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충무공 이순신의 참모들 - 정운, 이순신, 나대용, 정걸......

難勝 2009. 9. 23. 03:46

충무공 이순신의 참모들

임진왜란에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에 맞서 23전 23승의 전과를 기록합니다. 개전 초기, 육군이 속수무책으로 일본군에 밀리며 한 달여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당했을 때 수군은 옥포해전으로 첫 번째 승전보를 조선에 안겨줍니다. 또한 이순신 제독이 백의종군하는 사이 칠천량해전으로 궤멸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명량대첩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재건된 조선 수군은 다시금 제해권을 장악하며 일본수군에 마지막 타격을 가합니다.

 

 조선수군의 부활을 알린 ‘명량대첩도’ 


조선수군이 전략, 전술, 무기 등 모든 분야에서 앞서가며 동아시아 최고의 수군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물론 이순신 제독의 뛰어난 능력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순신 제독과 생사를 함께 한 그의 참모장수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해군에서는 역사 속 큰 공을 세운 해군 장수들을 잠수함의 함명으로 명명하고 있는데요. 유독 이순신 제독 휘하의 장수들이 많은 걸 보면 그들의 남다른 능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무공 이순신과 참모들

오늘은 서로 다른 개성과 장기를 가지고 임진왜란 해전 전승의 신화를 만든 이순신 제독의 참모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참모들의 면모, 함께 살펴보시죠.


두려움 없는 선봉장 -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

용맹하기로 이름 높았던 정운은 1591년 녹도만호(현 고흥일대)로 임명됩니다. 이순신 제독의 함대에서 선봉장의 역할을 맡아 옥포ㆍ당포ㆍ한산도대첩 등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최초로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에 출정하도록 이순신 제독에게 강력히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정운은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하였고 그의 죽음을 아쉬워한 이순신 제독은 제문을 지어 추모합니다.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과 군관 송희립(宋希立)만은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순신에게 진격하기를 권하여 말하기를 ‘적을 토벌하는 데는 우리 도(道)와 남의 도가 따로 없다. 적의 예봉을 먼저 꺾어놓으면 본도도 보전할 수 있다.’ 하니 순신이 크게 기뻐하였다.

- 선조수정실록 25년(1592년) 5월 1일 중에서 -


숨은 팔방미인 조력자 - 중위장(中衛將) 입부(立夫) 이순신

임진왜란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뿐만이 아니라 또 한명의 이순신이 활약했습니다. 바로 입부(立夫) 이순신(李純信)입니다. 그는 중위장(中衛將)으로서 옥포해전에서 노량해전까지 언제나 충무공 이순신의 곁에 함께 합니다. 두드러지는 장수는 아니었으나 입부(立夫) 이순신의 다방면에서의 조력이 있었기에 충무공 이순신의 함대는 전력을 계속해서 강화시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기술과 창조의 달인, 거북선을 건조하다 - 군관(軍官) 나대용

임진왜란의 전황이 한창 치열해져 가던 1592년 7월, 사천 앞바다에는 일본 수군을 경악시킨 새로운 전선이 등장합니다. 바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입니다. 조선 수군의 돌격선으로써 이후 해전에서 큰 전과를 거두게 되는 거북선은 군관(軍官) 나대용이 발명한 전선이었습니다. 나대용은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 제독의 휘하로 들어가 거북선을 비롯한 병선을 건조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옥포ㆍ당포ㆍ사천해전 등에도 참전합니다. 종전 후에도 창선(鎗船)과 쾌속정인 해추선(海鰌船) 등을 창안하고 건조하는 등 수군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경험과 노련미의 노장 - 조방장(助防將) 정걸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정걸은 다른 장수들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중 세운 공은 누구 못지 않을 것입니다. 정걸은 1514년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미 여러 차례 수군절도사와 병마절도사를 역임합니다. 1591년 전라좌수영 경장(조방장)으로 돌아온 정걸은 팔순을 앞두고 있었지만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으로 이순신 제독을 도와 조선수군이 연전연승하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충청병사로 재직 시에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던 행주산성에 화살을 수송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의 아들인 정연은 정유재란 발발 후 의병을 일으켜 흥덕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손자인 정홍록 또한 전사하여 3대가 모두 순국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593년 정걸에게 내려진 교지


“그날 묘시(卯時)로부터 신시(申時)에 이르도록 싸우느라 화살이 거의 떨어져 가는데 마침 충청 병사(忠淸兵使) 정걸(丁傑)이 화살을 운반해 와 위급을 구해주었습니다.”

- 선조실록 26년 2월 24일 중에서 -


그리고 남겨진 이름들...

위에서 소개해드린 인물들 외에도 충무공 이순신에게는 권준, 김완, 어영담, 송희립, 신호, 이언량, 이억기, 이운룡 등의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순신제독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며 일본수군을 상대로 23전 23승의 신화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