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金剛經) 강의(19)
17. 究竟無我分 (나란 존재는 없다)
爾時 須菩提白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當生如是心 我應滅度一切衆生 滅度一切衆生 而無有一衆生實滅度者 何以故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所以者何 須菩提實無有法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於燃燈佛所 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佛於燃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實無有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若有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故 燃燈佛 如我授記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何以故 如來者 卽諸法如義 若有人言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須菩提 譬如人身長大 須菩提言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須菩提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해석(解釋):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다면 마땅히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며,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이까?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거든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내가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하고, 중생을 제도하고 나서는 한 중생도 실제로 제도한 자가 없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자아에 대 한 고집, 인간에 대한 고집, 중생에 대한 고집, 수명에 대한 고집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수보리야, 실제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있다고 하느냐?”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느니라. 수보리야, 실제로는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있다면, 연등부처님이 나에게 수기授記를 주기를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지 않았을 것이니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연등 부처님이 내게 수기를 주기를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셨느니라.
어째서 그런가 하면 여래라는 것은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지만 수보리야 , 실제로는 부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어떤 법도 얻은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었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가운데 실다움도 없는 것이고 헛되다 할 것도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이 불법이다.라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모든 법이라는 것도 모든 법이 아니므로 모든법이라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의 몸집이 엄청 큰 것과 같느니라.수보리가 여쭈었다.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어떤 사람의 몸집이 엄청 크다는 것은 큰 몸집이 아니므로 큰 몸집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보살들도 또한 그러하여 만약 이런 말을 하되내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다하면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제로 어떤 법도 보살이라 이름 할게 없기 때문이니라. 이렇기 때문에 부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은 자아, 인간, 중생, 수명이라는 고정된 관념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내가 불국토를 장엄한다하면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그 까닭은 여래가 말하는 불국토의 장엄은 장엄이 아니므로 장엄이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가 없는 법을 통달하면 여래는 그를 진정한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講說(강설):究竟無我分--마침내 나 없다
여기서는 처음에 선현기청분 제이(善現其請分 第二)에서 수보리존자께서 부처님께 여쭈어 보았던 금강경의 최초의 문제이며 근본문제인 야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심한 이가 「어떻게 마음을 가지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을 것이냐」에 대한 법문을 다시 한 번 여쭈어 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의 법문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되풀이하여 여쭈어 보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들은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한 번뇌 망상 속의 범부들이므로 「마음을 가지는 법과 번뇌 망상 항복하는 법」을 한두 번 말씀했더라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 요령과 핵심을 마음 깊이 간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거듭 여쭈어 본 것입니다. 수보리존자는 아공, 법공, 구공의 도리를 남김없이 완전무결하게 깨달으신 해공제일(解空第一)의 부처님 상수제자(上首弟子)이시므로 이미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의 닦는 길을 다 아시고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 당시의 대중과 미래 중생들을 위해 거듭 여쭈어 보는 것이며, 동시에 “항복기심”하고 닦는 자가 누구인가를 거듭 밝혀 주시기를 여쭈어 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중생을 제도 하셨지만 한 중생도 제도되었음을 보지 않으시니 보살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의 대의를 말씀하시고,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얻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일체법이 다 불법이어서 마침내는 불법이니 일체법이니의 구별이 없으며,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도 없다는 말씀을 차례대로 연결하여 이야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말씀하신 금강경 상권을 종합정리해서 함축성 있게 말씀해 주신 것이 이 <구경무아분>입니다. 발심한 "나"도 없고 중생을 제도한 "나"도 "중생"도 없어서 이 "무아"의 진리를 통달해야 한다는 뜻으로 "통달무아분"이라 한 것입니다.
본문: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解釋(해석):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다면 마땅히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며,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이까?
講說(강설): 그때 수보리께서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이는 마땅히 어떻게 마음에 머물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하겠습니까.』하고 사뢰었습니다.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려면 이렇게 해석 할 수도 있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는 것을 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토를 그렇게 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려고 하면 어떻게 그 마음을 가지며 어디다 그 마음을 두며 어떻게 우리가 한량없는 번뇌망상을 항복 받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나중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여쭈어 본 것으로 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범부로서 불교가 지금 어디가 붙었는지, 견성한다는 것이 무엇을 깨닫는 것인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묻는 소리인데 범부로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할 수는 있습니다. 견성하기 전에 선지식을 만나고 훌륭한 법사스님을 만나 가지고 지도를 받아서 「아 ! 이 말하고 말 듣고 하는 이것이, 배고프면 밥 생각하는 이것이 영원불멸의 <참 나>의 존재이겠구나.」 이렇게 알아서 아직 깨치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그렇게 믿을 수 있도록 이론을 배웠다고 하면, 그래서 「사람이 다른 거 하는 것보다 견성을 해서 해탈해야 하겠구나.」하는 도리를 확실히 알았고 「지금 말하고 밥 먹고 남과 싸우고 온갖 짓을 다 하는 이것이 곧 이미 성불한 것이로구나.」하는 이런 이론에 아무 의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역시 범부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아 얻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것을 확실히 안 것입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40여년 동안을 이렇게 횡야설 수야설(橫也說竪也說)로 해서 잠시도 쉴새 없이 말씀을 해서 남겨 놓으신 것이 대장경(大藏經)입니다. 그래서 자꾸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설명하지만 못 알아차리니까 말씀을 하셔서 자꾸 여기까지 몰고 오는데, 이제 내가 어지간히 알기는 알았는데 한 부처님 뜻을 확실히 알아서 내가 부처님한테 배운 것도 없고 증득한 것도 없고 확실히 내가 그렇게 된 줄 알고 있는데, 그래도 행여나 싶어서 한 번 더 여쭈어 보는 겁니다. 내가 혹 어디 결점이 있나 하고 조심하는 것이니 배우는 사람은 이렇게 정신자세가 돼야 할겁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수좌들은 완전히 알았다 싶어도 또 선지식스님께 또 물어 보고 물어 보는 겁니다. 자기가 아는 소리를 가지고 이리도 묻고 또 달리도 물어보고 같은 소리로 또 물어 보기도 하고 이런 것이 그게 참 조심성 있게 공부하는 태도입니다.
호리유차(毫厘有差)면 천리현격(千里懸隔)으로 약간만 틈이 있어도 천리가 멀어지는 것이니 부처님 성불하는데 그만 뒷걸음이 됩니다. 또 하나는 나는 위대한 법을 똑바로 알아듣고 깨달았지만 후세의 중생들이 내가 깨치듯이 깨칠 수 있을까. 그게 염려되어 또 물으시고 부처님께서 되풀이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은 다른 것 같아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여시아문부터도 내내 그 소리가 그 소리인데 그게 모두 조금조금 달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중생은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는 그럴 듯 해도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고 그냥 탐진치로 중생심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좋은 거 궂은 거 우리가 구별할 수 없는 건데 평소에 좋은 거라고 생각하던 게 앞에 나서니 관습적으로 좋다는 생각을 냅니다. 보기 싫은 사람 볼 때에 보기 싫다는 미운 생각이 앞에 나와 놓으면 미워하게 되는 것이 중생입니다. 그래서 금강경 산림을 하기 전이나 마찬가지가 되니 육두문자(肉頭文字)로 금강경 들으나 마나 한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배우는 제자나 가르치는 스승이나 이 수보리존자처럼 이렇게 묻고 저렇게 대답하고 하여 철두철미하게 해야 합니다.
본문: 佛告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當生如是心 我應滅度 一切衆生 滅度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解釋(해석):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냈거든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내가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 하고, 중생을 제도하고 나서는 한 중생도 실제로 제도한 자가 없어야 하느니라.
講說(강설):수보리존자가 마음가지는 법과 번뇌 항복 받는 법을 다시 또 여쭈어 본 데 대해 부처님께서는 앞에서와 똑같이 대답하신 것입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이는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을 낼 것이니, 내가 마땅히 한 중생도 남기지 않고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리라.』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지장보살(地藏菩薩)같은 분은 이런 법문을 듣고는 어디를 가다가 옷을 벗고 떠는 거지를 만나서 옷을 홀딱 벗어 줍니다. 그리고 자기는 벌거벗은 나체의 몸을 남한테 보일 수 없으니 땅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땅에 몸을 감추었다고 해서 <지장보살>이라고 합니다.
중생도진아성보리(衆生度盡我成菩提)「중생을 다 제도해서 마친 뒤에라야 내가 대보리를 증득하리라」하는 원리입니다. 지장보살은 일체 사생육도(四生六道)의 분신(分身)으로 변화신(變化身)까지 나타내시어 제도하시지마는 치우쳐서 지옥을 많이 가십니다. 지옥 문 앞에 딱 섰다가 들어가는 중생보고 개심(改心)을 시켜서 알아듣고 착한 생각 내도록 해 가지고 도로 인간 세상이나 천당에 올라가게 하는데 그렇게 내 보내 놓으면 금방 눈 깜박할 사이에 또 되돌아오고 합니다. 그래서 지옥 문전에 지장보살이 눈물 마를 새가 없다고 합니다.
지장보살님처럼 우리도 보리심을 발했거든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 것이니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리라」고 서원하고 또 「일체중생을 다 제도해 마치고 나서는 실로는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 제도된 중생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라.」그러셨습니다.
대용맹심을 내서 인간적으로 아주 훌륭한 인간이 되고 한 번 아무 생각 없이 되어 남보다 잘났다고도 안 하고 뒤떨어지려고도 안 하고 무심경계에 들어가서 천지가 내 집이라 하는 게 도리어 약한 소리입니다. 천지가 그만 내 주머니 가운데 들어있는 이런 배짱으로 해야 합니다. 사실이 또 그런 것입니다. 밥은 아무데서나 얻어먹고 방방곡곡 다니며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를 일러 주어서 중생교화를 하지만 교화했다는 생각도 없고 교화한 중생도 없이 해야 합니다. 이것을 줄여서 말하면 「생각 없이 일하자」하는 간단한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 이런 생각을 갖고 그 생각대로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해서 마쳤지마는 다 제도된 걸 보고는 역시 「한 중생도 제도했거니」하는 생각을 안 합니다. 실제로 사실 중생이 제도 받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所以者何 須菩提 實無有法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解釋(해석):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자아에 대 한 고집, 인간에 대한 고집, 중생에 대한 고집, 수명에 대한 고집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수보리야, 실제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講說(강설):보살이 일체중생을 제도했는데도 아무도 제도한 이도 없고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사람도 없는 까닭을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만일 보살이 “아상”이 있거나 “중생상”이 있거나 “수자상”이 있으면 이런 이는 곧 보살의 자격이 없는 때문이니,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수보리야, 실로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것이 없느니라.』
“아상” 하나만 있으면 밑에 삼상(三相)이 따라 나옵니다. 찰나에 연기법(緣起法), 곧 상대법으로 일어납니다. “나”라고 할 때 벌써 저쪽을 상대로 해서 또 저쪽 때문에 “나”라는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저쪽과 동시에 일어나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중생상”이 벌어지는 것이니 사람은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사회적으로 단체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서로 어울려 가지고 “중생상”으로 중생놀음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또 칠팔십은 넘도록 살아야겠다고 또 살 것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것 그게 “수자상”입니다. 만일 이런 것들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니까 아무리 견성 아니라 그 무엇을 해도 보살하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해야 보살이라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그게 만일 아상이 있을 때에는 무생법인을 증득한 채 그대로 중생이고 깨쳐 놓은 그게 그만 사도(邪道)가 됩니다. 그러니 불법 깨친 게 아니라는 그 말인데, 이런 것은 용심(用心)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금방 사도가 됐다가 번쩍 정도가 됐다가 들락날락하는 것이 초심보살(初心菩薩)입니다.
『그것은 왜 그런고 하니 수보리야, 「사실 어떤 법이 있어서 그런 발심을 할만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만한 그런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래서 어떤 마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없고 어떠한 발심 그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한다. 본래부터 보리심 발했다, 나중에 견성해야 보리심 발한 것이다, 또 부처님이 확실히 될 때에야 사실 보리심이 증득된 것이다」하는 말은 했지마는 사실 그런 법은 없다.』고 하신 겁니다.
본문: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於燃燈佛所 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 於燃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解釋(해석):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있다고 하느냐?”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나이다.
講說(강설):부처님께서 무량아승지 겁전의 과거세에 연등불(燃燈佛)한테 법문 듣고 발심해서 견성하고 수행해서 성불했습니다. 그래서 세존께서 수보리존자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는 어떠냐. 여래가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있느냐 없느냐.』
이에 대해 수보리존자는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내용이 있어서 「이것이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다.」하고 내세울만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석존께서 범부 때 처음으로 연등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적도 있지만 그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전이고 도깨비 소리를 도깨비가 들은 것이며 꿈속에서 꿈 사람이 꿈 얘기하는 것이니, 꿈 가운데 부처, 꿈 가운데 중생은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닙니다.
석존께서 무량아승지겁(無量阿僧祗劫) 전의 과거 연등불한테 법문 듣고 발심 수행하고 참선해서 견성했습니다. ‘일체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부처다. 그러니까 법문 하신 법문도 없고 법문 들었다고 하면 나는 벌써 도깨비 말을 들은 것이니, 도깨비 말 듣고 도깨비 사람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한 가지는 정리가 되어야 할 판인데 이런 얘기는 뚝 떨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뚝 떨어진게 글자 한자 한자를 전부 다 그렇게 배우고 나면 자꾸 그 뜻을 외워야 합니다. 하루 한 번씩이라도 경책을 펴지 않고 외우게 되면 그때는 눈을 감고 앉아서 「여시아문하사오니」이렇게 죽 외워야 합니다.
이때 「여시는 말도 아니고 글자도 아니고 이건 참 뭐라고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 있겠다」하는 걸 배웠습니다. 그런 “여시”자부터 끄덕이면서 읽어야 합니다. 「참 그렇다. 부처님한테 옳은 말씀 들었고, 세상 어디를 다녀 봐도 들을 수 없는 말씀을 몇 억만생을 살면서 오묘한 진리의 법문 처음 듣는 법문이로구나. 꼭 그렇겠구나.」하면서 참선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본문:佛告 如是如是 須菩提 實無有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若有法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故燃燈佛 如我授記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解釋(해석):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느니라. 수보리야, 실제로는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있다면, 연등부처님이 나에게 수기(授記)를 주기를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지 않았을 것이니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연등 부처님이 내게 수기를 주기를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셨느니라.
講說(강설): 수보리존자의 대답을 들으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그렇고 말고, 옳은 말이다. 수보리야 실로 어떤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내가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 연등불께서 나에게 「네가 참 불법을 바로 깨달았으니 이 다음 세상에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되어 팔만사천 법문의 장광설(長廣說)을 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하리라」 하고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실로 얻은 법이 없기 때문에 연등불께서 나에게 예언하시기를 「네가 이 다음 세상에 많은 보살행(菩薩行)을 닦아서 무한한 공덕을 쌓고 사바세계에 나아가서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되어 그 첫 번째 법회에서 다섯 비구를 설법하여 도를 깨닫게 하고 또한 많은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수기"를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왜 내가 얻은 게 없기 때문에 그 수기를 받게 됐다.」고 하겠는가. 내가 얻은 게 있으면 불법적멸(佛法寂滅)에 들어서지 못한 것이니 수기를 줄 수 있습니까.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직 불법과는 십만 팔천리 밖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저 밖에 일주문(一柱門) 안에는 못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한테 보시도 안하고 지계, 수행도 다 집어치우느냐 하면 그건 또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 거 저런 거 다 안 한다고 하면 복도 안 짓고 열반에만 주하는 나한이니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자기가 진보했다 하더라도 중생제도를 안 한 사람이므로 불법을 성취할 수 없고 또 그건 발심 못한 사람이며 이생기심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성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시 발심해야 하고 일체중생을 아무 생각없이 제도해야 합니다.
일체보살이 즉비보살 시명보살(一切菩薩 卽非菩薩 是名菩薩)로 모든 보살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는 것이며, 일체세계가 즉비세계니 시명세계(一切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곧 일체 우주는 곧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우주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래께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안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법신에도 육신에도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데 왔다 하면 법신에 치우치고 열반, 적멸에 치우친 것이며, 안 왔다 하면 현상계, 중생세계에 치우친 것이 됩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둘 다 분별 못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열반을 해서 성불하는 부처님한테도 뜻을 두지 말고, 또 그렇다고 해서 망상 탐진치에도 이끌리지 말라, 거기에도 뜻을 두지 말라, 만일 마음을 생사나 열반이나 어느 한곳에 주하거나 하면 그것은 한쪽에 떨어진 것이니, 하나는 없는 데 떨어지고 하나는 있는 데 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응무소주(應無所住)가 아닙니다.
본문: 何以故 如來者 卽諸法 如義
解釋(해석):어째서 그런가 하면 여래라는 것은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니라.
講說(강설):부처님께서 실무유법(實無有法)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여래(如來)의 뜻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왜그러냐 하면, 여래 곧 불께서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게 있으면 수기를 안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여래"라 함은 모든 법이 같다는 뜻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래(如來)라 함은 같다는 뜻인데 한문 5만자 가운데 하필 왜 여(如)자를 놓았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글자는 같을 여(如)자 인데 같다는 말은 첫째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제도 그 모양, 오늘도 그 모양, 내일도 그 모양, 늙기 전에도 그 모양, 늙은 뒤에도 그 모양, 죽은 뒤에도 그 모양, 여기 사바세계에 있을 때도 그렇고 극락세계 갔을 때도 그렇고 성불해 놓아도 그것이어서 안 변한다는 뜻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게 같다는 말이고 같다 하는 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게 또 불생불멸(不生不滅)한다는 뜻입니다. "여래" 이 두 글자에 불법의 뜻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많은 글자 중에 이 두자를 갖다 놓았을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꾸 같아서 참말로 같다는 말이니, 이 "여"라는 건 물질도 아니고 형상도 아니요, 엄연한 진공도 아닌 이 말 듣는 그 자리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 이것도 움직일 수 없는 건데, 이건 허공 보다도 더 없는 겁니다. 그런데 래(來)는 "올래"(來)자이니 온다는 뜻인데 변동을 할 수 없는 그게 어떻게 오고가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있는 것 같으면 오고가고 하겠는데 없는 것이 오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 그러고 보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고 그러니까 이렇게 얘기할 줄 알고 들을 줄도 알고 이러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그게 그런걸 주장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오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니 이것이 부처님입니다.
그러니 여기 온거다. 그러니 오고가는 자체가 있어서 여기에 오는 게 아니라 와도 온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이 "여"는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는 말이니 이 온다는 말이 온다는 의미가 아니고 오는 게 곧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오는 거라고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래는 모든 법이 같다는 뜻이다」하셨는데, "여래"(如來)란 "여"는 모든 법이 "여래"(如來)하다는 뜻이므로 부처님이 성불하셨기 때문에 성불해서 오되 그 "여"가 왔지 온 걸로 온 게 아니다. 그래서 일체법이 다 그와 같다(諸法如意)고 한 것입니다. 곧 모두가 불생불멸한 존재라는 뜻이니 이것도 이 초도 불멸(不滅)이라는 것입니다. 초를 여기다 켜 놓으면 한 치 이상 탔지만 하나도 안 탔다는 것입니다. 이 초는 공장에서 만들기 전에 여기 벌써 서 있는 것이고 공장에서 만든 초가 온 게 아닙니다. 여기서 타는 것은 본래 있던 게 타고 있는 것이고 타도 타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공장에서 초를 가지고 온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착각으로 그렇게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법여의이며 이번 금강경 살림을 통해서 그런 것쯤은 누구나 쉽게 알 게 됐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금강경을 이렇게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또 되풀이하고 이러는 데 따라 한국 불교가 바로 됩니다. 이것이 참 기도이고 부처님이 춤을 추실 것입니다.
본문: 若有人言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解釋(해석):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지만 수보리야, 실제로는 부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어떤 법도 얻은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었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가운데 실다움도 없는 것이고 헛되다 할 것도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이 불법이다.라고 하느니라.
講說(강설): 부처님께 말씀하시기를『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를 얻었느니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보리야, 실로 부처님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게 없느니라. 수보리야,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그 법은 사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허망한 것도 아니니라.』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시방세계에다 공포하고 떠들었지만 설사 내가 그렇게 선전하지 안 했더라도 내가 깨달았다는 것 때문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그것을 다 아신다. 사실 또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게 없는데 그렇지만 또 얻긴 얻었지만 얻은 그게 실지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라」고 하셨으니, 없다 해 놓고 있다고 했다가 하여 이리저리 잡아떼십니다. 「실도 없고 허도 없어서 참말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라」 했으니 얻었다는 말씀도 이상한 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가 말한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고 하셨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긴 얻었는데 그 얻은 것이 내용으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무인무과(無因無果)이니 그러기 때문에 또 일체만법이 그대로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하신 것이 그게 불법이 아니라 즉비불법(卽非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됩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아무 쓸데없는 경이니, 그러기 때문에 누가 경을 밟으려고 하면 우리가 밟지 못하게 말립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이니 일체 불법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내 목숨이 죽었으면 죽었지 경전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밟고 다니도록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체불법이 즉비불법이니 시명불법(一切佛法 卽非佛法 是名佛法)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는 얻었는데 실다운 것도 아니고 헛것도 아니다.」 하는 말씀은「말할 수 없는 내용이다.」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얻었다는 말이 참 심원(深遠)한 뜻이 들어 있어서 깊다면 한량없이 깊은 것이고 얕다면 바늘로 찔러 볼 수도 없이 깊이가 없는 도리입니다. 그러니 발심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내용도 없는 이름만의「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니 그것은 정법(正法)도 아니고 사법(邪法)도 아닙니다. 여기 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다 가실 줄 압니다만, 그 다음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고 한다.」한 이 말씀은 또 엉뚱한 말씀이고 생소합니다. 그런데 부처님 말씀은 염주 알을 차례대로 쭉 꿰듯이 그 조리가 딱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바로 알아듣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불합니다. 이런 사람은 머리 깍고 중이 되거나 농사하고 장사하는 신도로 있거나 성불 안 할 도리가 없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49년 설법하신 것이 그게 불법이 아니라 즉비불법(卽非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됐는데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는 말은 세속의 법도 불법이고 출가의 법도 불법이라는 말이고 유정무정(有情無情)이 다 불법이고 초도 불법이라는 뜻이며 또 불법이란 그 말은 모두가 부처라는 말이 됩니다. 근본 마음자리가 불교라는 그건 한쪽 얘기는 다 됩니다. 물이 파도고 파도가 물이라 해서 우리 탐진치 번뇌망상이 직접 보리와 열반이라 그런 말이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 다른 것이 아니며(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현상계와 본체계(本體界)인 마음의 경계가 다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다운 것도 허망한 것도 아니라고 했으며, 일체법이 곧 불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설사 중생들이 싸운다 하더라도 싸우고 싶은 마음을 내는 그 자리는 변동이 없으니 그러므로 이 자리에선 싸운다는 것이 불세계에서 싸운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마음자리 하나만 얘기하는 데는 통과가 되는데 일체법(一切法)이라고 할 때는 마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부처가 되는 불법과 생사법과의 두 가지를 말해 왔습니다. 사서삼경(四書三經) 다 읽고 성경, 도덕경(道德經) 아무리 해 봐야 그것은 다 생사법이고 세속법이어서 생사 안에 있는 일 일 뿐입니다. 과학이니 심리학이니 철학이니 다 생사법이지만 오직 그렇지 않은 것은 불법입니다. 팔만대장경 어디를 펼쳐 보든지 생사 밖에 일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들은 게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얘기이고 확실히 선도를 행하는 근본, 실상(實相) 자리이고 아무 생각 없는 이것이 모든 행동의 주체가 되어서 성인이 될 마음으로 발심해서 중이 되도록 수도해서 불쌍한 중생제도를 하자는 것입니다.
늙은 때나 젊은 때나 변하지 않는 이 자리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자성자리가 착한 마음을 내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해서 복을 받고 악한 생각을 내 가지고 악한 행동을 해서 고생을 하니 인과가 다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선할 때나 악할 때나 한 사람이 하지 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이건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는 악도 선도 아니니 아무것도 안 하는 가운데서 악은 안 하고 선만 합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풍(家風)이니 이렇게 해서 복과 지혜를 닦아 올라갑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 합니다. 만일 이것이 악한 생각을 내어 극악하게 되면 서울 사람 다 때려 죽이는 그런 짓을 능히 하는데, 이런 생각이 다른 데서는 나올 곳이 없습니다. 육체에서도 나올 수도 없고 나만 알지 다른 사람은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러면 무엇이냐. 그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실재이고 실상 자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문제이고 말로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일체법(一切法)이라는 것은 유정무정(有情無情)을 다 통해서 하는 소리인데 이야기할 때는 모든 것은 다 공한 것이고 실재(實在), 곧 실상자리의 그림자라고 하지만 이 초 대 현상계의 근본 도리를 이대로 불법이라고 할 때에는 조금 아름해집니다. 이것도 온갖 생각이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나"로부터 나왔고 실상자리인 여(如)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것을 설명하듯이 만법 이대로 다 불법이라는 도리도 설명이 돼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를 다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논법 역시 생각을 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본문: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須菩提 譬如人身長大 須菩提言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解釋(해석):수보리야, 모든 법이라는 것도 모든 법이 아니므로 모든 법이라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의 몸집이 엄청 큰 것과 같느니라.수보리가 여쭈었다.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어떤 사람의 몸집이 엄청 크다'는 것은 큰 몸집이 아니므로 큰 몸집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講說(강설):부처님께서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고 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수보리야, 소언 일체법자(所言一切法者)는 일체법이라 하는 것은 즉비일체법(卽非一切法)이니, 곧 그것이 일체법이 아니니 그러므로 그걸 일체법이라 이름했다.』 하셨습니다.
「일체법이 불법이라고 한다.」여기까지는 삼단논법이 딱딱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비유로 그 실례를 하나 들면, 사람 몸뚱이가 굉장히 커서 9척 장신만하다든지 백두산만하다든지 그렇게 몸뚱이가 큰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비유도 이상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수보리존자의 대답입니다.『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뚱이가 큰 것을 보고 크다고 설명하신 것은 곧 몸뚱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름을 큰 몸뚱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과 수보리존자가 물으시고 대답하시는 내용이 시비사정(是非事情)에 척척 잘 들어맞습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결국 따지고 보면 물질적 요소로 묘하게 만들어진 구성체(構成體)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적 현상은 본체를 캐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공한 것이므로 그것을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실체(實體)를 보지 못하고 거짓 모습인 겉만 보고하는 소리입니다. 또 크다는 것은 작은 것에 비유해서 하는 소리고 작다는 것도 큰 것에 비유해서 하는 소리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설사 지구 만하고 우주 만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수보리존자는 여래께서 크다고 하신 말씀은 큰 몸이 아니라 이름을 크다고 하는 것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다 비유로 하신 말씀이고 실제로 크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是故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解釋(해석):수보리야, 보살들도 또한 그러하여 만약 이런 말을 하되내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다하면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제로 어떤 법도 보살이라 이름할게 없기 때문이니라. 이렇기 때문에 부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은 자아, 인간, 중생, 수명이라는 고정된 관념이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講說(강설): 『수보리야, 보살이 또한 이와 같아서, 보살의 사상, 내용, 정신 가짐 곧 소주지처(所住之處)가 이와 같고 마음 항복하는 법이 이와 같아서 만일 어떤 보살이 「내가 마땅히 한량 없는 중생을 제도 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곧 보살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보살의 용심(用心)을 설명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수보리야 사실 어떤 법이 있어서 그것을 성취해야 보살이다 할 만한 내용이 없다. 이렇고 이런 것이 보살이다, 초견성(初見性)을 해야 보살이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체득해야 보살이다 그러는데 어떤 내용이 마하반야바라밀이냐 하면 그런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일체법에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중생 살림살이"도 없고 "오래 살려니 하는 생각"도 없다고 부처님이 말씀하느니라.』
본문: 須菩提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解釋(해석):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내가 불국토를 장엄한다하면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그 까닭은 여래가 말하는 불국토의 장엄은 장엄이 아니므로 장엄이라 하느니라.
講說(강설): 부처님께서 또 보살이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고 불세계를 이루는 것도 없는 가운데 무심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했다. 자꾸 공부를 하고 정진을 하고 보시하고 지계하고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해서 내가 사는 세상이 모두 극락세계처럼 되고 천상국토가 되어 장엄되고 있다. 지옥을 가도 불세계요, 천당을 가도 불세계요, 오탁악세도 불세계요, 우리 중생의 사바세계가 모두 불세계다. 내가 중생일 때에는 모두 험악한 세상이 되고 모진 고통과 불평과 불안과 고독함만 느끼던 험한 세상이더니 이제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건 보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건 부처님께서 불국토를 장엄하신다는 말씀은 곧 장엄이 아니란 말입니다. 장엄하는 생각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無心)히 체득되어 있기 때문에 생사나 열반에 주하지 않고, 불법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생법에도 치우치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지 그걸 발견해야 할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무심하기 때문에 없다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자꾸 업장이 녹아 없어지는 동시에 중생되기 전 미하기 전에 본래 있던 불세계가 자꾸 드러나는데 이것이 굉장한 장엄입니다. 굉장한 화장찰해(華藏刹海)의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이 있으면 절대 그런 화장찰해의 불세계가 안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장엄한다는 게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는 그걸 가지고 장엄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므로 장엄도 아닙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장엄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解釋(해석):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가 없는 법을 통달하면 여래는 그를 진정한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講說(강설): 부처님께서 이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의 결론으로 "무아"(無我)를 말씀하십니다.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통달무아법자"(通達無我法者), "나"없는 진리를 확실히 통달하면 그래서 「육체가 내가 아니로구나」하는 진리를 통달하면 그것이 참된 보살이니라.』하셨습니다.
온갖 지식이나 사상이 모두 망상이고 과학자니 철학자니 하는 사람들 정신 빠진 사람들이어서 뭐가 뭔지 모르고 도깨비 얘기하고 글 써 놓은 것이니, 만일 그것을 내가 배웠다면 그래서 내가 대학에까지 졸업하고 석사, 박사가 됐더라도 그것은 모두 가질 바 지식이 못되니 다 포기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일자무식인이 되어야 할 것인데 그걸 내가 옳게 배웠다고 남에게 얘기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식도 버리고 버릴 것 다 내 버려서 버릴 망상이 없어진 상태의 번뇌장(煩惱障)이 아닌 소지장(所知障)까지 다 버리고 나면 이런 거 딱 떼어놓고 보니 정말 참 통달무아(通達無我)입니다. 진실한 마음자리 이것은 "나"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도 또 불법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무아법(無我法)인데 그러면서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고 참선도 하고 경전도 보고 염불도 하고 모두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통달무아하면 그게 정말 진실한 보살이다. 틀림없이 성불해 가는 사람이다. 정말 내 제자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생각 없이 공연히 머리만 깍아 가지고「중입니다.」하고 「신도입니다.」 그래봤자 정말 큰 일 납니다.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집니다. 머리를 깎지 않아 껍질까지 다 깎았더라도 큰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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