚴經) 같은 데에서는 화장찰해(華藏刹海)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맨 밑에 무한대의 허공 가운데서 무엇하나를 근거로 해 가지고 이십중광대찰(二十重廣大刹)이 이루어져서 스무 층의 세계가 벌어집니다. 이 한 층계 세계의 거리가 얼마냐 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열 배, 곧 백억의 지구의 열배에 해당하는 세계를 부순 먼지를 십중찰미진수(十重刹微塵數)라 하는데 이 미진수가 다하도록 별나라 하나에 먼지 하나씩 놓아서 이 미진수가 다 하도록 무한히 올라간 거리 그것이 화장세계의 한 계층의 거리입니다.

  여기서 찰(刹)자는 절찰자로만 알지만 세계란 뜻입니다. 십중찰세계 곧 지구덩이 백억배에 해당하는 삼천대천세계의 열 배나 되는 지구덩이들을 전자나 원자로 환원시킨다면 그 수가 불가사의한 무한대의 수일 것입니다. 불보살이나 헤아릴 수 있는 이렇게 많은 수의 전자 원자를 가지고 지구덩이 하나 지나갈 때마다 한 개씩 놓고 올라가서 그 전자가 다하도록 수 없이 많은 지구를 일직선으로 통과해 올라갑니다. 이렇게 해서 십중찰세계의 미진수가 다 하도록 올라가서 이렇게 하기를 동서남북과 네 간방(間方) 상하방(上下方)의 사방으로 다 올라간 세계, 거기엔 부처님 계신 세계도 있고 안 계시는 세계도 있습니다. 부처님이 안 계신 세계는 범부 세계인데, 지금 우리 세계는 불세계 아닌 것으로 됐습니다.  그렇지만 대장경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아주 불세계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십주찰세계의 전자 . 원자가 다하도록 한 것을 한 계층으로 해서 이렇게 이십층이나 올라간다고 그랬는데 이것이 하나의 화장찰해입니다.

  현대의 천문학자들도 이렇게 광대무변한 세계는 측정(測定)하지 못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굉장한 세계를 설명해 놓으셨지만「그건 세계가 아니니 그래서 세계라고 하느니라」 그러셨습니다. 「미진은 미진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미진이라 하고 세계가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세계라 한다.」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본문: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 不也世尊 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        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 견여래부 불야세존 불가이삼십이상 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설삼십이상 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해석: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오면 여래께서 삼십 이상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곧 상이 아니오라 이름을 삼십이상이라 하시는 것이옵니다.』


강설(講說):『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히 삼십이상으로, 부처님의 설흔 두가지 거룩한 특별한 상과 여든가지 뛰어나게 생긴 모양(八十種好)으로 여래를 친견(親見)할 수 있느냐.  부처님을 뵐 수 있느냐 없느냐.』『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친견 할 수 없는 것이옵니다. 어째 그러냐 하오면 여래께서 삼십이상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곧 이것이 상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삼삽이상>이라 하신 것이옵니다.』

  부처님의 삼십이상도 비록 육도 만행(六度萬行)을 하고 억만겁 동안 몸뚱이와 온갖 것을 남을 위해 보시한 공덕으로 얻어진 거룩한 상호(相好)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도 역시 세계나 먼지 처럼 상대적으로 있는 허망한 거짓 존재이며 따라서 상(相)이 아닙니다. 육체의 오장육부(五臟六腑)나 혈액(血液)과 신경(神經)등이 다 물질에 불과하고 그 물질은 곧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삼십이상 이라고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라 역시 다생겁(多生劫)으로 보살의 인행(因行)을 닦으면 그 정도에 따라서 상호도 거룩해지고 하나하나 갖추어지게 되며 그래서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닌 도리를 밝힌 말씀입니다.


본문: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 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 受持四句偈等 爲         他人說 其福甚多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 이항하사등신명 보시 약부유인 어차경중 내지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심다

해석:『수보리야, 만일 어떤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있어서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몸과 생명을 가지고 보시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 가운데 내지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해 설명해 주었다면 그 복이 심히 많으니라.』


강설(講說):『수보리야 만일 어떤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있어서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몸뚱이와 생명을 가지고 보시를 했다면 옷 없는 사람․돈 없는 사람․밥 없는 사람을 위해 돈도 주고 옷도 주고 재산 다 털어 주고 나서 더 줄 것이 없으면 코도 떼 주고 온갖 것을 다 보시하기를 항하의 모래수처럼 많은 몸을 버려서 보시한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이 있어서 이 경전 가운데 내지 사구게만이라도 잘 수지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 그 복이 심히 많나니라. 삼천대천세계에 먼지 수 같은 몸뚱이를 가지고 여러 백천 겁을 두고 약도 되어 주고 잡아 먹혀서 양식도 되어 주고 나면 그 복이 한량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재산이나 칠보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히 채워서 보시했다 해도 그것은 한 생각 비우면 할 수 있지만 몸뚱이 생명을 보시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것도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한 평생 두 평생도 아니고, 한량없는 세월을 두고 한량없이 몸만 남한테 보시했다면 그 공덕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만이라도 남에게 설명해 주는 공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사리불 존자가 공부하고 앉아 계시는데 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부처님 제자이시죠. 부처님 제자는 다 대자대비 하시다죠.」「네 그렇습니다.」「그러면 무엇이든지 다 보시 할 수 있습니까.」「아 그렇습니다.」「스님 왼 눈이 하나 필요한데 빼 주실 수 있습니까.」사리불 존자는 자기 스스로 자기 눈을 빼 줍니다. 그 사람은 그걸 받아서 더럽다고 탁 침을 뱉어 집어던지더니 발로 비벼서 짓이겨 버립니다.  남은 애써서 아픈 눈을 빼서 줬는데 필요 없어서 내 버리더라도 자기 안 보는 데 가서 했으면 좋을 텐데 그 빼 준 사람 앞에서 그러니 아무리 사리불이라 해도 마음이 동해서 고약한 놈이라고 속으로 꾸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 말이「아 스님이 발심을 덜 했습니다. 철저히 발심을 했으면 내가 그걸 갖다가 똥 속에 집어넣거나 발로 밟아 버리거나 주는 것 뿐이요. 무심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안색을 보니까 속으로 마음이 동한 것 같으니 아무래도 응무소주한 보시가 아닙니다.」하면서 자기는 제석천(帝釋天)인데 스님을 시험해 보느라고 그랬다고 하면서 부처님 비슷한 제석천의 본신(本身)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내가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 나는 그것도 못합니다.」사리불 존자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직 깨닫기 전이라도 이런 경전을 읽고 배워서 마음을 조복을 받고 항복하는 법을 익혀 나가면 자기 목을 못 빼 준다 하더라도 이 목을 못 빼 줄때 마다 마음이 아프고 참회가 되고 진실히 중노릇을 잘 하고 인욕도 하고 보시도 하고 모두 잘 할 줄 알면 깨친 뒤에 훨씬 수월해 집니다. 경을 읽을 때마다 하루에 열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부끄러운 생각이 나고 꼭 이래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길을 지나가다가 개가 날 보고 짖으면 마음에 부끄럽고 부처님 뵙기에 황송하고 신도를 대하기에 얼굴이 화끈하고 이런 식으로 정진되어 올라가야 오늘은 안 돼도 내일은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법문들을 때만 그렇겠다 생각해 놓고는 개가 짖거나 말거나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이런 식으로 되어서는 천만 겁을 가도 큰 수행이 안됩니다.  내 것을 주고 내가 다 참아야 할 것을 남더러 주라 하고 참아 달라고 해도 안 되는 일이고 내가 참지 않으면 안 되고 내 것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설사 억만겁을 두고 몸뚱이를 보시하고 재물을 보시하고 큰 공덕을 지었다 해도 그것은 물질로 지은 복이고 몸뚱이라는 형상으로 지은 공덕인데 물질이나 몸뚱이 자체가 허망한 존재이고 상대적인 한계가 있는 존재이므로 그 공덕 또한 무한대한 절대적 공덕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또 상대적인 공덕으로는 생사를 해탈 할 수가 없고 자기 자성을 체득하지 못한 중생의 경계일 수밖에 없지만 이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는 자성을 깨달아 우주를 소유하고 주재하며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탈하여 영원불멸의 대성자인 부처님을 성취하는 비결(秘訣)이므로 그 복이 비교도 안되게 더욱 많다(其福甚多)고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