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신윤복의 연당입니다.
옛날에는 전체적으로 복스럽다거나 부잣집 맏며느릿감이라는 말이 덕담이었으나 어느 덧 욕이 되고 말았고, 요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라깽이가 되고 싶은 시대가 왔다.
연산군은 성종과 폐비 윤씨 사이의 맏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지 않아서 수업을 자주 빠지기도 했다. 본래 조선조 궁궐에는 ‘양기’라고 하는 기생들이 있었다. 연회 때마다 춤과 노래를 도맡아 하던 전문 예술인들로 3년에 한 번씩 선발됐다. 그러나 연산군의 여성편력은 대단해 조선팔도에서 ‘채홍사’나 ‘채청사’라는 벼슬을 만들어 기생 2000명을 뽑아 흥청, 운평, 지과, 계평 등 135가지 칭호로 분류했다. 특히 이들 중에서 특별히 궁궐로 들어가는 흥청으로 뽑힐 만한 여자아이들은 연산군이 속궁합이 맞는지 손수 잠자리를 해보고 나서 속궁합도 좋고, 테크닉도 좋은 여자들은 천과흥청(天科興靑)으로 특별 관리하고 나머지들은 지과흥청(地科興靑)으로 분류했다.
‘조선은 왕의 나라이므로 백성이든 풀 한 포기든 모든 것은 왕의 것이라’는 군주론을 펼치며 엄청난 수의 미인들을 관리하느라 창덕궁 안에 7원 3각을 지었으며, 흥청들이 쓸 그릇이 모자란다고 상점을 강탈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총애한 흥청에게 막대한 재물을 하사했다. 여기서 마음껏 떠들고 논다는 뜻인 ‘흥청거리다’는 말이 생겨났다.
‘흥청망청’이라는 이동식 러브 가마까지 고안해 봄이면 뚝섬에 행차해 수백 마리의 암말과 수말들의 교합을 지켜보다 곁에 늘어선 기생들을 희롱하기도 하고 기녀들을 발가벗겨 놓고 음주가무는 물론 콩알 줍기(?) 게임까지 즐겼다. 이런 변태적 유희와 가학적인 성행위는 바로 생모인 윤씨의 비극적 죽음이 자학적으로 나타난 행위였다. 게다가 연산군은 나이 들고 뚱뚱한 여자를 즐겼다.
“임금님! 어쩌다 살찐 여인들을 좋아하게 됐어요?”
“응, 허구한 날 흥청망청 파릇파릇한 궁녀들만 상대하다보니 하나같이 나한테 승은을 입으려고 안달들이야. 그런데 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취할 수 있으니까 흥미가 없어지고 식상하더라구. 왜 그런 거 있잖아. 사람은 내 손에 쉽게 닿지 않는 것을 갈구하게 되는 거. 그런데다 난 엄마의 따스한 정을 못 느끼고 살아서 그런지 바짝 마르고 나이 어린 여자들보다는 퉁퉁하고 나이든 여인들이 좋더라구. 푸근하잖아. 새어머니 정현왕후도 자기가 낳은 진성대군만 이뻐했거든.
그래서 나는 왕이 된 다음에 궁궐 잔치에 대신들의 부인을 불러들여 마음에 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했지. 연회가 열리는 날이면 장녹수 누님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부인들을 은밀히 불러줬거든. 머리 모양이 잘못되었다든지, 옷매무새를 고쳐야 한다면서 궁궐 안의 외진 별궁으로 유인해 줬거든. 아예 내 맘에 드는 아낙들의 신상명세서를 확보해 놓았어. 좌의정 박승질의 처, 남천군 이쟁의 처, 봉사 변성의 처, 총곡수의 처, 참의 권인손의 처, 승지 윤순의 처, 생원 권필의 처, 중추 홍백경의 처…. 수도 없지 뭐.”
엄마를 그리워하는 연산군이 어느 날 장터에서 어미 소의 젖을 맛나게 빠는 어린 송아지를 보자 갑자기 시무룩해지면서 “미물도 저렇게 키워주는 어미가 있는데 어째서 나에게는 나를 키워준 어머니가 안 계신단 말이냐”하고 통탄했다. 그리고 연산군과 진성대군이 함께 놀다가 둘 다 바닥에 넘어졌는데 정현왕후는 깜짝 놀라 자신의 아들 진성대군만 일으켜 줘 그 일로 연산군은 정현왕후를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그랬다. 연산군은 풍만하고 살집이 있고 엄마 같은 여자들을 주로 간통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녹수만 봐도 알 수 있다.
희대의 바람둥이를 매혹시킨 장녹수의 매력은 어떤 것이었을까. 장녹수는 매우 가난해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고, 여러 번 시집을 갔다가 제안대군 가노(家奴)의 아내가 돼 아들을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가 됐는데,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 의외로 그녀는 탁월한 미인은 아니고 그냥 중간 수준의 얼굴에 나이도 연상이었으나 30대에도 16세의 앳된 소녀처럼 보일 만큼 동안이었던 데다 영리해서 남자의 뜻에 잘 맞추고, 아양 떨고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연산군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다루었다는 여자, 녹수는 유일 무일하게 연산군을 잘 다룰 줄 아는 여자였다. 연산군의 아명이 ‘백돌’인데 녹수는 연산군을 ‘백돌아’라고 불렀으며 연산군은 후궁이 함부로 자신의 아명을 부르는 것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때로 장녹수는 연산을 어린아이같이 조롱하고 연산을 학대하며 욕을 하기도 했다. 연산군은 정비인 신씨에게 느낄 수 없는 정감을 녹수에게 느꼈고, 녹수의 품을 친어머니와 같다고 표현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 눈과 입을 가진 이들은 혀를 찼지만, 연산은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고, 그런 세계를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연산의 왕비 신씨는 신숭선의 셋째 딸이었다. 연산과 신비의 사이는 좋았다. 연산은 신비를 현모양처요 훌륭한 국모로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왕과 왕비의 사이였다. 연산이 국왕이 아닌 세속적 인간으로 돌아올 때는 장녹수를 아내처럼 대우했고, 장녹수는 그의 아내가 됐다. 서로 아픔이 있는 사람들끼리 상처를 핥아주며 보듬었을 것이다.
정말 살다보니 별 소리를 다 듣는다. S라인이니 44사이즈니 날씬 한 것만 고집하는 시대에 이 땅의 약간 통통한(?) 여인들의 귀가 뻥 뚫릴 얘기가 아닌가! 나라님의 취향이 그렇다니 그 당시에는 깡마른 사람이 찬 밥 신세였단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시를 잘 타고 나야한단 말이다. 우리도 ‘잘살아보세’ 이전 시대까지는 둥글둥글하면서 통통한 얼굴이 미인형으로 어느 정도 몸집도 있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복스럽다거나 부잣집 맏며느릿감이라는 말이 덕담이었으나 어느 덧 욕이 되고 말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라깽이가 되고 싶은 것이다.
아줌마들이 애들스럽게 옷을 입고 나와서는 너무 유치하다고 한 소리 들을까 봐 딸내미 옷 입고 나왔다고 둘러대는데 그것조차 모두들 부러워한다. 아줌마가 훌러덩 벗고 브래지어와 팬티바람에 TV에 나와 알통자랑하며 운동하는 게 영웅처럼 비춰진다. 55사이즈 옷을 조금 작게 만들어 44 표시를 붙여놨더니 매출이 수직 상승했다는 업계의 성공 사례가 떠돌아다닌다. 사실 55만 해도 ‘착한’ 사이즈다. 그 사이즈를 유지하려면 타고나기를 착한 몸매로 났든지, 아니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어야 하는 드림 사이즈다. 연산군 같은 왕이 다시 한 번 부활하든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든지…. 아! 살아 살들아!
이코노미플러스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장 www.성박사.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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