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화랑들은 어떤 검법을 연마하였을까.
그리고 신라 무인들의 공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이가 김유신 등 동패들과 함께 열심히 격검 수련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지요.
신라 검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료는 ‘무예도보통지’입니다.
조선 정조 때 편찬된 이 무예서는 조선의 각 군영에서 익히던 십팔기의 교본이지요. 이 중에는 본국검(本國劍)이라는 기예가 있습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 편에 보면, “이 검법의 기원을 신라 화랑 황창랑에 둔다”고 하였습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여지승람’에 실린 고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황창랑은 신라 사람이다. 나이 7세에 백제에 들어가 시중에서 칼춤을 추었는데 이를 구경하는 사람이 담을 이루었다. 백제왕이 이를 듣고 불러서 마루에 올라 칼춤을 추게 하였다. 창랑이 틈을 타 왕을 찔렀다. 이로 인해 백제국 사람들이 창랑을 죽였다. 신라인들이 창랑을 애통히 여겨 그 얼굴을 본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다. 지금도 전한다.』
여지승람뿐만 아니라 ‘동경잡기(東京雜記)’에도 '칼춤의 유희'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서는 창랑이 백제왕을 찔러 죽이는 것으로 나옵니다.
위의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본국검은 신라 화랑의 검법이 조선에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여지승람은 조선 9대왕인 성종 때 각 도의 풍속과 지리 등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창랑의 칼춤이 전해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본국검의 한 동작인 금계독립세입니다.
본국검은 원래 검법입니다.
이는 명칭에서 뿐만 아니라 본국검의 초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법의 초식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고 찌르는 동작이 유난히 많은 것도 검법이기 때문이지요.
화랑 등 신라의 무인들이 연마하던 검법이 본국검이 아닐까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황창랑을 예찬해서 쓴 김종직(1431~1492)의 시가 남아 있습니다.
『황창랑: 나라를 떠나 키는 석자도 못 되는 어린 나이에 어찌 그렇게 웅걸하고 날랜고. 평생에 왕기 자신 스승으로 삼아, 나라 위해 치욕을 씻었으니 마음에 뉘우침 없네. 칼을 목에 겨누어도 다리 떨지 않고, 칼날이 심장을 가리켜도 눈이 흔들리지 않았네, 공을 이루고는 춤을 그치고 가버리니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를 뛰어 건널 듯』
* 황창랑의 칼에 찔린 백제왕은 누구일까요. 정사에는 기록이 전혀 없지요. 여러분의 상상력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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