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불교와 한민족

難勝 2009. 8. 18. 05:02

 

 

우리 조상들은 힘센자에게 강하고 약한자에겐 약한 지혜로운 민족입니다.

이것은 바로 보이지않게 자기 내면에 불심이 있기때문입니다.


고조선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민족은 슬기롭고 강했으며 지혜로웠습니다.

불교가 크게 꽃피었던 삼국시대에서 우리민족은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먼저 중국대륙의 강한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맞선 고구려라는 자랑스러운 우리조상님들을 보면,

고국원왕이 북방민족과 백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고구려는 절망감에 빠져있었지만,

잠시나마 북중국을 통일했던 전진의 위대한 호불군주 부견이 소수림왕에게 불교를 전파하고 부처님의 말씀과 지혜를 전하면서 고구려는 다시 강해지기 시작했고,

광개토왕은 평양에 9개의 절을 짓는 불사를 일으켜 그 공덕으로 우리민족들이 살아갈수 있는 땅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수왕.문자명왕의 전성기시대와 불심은 계속해서 같이 공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중국 고유종교인 유교.도교가 유입되면서 고구려의 불심은 약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연개소문정권에 이르러서 불교를 탄압하면서 고구려는 멸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때 전해지는 유명한 고구려스님 보덕화상님이 신통력으로 절을 다른곳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백제왕국 역시 근초고왕의 대륙백제경영과 성왕의 백제의 중흥과 불교의 도입.발전은 이 두 분의 호불군주시대와 우연하게도 일치합니다.


지구상에 로마제국을 제외하고 유래를 찾기힘든 천년왕국 신라는,

김유신장군과 문무왕의 통일의 두 주역이 삼국통일의 공덕을 부처님의 대승불교로 돌리면서부터 수많은 절을 창건하여 불교문화의 전성기를 이룩한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라는 그 왕조의 멸망도 아주 처참하게 이루어진게 아니라 같은 부처님나라였던 고려에 평화롭게 양보하면서 조용히 끝납니다.

부처님의 사상을 실천한것입니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 역시 후삼국통일의 공덕을 부처님의 지혜로 받아들이고

개태사를 지어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며 500년간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고려시대에 우리민족은 개방적이었고 자주적이었습니다.

수많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호국불교의 기치를 내걸고 모두 막아내었고,

무자비하게 잔인했던 몽골제국도 주변의 나라들을 철저하게 짓밟았지만 우리나라는 그 국호를 유지해주었고 내정에 간섭하는 정도로 양보하고 존중해주었습니다.

아마 정말 8만대장경의 간행으로 부처님이 감동을 받아 우리민족을 지켜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역동적이고 강했던 고려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조선시대로 들어가면서 중국에 복종하고 일본에게는 국토을 유린당하는 힘없고 사대적인 나라로 전락하게 된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불교탄압시대에도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정치적으로는 큰 과오가 있었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왕이 되기 전 남해 보리암에서 기도를 올리고 왕이 된후에 역시 그 공덕을 부처님께 돌려 불교의 외부적인 병폐들만 씻어내는 선에서 불교를 보호하셨고,왕에서 물러난 후에는 계속 참회정진하면서 불도를 닦았다고 합니다.


이성계 역시 정치적인 과오의 업보로 자식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을 보게 된것이 바로 인과응보인것을 깨닫게 된것입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본뜻과 다르게 무자비하게 불교를 탄압하다가 위대한 성군인 세종대왕과 세조대왕에 이르러서 다시 불교는 일시적이나마 보호를 받게 됩니다.

(물론 세종은 국가적차원에서는 불교를 통제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신봉했습니다)


특히 세조는 조선불교를 일으킨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세조대왕이 정치적으로 큰 과오가 있어 그 업보로 세조는 문둥병을 얻어 고통을 받지만 세조대왕의 참회에 감응받은 문수보살님이 병을 낫게 해준 이야기는 불자님들이라면 잘 아실겁니다.


세조 사후 다시 불교는 시련을 받게 되다가 문정왕후에 이르러서 불교는 다시 융성하게 되고 문정왕후의 승과부활로 인해 이 일시적인 시기에서 후에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서산대사.사명대사등 위대한 호국불교를 받든 위대한 승병님들이 배출된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문정왕후와 세조는 역사책에 보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악당으로 묘사되어있지만 불자의 입장에서 변명을 해본다면 그건 정치적인 반대세력을 제거한 것이지 죄없는 백성들을 죽인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의 역사는 중화주의와 사대주의.배타적인 유교주의에 빠진 유학자들이 기술한것이라 있는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유교국가에서의 불교는 마치 이적단체와 같은데 이적단체의 수괴를 좋게 묘사할리가 없는것입니다.


어쨌든 문정왕후가 죽으면서 불교는 다시 탄압을 받았고 유교사대주의에 빠져들다가 급기야는 바로 그 업보를 받아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전체가 지옥으로 변하게 되고,

이 와중에 이순신장군같은 군신과 서산, 사명대사님의 뛰어난 능력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은 구제받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불교를 탄압하다가 정조대왕시대에

잠시나마 불교에 대한 정책이 부드러워지고 정조는 개인적으로 불교에 호감을 갖게 됩니다.


정조사후 계속해서 힘없는 군주들시대와 불교탄압이 반복되다가 결국 일본에게 다시 강제합병당하는 치욕까지 안게된것입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신기하게도,

지혜롭고 강한 군주, 강했던 시대에는 동시에 불교가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수있습니다.


오늘날의 불교는 시대의 변화로 인해 오래된 문화유산의 하나로만 치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다시 한번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전해지는 한민족이 되어서 예전의 영화를 되찾길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옮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