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법회의 서곡

難勝 2009. 1. 6. 04:15


법회의 서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야리(浚耶離)성의 암라수원(庵羅樹園)
에서 덕이 높은 제자 8천과 3만 2천의 보살들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처님
께서 갖추어진 지혜와 그것을 얻기 위한 수행을 모두 성취
하였으며 그것은 여러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진리의 성(城)을 지키기 위해 항상 가르침을 받들고
능히 백수의 왕인 사자의 사자후(獅子吼)와 같이 설하여 명성이
시방에 떨치었다.

뭇 사람들이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그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것을
받들어 행하는 승가(僧伽)가 길이 융성하고 끊이지 않도록 하며,
악마의 원한을 항복받음과 동시에 많은 이교도[外道]를 제압하여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 오래전부터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져 있었다.

마음은 항상 걸림이 없는 해탈의 경지에 안주하고 있어 바른
생각과 선정(禪定)을 지니고 있었다. 뛰어난 변재(辯才)는 끊이지
않았으며 보시를 행하며, 계를 지키고, 인욕하며, 정진(精進)
하여 선정을 닦고 지혜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 방편의 힘을
부족함이 없이 두루 갖추고 있었다.

공(空)의 바른 깨달음으로 일체의 집착을 떠난 경계에 이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름으로써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를 설하며, 모든 사물의 진상(眞相)을 깨달으며
동시에 중생의 능력을 알며 온갖 사람들을 능가하여 두려움
없는 자신[無所畏]을 갖고 있었다.

이미 얻은 공덕과 지혜로써 그 마음을 닦았고 뛰어난 상호
(相好)에 의하여 그 몸을 장엄하고 있으므로 그 모습은 세상에
비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세간의 온갖 장식을 몸에 붙이고 있지는 않았다.
높고 먼 명성은 수미산을 지나고 그 깊은 믿음의 견고함은
금강석에 비유되었다.
가르침의 보배는 널리 빛나 불사(不死)의 가르침을 널리 비쳐주고
그 미묘함은 뛰어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연기(緣起)의 깊은 이법(理法)을 깨달아 여러 가지 그릇된
견해를 끊어 버렸으므로 `있다', `없다'라는 상대적인 견해의
집착[有無二邊]이 뒤에 남는 일이 없었다.

법을 설할 때에는 사자가 포효하듯이 두려움이 없고, 그
설하는 가르침은 천둥소리와 같아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헤아릴 수 없어 어떠한 한계도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의 나라를 깨끗이 장엄하고 그를 보고 듣는 이들은
이익을 받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 보살들은 이 같은 공덕을 모두가 한결같이 갖추고 있었다.


- 유마경(維摩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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