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이 개성 근처에 이르렀을 때의 이야기다.
개성은 인심이 고약한 동네였다. 앉아 있으니까, 그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아무 댁에서 환갑 잔치를 하는데 아주 성대하게 차려서
손님이 무지하게 많더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그 말을 듣고는 그 환갑집에서 술이나 한잔 얻어 먹고
가야지 하고 그 집을 찾아 들어가니 과연 잘 차렸다.
아들 일곱 형제와 그 며느리가 사모 관대에 쪽두리를 쓰고
절을 올리는 등 아주 푸짐한 잔치였다.
잘 차린 상을 받아서 먹고 늙은이들 자리 옆으로 갔다.
그날의 주인공인 늙은이도 거기 있었는데, 김삿갓이 그 끝에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자 그 집 사람들이 말했다.
"저기 저 손님도 한잔 줘라."
참석자들 모두가 이야기도 나누고 글도 짓고 하다가
김삿갓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도 술을 마셨으면 술값을 해야지."
"하지요."
김삿갓은 환갑 늙은이를 가리켜 이렇게 읊었다.
"좌피노인비인사 (坐彼老人非人似)"
저기 앉은 노인은 사람같지 않다.
그러자 모두들 화를 내며 나무랐다.
"이놈, 천하에 죽일 놈 같으니라고.
술을 처먹고 나서 이놈아,
환갑 늙은이를 그리 괄대할 수 있단 말이냐?"
"아, 가만 있어요. 아직 안 끝났으니까."
김삿갓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
"하일하시강신선 (何日何時降神仙)"
어느 날 어느 때 내려온 신선 같구나.
이렇게 말하자 모두 손뼉을 치며 참 좋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김삿갓은 그 아들들을 보고는 이렇게 지었다.
"슬하칠자개도적 (膝下七子皆盜賊)"
슬하에 아들 일곱이 다 도적놈이라.
그러자 또 난리가 났다.
김삿갓은 다시 읊었다.
"도취천도선양친 (盜取天桃善養親)"
천도를 훔쳐 아버지를 잘 봉양하는구나.
이래서 욕하고서도 마무리를 잘해서 술도 잘 얻어 먹고
그 집에서 해가 지도록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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