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성은 설(薛)이고 이름은 서당(誓幢)이다.
내마(奈麻) 담달의 아들로 이십구세 출가하여 영축산 낭지(郎智),흥륜사 연기(緣起),반용산 보덕(普德) 등을 찾아 수행하다가 삼십사세에 입당구법을 결의하고 의상대사와 함께 남양 갯가 어느 무덤 사이에서 배오기를 기다렸다.
밤이 늦어 목이 마르므로 사방으로 물을 찾다가 손 끝에 바가지 하나가 잡혀 그 속에 든 물을 달게 먹었는데 아침에 깨어서 보니 그것은 단샘의 물이 아니라 해골바가지의 송장 썩은 물이었다. 급작히 비위가 뒤집혀 배를 움켜쥐고 토하려하다가 홀연히 한 소식을 얻었다.
心生卽種種法生 마음이 나면 모든 법이 나고
心滅卽種種法滅 마음이 멸하면 해골도 둘이 아니다.
이어 원효는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 먹기에 달렸느니..." 하였는데 어찌 부처님이 나를 속이겠는가. 당나라 구법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와 불행을 하니 가히 행동의 성자였다.
하루는 거리에서 노래를 불렸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바칠 기둥을 찍으련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이때 태종(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 말했다.
"스님께서 아마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자식을 낳으려 하신 모양이다.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그 보다 더 이로움이 없을 것이다."
이때 요석궁에 과부 공주가 있었다.
왕은 궁리(宮吏)를 시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맞아 들이게 했다.
원효는 일부러 문천교 다리 밑에 빠져 옷을 적셨다.
궁리가 그를 모셔 요석궁에서 옷을 말리게 하였다.
과연 공주는 얼마 있다가 아이를 배니 그 아이가 저 유명한 설총(薛聰)이다.
또 원효는 이미 계를 범하고 설총을 낳은 후로는 속인의 옷을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일컬었다.
또 광대들이 가지고 다니는 둥근 박에 여러가지 도구를 장엄하여 무애(無碍)라 이름짓고
가지고 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염불하였으므로 가난 하고 무지몽매한 사람이라도 모두 부처를 알게 되었고 갓난아이들까지도"나무아미타불"을 모르는 자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를 모르는 자는 이것을 보고 원효를 광인(狂人), 파계승(破戒僧)취급을 하고 근래 불자 가운데도 그를 대처승이라 멸시하는 자 없지 않았으나 진실로 그는 무애 성자로 불교를 사실적으로 실천한 대보살이라 하겠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하의 일곱 아들이 모두 다 도적놈 - 김삿갓 (0) | 2009.04.08 |
---|---|
삼생前의 원귀 (0) | 2009.04.06 |
요즘은 꿈같은 얘기 (0) | 2009.04.06 |
영어를 배웁시다 (0) | 2009.04.04 |
시(詩)로 얻은 남편 (0) | 200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