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풍요로운 아침 - 법정스님

難勝 2009. 7. 28. 05:04

 

풍요로운 아침

        산중에는 고요와 거룩함이 있다.


        특히 아침나절의 산은 더욱 아름답고 신선하다.

        들이마시는 공기에는 숲 향기와 밤새 내린

        이슬기가 배어있다.


        이와 같은 신선한 아침을 잘 맞이할 수 있어야

        그날 하루의 삶도 알차다.

        이 거룩한 시간을 신문이나 방송 등 너절하고

        잡스런 바깥 소리로 얼룩지게 한다면 그것은

        고요와 거룩함에 대한 모독이다.


        새날이 시작되는 이 거룩한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달라진다.

        만약 새날의 시작을 부질없는 일로 맞이한다면

        그날 하루는 잘못 산 날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선한 일로 시작한다면 그의 삶은

        그만큼 아름답고 선하게 채워진다.


        신선한 아침을 이와 같이 찬탄하고 있는

        나 자신은 지난 밤 바른쪽 어깻죽지가 너무

        저리고 아파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생,노,병,사, 생명의 주기인 그 병고를

        치르는 중이다.


        석 달쯤 전, 수원지에서 물길을 고치느라고

        무거운 돌을 서너 차례 들어 옮겼더니 그

        뒤부터 바른쪽 가슴께가 바늘끝으로 찌르듯

        따끔거리고 어깼죽지가 납덩이처럼 무겁고

        지렸었다. 담이 들어 그러나 싶어 침을 맞고

        지압을 받았지만 별 효험이 없었다.


        얼마 전 골프를 즐겼던 한 친지로부터 늑골에

        금이 가면 그런 증상이 나타나더라는 경험담을

        들었다. 그는 골프공을 잘못 쳐 이 대지인

        '지구공'을 치는 바람에 늑골에 금이가 한동안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저께 달포 만에 길상사에 나간 걸음에 큰맘

        먹고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은 결과

        바른쪽 여섯 번째 갈비뼈에 균열이 가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치유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다친 부위는 지금 아무는 중에 있다고

        했다. 질병의 원인을 사진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얼마쯤 궁금증이 풀렸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앓을 만큼 앓으면 죽을병이 아닌 한 나을 때가

        있다.


        옛사람의 가르침에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교훈이 떠오른다. 내가 몸소 앓아 봄으로써

        이웃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동병상련.

        우리가 어떤 병고를 겪을 때 그것을 단순하게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이웃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질병을

        딛고 살아간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꼭 같이 주어진 것이다. 찬란한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 우리 모두에게 고루

        주어진 것처럼.


        어둠이 가시고 새날이 밝아 오는 여명은

        신비한 고요로 서서히 대지의 옷을 벗긴다.

        이런 시각 대지의 나그네인 우리들 자신도

        한 꺼풀씩 묵은 허물을 벗어야 한다.

        그래서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즐거움이 됐건 괴로움이 됐건 겸허히

        받아드려야 한다.


        오늘 아침, 내 식탁에는 들꽃이 한 다발 꽂혀

        있다.

        가을들녘의 풍요에 못지않은 풍요로운

        내 아침이다.


        당신은 이아침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만날 그날이 그날처럼 그렁저렁 맞이하고 있다면

        새날에 대한 결례가 될 것이다.

        누가 됐건 한 생애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하루하루는 그 빛으로 인해 새날을 이룬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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