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五岳·五嶽)사상
우리 나라에는 삼신(三神)사상에서의 산악신앙을 비롯, 오악사상, 진산에 제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중국 고대의 제왕들은 오악을 여러 신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믿고, 오악에서 봉선(封禪)과 제사 등의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다.
'오악(五嶽)'이란 말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 BC 156∼BC87) 때 처음 등장했으나 그 이전 진시황도 동악인 타이산(泰山)에 올라 제사(封禪)를 올렸으며 주나라에도 이러한 사상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5악을 왕(王)으로 봉했고, 송(宋)의 진종(眞宗)은 제(帝)로 봉했며, 명(明)의 태조(太祖)는 5악을 높여 신(神)으로 삼았다.
원주 동악단
치악산의 서쪽 기슭, 원주시 행구동에는 동악단(東岳檀)이 자리하고, 그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주 시내에서 약 6km 지점에 위치한 국형사(國亨寺)는 신라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한 절로, 본래는 보문암(普門庵)이란 조그마한 암자였다.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의 둘째딸 희희공주가 불치의 병을 앓다가 물 맑고 경치 좋은 이 곳에서 백일기도 요양 끝에 병이 낫자, 정종은 사찰을 크게 세우고 절 이름을 '국형사'라 고쳐 부르게 하고, 병이 완쾌된 것은 치악산 산신령이 보살펴 준 덕이라고 하여 동악단을 쌓도록 했다. 그리고 봄-가을로 호국대제인 동악제를 봉행하도록 했는데, 이 때 조정에서는 향과 제문을 내렸으며, 원주를 비롯한 횡성, 영월, 평창, 정선, 여주, 제천 등 7개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를 지냈다고 한다.
노송으로 울창하게 둘러싸인 동악단은 1982년, 국향사의 신도회에서 옛동악제를 부활시키고자 복원하였는데, 원주지역의 문화제 행사인 '치악문화제'를 개최할 때, 이 곳에서 봉제(奉祭)로 시행하고 있다.
五嶽 또는 三嶽에 대해서는 시대와 왕조의 정책에 따라 자주 변경되었고, 기록도 불분명합니다.
오악은 삼국시대에는,
동악 - 토함산(吐含山), 서악 - 계룡산(鷄龍山), 남악 - 지리산(地理山), 북악 - 태백산(太伯山), 중악 - 부악(父岳 ; 팔공산)으로,
조선 초기에는 4악(四岳)이라 하여,
중악 - 삼각산(한성), 서악 - 송악산(개성), 남악 - 지리산(남원), 북악 - 비백산(정평)으로,
조선 중기에는 5악으로 하여,
삼각산(중악), 지리산(남악), 구월산(서악), 금강산(동악), 장백산(북악, 백두산)으로 바뀌었고,
삼악도 상중하악단으로 칭할 때는,
조선 고종 때에는 상악단(上嶽壇)-묘향산, 중악단-계룡산, 하악단-지리산입니다.
원주의 동악단이 어디어디에 속하는 동악단인지는 불분명하며,
굳이 이를 구분하는 일도 별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위크 선정 '세계 명저 100권'에 대한 의문 (0) | 2009.09.25 |
---|---|
한국속담 1000개 (0) | 2009.09.24 |
첨성대는 천문대 아닌 선덕여왕 상징물 (0) | 2009.09.23 |
충무공 이순신의 참모들 - 정운, 이순신, 나대용, 정걸...... (0) | 2009.09.23 |
똥속에 빠진 외아들 (0) | 2009.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