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게송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아
진리를 실현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간호사가 노보살님께 음식을 가져다 드리며 말한다.
"할머니, 천천히 드세요."
"알았당께."
그러나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구르트 한 개를 꿀꺽 마시는 노보살님.
"오늘부터 공양게송 하시고 드셔야지요."
"그려. 혀보랑께."
"할머니, 저를 따라 한번 해 보세요."
할머니는 간호사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혀랑께."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전라도서 왔당께."
"에이, 할머니 그게 뭐예요."
"맞당께."
"할머니 전라도서 오신 것은 맞는데요.
이건 공양게송이라니까요. 기도예요, 기도."
"알았당께."
"다시 한번 해 보세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전주서 왔서라."
간호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떠뜨리는 바람에
그만 공양게를 하지 못했다.
"이 썩을 년아. 웃지 말고 밥 줘."
"그래, 할미. 이제 우리 밥 묵어요."
"전주서 왔당게라."
그 말을 듣고 간호사는 또다시 웃음을 참지 못한다.
입 안에 공양이 가득한 할미도 웃다가 밥알이 간호사 얼굴에 다 튀었다.
그렇게 옥신각신 식사시간을 넘기고, 다음날이 오면 또다시 간호사는
보살님에게 찾아가 똑같이 반복한다.
"할머니, 공양게 해야지요. 오늘은 장난치지 마세요."
"빨랑 허랑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전주서 왔당께."
"더 이상 할미하고 웃겨서 기도 못혀유. 지가 혼자 해유.
할미는 합장하고 계셔유."
공양게송을 간호사 혼자 하고 나자 건너 병실의 노스님이
공양 상을 앞에 놓고 합장하고 계시다가 고운 목소리를 흉내내며
"나~두"라고 말씀하시고는 수저를 드신다.
이렇듯 정토의 아침에는 노보살님때문에 방마다 하하 웃느라고 야단이다.
※ 이 글은 능행 스님의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에서
발췌했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룻밤의 사랑이 구렁이로 변한 사연 (0) | 2009.05.05 |
---|---|
농가월령가 - 4월령, 5월령 (0) | 2009.04.29 |
자벌레 스님 (0) | 2009.04.25 |
장작패고 텃밭 갈고 (0) | 2009.04.25 |
결혼식 날짜는요? (0) | 2009.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