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펌)
'한국 아동문학의 아버지' 석동(石童) 윤석중(尹石重·1911~2003)이 해방 직후 기존의 '애국가(愛國歌)'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代案) 국가'를 만든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김연갑(金煉甲) 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발굴해 공개한 윤석중 작사 '우리나라 노래'는 일간지 자유신문 1946년 8월 8일자에 실린 것으로, 지금까지 그의 저서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자유신문은 하루 앞선 8월 7일자에 "조선아동문화협회가 윤석중에게 우리나라 노래 새 '애국가' 작사를 의뢰했다"고 보도한 뒤 8일자 '새 애국가 우리나라 노래, 윤석중씨 작사를 발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 윤석중 선생이 해방 직후에 작사한 새 애국가 ‘우리나라 노래’의 가사를 게재한 1946년 8월 8일자 자유신문. 이 기사는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는 해방 첫돌 기념으로 새 애국가 '우리나라 노래'를 윤석중씨 작사로 제정 발표하였는데 일반의 작곡을 환영한다 하며 가사는 다음과 같다"고 썼다.
1절
아득한 역사를 품에 품고
구비처(굽이쳐) 흐르는 두만강물
세계의 하늘과 서로통한
자유와 평화의 우리하늘
2절
백두산 꼭대기 맑은정기
대대로 물이며(물리며) 크는겨레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로
나날이 살찌는 우리옥토
<후렴>
무궁화 (꽃)피는 나의조국
이땅에 태어난 복된우리
기존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란 가사가 '소멸적이고 퇴행적'이라는 당시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윤석중의 '애국가'는 새 나라의 발전을 염원하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음이 주목된다.
이 '애국가'는 1946년 8월 잡지 '민성(民聲)'에 '돌격병(突擊兵)'이란 필명을 지닌 사람이 쓴 기사 '애국가는 누가 썼느냐?'에서 "전국민 대표기관의 위촉을 받은 듯이 우쭐하여 썼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윤석중은 기존 '애국가'에 비판적이었다. 2절의 '철갑을 두른 듯' 등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애국가란 명칭에 대해서도 "애 국가, 어른 국가 따로 있나. '나라사랑 노래'가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는 작고 3년 전인 2000년 나라사랑 노래 '동해물과 백두산'을 새로 지었다. 작곡가 김동진(金東振)씨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어제 없는 오늘이 어디 있으며 오늘 없는 내일이 어디 있으랴… 안 마르는 동해물 푸른 그 물결 닳지 않는 백두산 옛날 그 모습"이라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윤석중은 왜 1946년의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김연갑 이사는 "해방공간에서 새로운 국가 상징으로서 별다른 이론이 없었던 태극기·무궁화와는 달리 '애국가'는 논란이 많았다"고 말했다.
기존 곡조가 스코틀랜드 민요였고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에선 기독교 찬송가의 색채가 깃들어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좌·우 모두 마찬가지였다. 1946년 1월 12일자 중앙신문에서 평론가 박영근은 "8·15 직후 이제 즉시 애국가를 혁신하기를 반(反)파쇼운동의 일환으로써 제의하는 바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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