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청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백장스님은 중국 당나라 때 스님으로, 홍주의 백장산에 살면서 교화 활동을 전개한 까닭에 세상에는 흔히 백장선사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분이다.
당시 중국의 선종에서는 세속과 유리된 독자적인 선원들을 구축하고 그곳에서 승려들이 스스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의 경제 체제를 실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선종이 국가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수행의 풍토를 진작시키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무튼 백장스님은 아흔이 넘도록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았는데, 고령의 스님이 몸소 농사일을 하시는 모습이 보기에도 딱했던지 사람마다 나서서 스님을 만류했다. 그러나 스님은 그런 말들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말리다 못해 하루는 제자들이 스님의 호미를 몰래 감춰버렸다. 그런데 식사시간이 되어도 스님이 나타나지를 않았다.
제자들이 나서서 이리저리 찾아보니 스님은 선방에 홀로 앉아 참선을 하고 있었다.
"큰스님. 공양시간인데, 공양하러 가셔야지요."
"나는 오늘 하루 일하지 않았으니 먹을 자격이 없다."
인간에게 노동이 없으면 삶 자체가 무의미하며, 노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갈 가치를 지니게 된다.
종류나 방법은 다르겠지만 수행자라 할지라도 노동은 필요한 것이다.
백장은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만들어 선종 스님들의 직책이나 역할을 정해 위계질서를 세우고 거처의 용도를 정해 절도있는 생활을 하도록 했다.
특히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의 원칙을 강조하며 입적할 때까지 이를 몸소 실천했다.
이런 백장의 노력으로 그 동안 더부살이 해오던 율종의 사찰로부터 독립된 공간과 살림살이를 갖추게 되었다.
814년 백장이 입적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845년 불교는 ″회창(會昌)의 폐불(廢佛)″이라고 불리는 탄압을 받게 된다.
당나라의 15대 황제 무종은 도교의 열렬한 신도였는지라 평소 다른 종교들을 박해했다.
그러다가 32살이 되던 해에 무종은 불교에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는데 4600개의 절을 헐어버리고 26만여 명의 스님들을 강제로 환속시키는 조치를 한다.
이로 인해 불교는 씨가 말랐다고 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지만 선종은 피해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말쩡했다.
이는 선종의 스님들이 산 속에 살며 자급자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 모두 백장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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