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거제도 고자산치의 전설

難勝 2009. 5. 28. 05:15

 

 

고자산치의 전설


  거제면 동상리에서 계룡산을 올라와서 신현읍 문동리로 가는 이 고개는 경사도가 급하고 산림이 울창하며 10㎞나 되는 준험한 산길로 고자산치라고 한다. 이 고자산의 고갯길에 연유한 전설은 우리 거제에 널리 알려진 인생 윤리 도덕의 대표적이 애한이라 할 수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고현성이 함락되고 17년 후인 1663년 현종 4년 거제현아를 고현에서 이 고자산을 넘어 거제로 옮겨 온 후에 고현과 거제 사이는 이 고개가 가파르지만 하나밖에 없는 대로였다. 그로부터 25년 후인 1688년 숙종 14년에 현령 김대기가 계룡산 북쪽 중허리를 둘러가는 김현령재의 고갯길을 개설할 때까지 96년간 신읍 거제와 구읍 고현 사이의 중앙 도로였기 때문에 사람의 내왕이 많았던 고자산재였다.


이 때에 어느 날 거제에서 의좋게 잘 살고 있던 기성반씨(岐城潘氏)의 반명돌(가명)이란 오빠와 여동생 순이(가명)가 함께 아주의 아주신씨(鵝洲申氏) 집안의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다.

  대는 초여름의 장마철로 고자산 고개 중턱을 오를 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비를 피할 곳이 없으므로 비를 맞으면서 오빠는 앞에 가고 여동생은 뒤를 따라 올라갔다. 계룡산의 고개 정상에 오르자 숨가픔을 쉬어가기 위해 앞서가는 오빠가 기다렸다. 이 때에 여동생이 올라오니 비 맞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는 오빠의 눈에는 너무나도 여동생이 예쁘게 보였다. 얼굴은 보름달같이 밝으며, 두 눈은 부용꽃이 활짝 핀 것 같으며, 푸른 소나무 같은 팔자의 눈썹에 샛별같이 반짝이는 눈알, 해당화 핀 것처럼 분홍색의 양 뺨에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진 모양의 길 다란 머리카락에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초여름 고개를 넘어가는 산길이라 옷을 많이 입을 수 없고 백옥같은 모시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촉촉이 비를 맞았으니 온 몸에 옷자락이 밀착되고 처녀의 갸름한 몸매에 유방이 분명하고 허리의 곡선미는 말로만 듣던 여인의 몸매가 과연 이런 것이냐 하고 마침 나체같은 또한 선녀같은 생각에만 도취되어 여동생인지조차 잊을 정도였다. 어느 새 동물성의 발동이 정신없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남성의 신기가 명돌이의 바지 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으니 하늘이 캄캄해졌다. 오빠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교훈을 받은 바 있어 때와 곳도 모르고 정신없이 동물성을 나타내는 자기의 눈과 신기는 인간된 도리에도 있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을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불륜의 꿈같은 죄라도 마음의 용서가 되지 않아 여동생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타이르고는 혼자 남아서 이 고약한 못된 생각을 한 것은 자기의 눈이지만 행동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불륜한 고환(睾丸)인 불알의 잘못이다 하면서 주머니에 있던 작은 칼로써 고환을 찔렀다. 명돌이의 고환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정신없이 쓰러졌으니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동생 순이는 얼마쯤 내려가다 돌아보니 오빠가 오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해서 도저히 혼자서 갈 수 없기에 다시 되돌아와 고개에 올랐다. 오빠를 부르며 숲 속을 헤메다 보니 뜻밖에도 오빠의 몸은 피투성이로 변했고 숨도 쉬지 않는 시체로 변하여 있지 않은가! 순이가 사연을 살펴보니 비맞은 여동생의 몸매에 귀신도 도취될 정도로 되어 인간다운 윤리에 어긋난 짓을 느껴 그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 계룡산 고개를 고자(睾刺) 산치(山峙)라 부르게 되었으니 칼로서 고환(불알)을 찔렀다는 전설이다.

  여동생 순이는 하는 수없이 오빠를 바위틈에 흙을 덮어 매장하고 외갓집이 있는 장승포시 아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로질러 하늘만 보이는 골짜기를 무섭게 여기지도 않고 걸어가면서 한없이 한없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이러한 전설로 고자산치와 울면서 걸어갔다는 길인 양정에서 아주로 가는 옥녀봉 밑의 고개를 울음이재라 불려 오늘날 300년 동안 고개의 이름이 되었다.

  그 후 총각의 오빠와 처녀인 순이가 남긴 사연으로 지방의 신랑신부가 우기일 때는 아무도 이 두 고개를 넘지 않고 멀리 둘러서 다녔다. 이는 동방의 예의와 인륜의 도덕 원리에 대한 갸륵한 전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