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보리암과 금산의 케이블카
지리산 줄기가 남으로 뻗어 가 큰 섬을 만들었다.
황금 들녘, 쪽빛 바다, 다도해 섬들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산도 빚어 놓았다. 남해 금산이다. 681m 산이 무려 38경(景)을 안고 있다. 대부분 기암괴석이고 저마다 설화를 머금었다.
시인이 그 바위들에서 인간의 운명적 만남과 헤어짐을 보았을 만도 하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이성복 '남해 금산').
▶금산 제7경이 이태조 기단(祈壇)이다.
삼불암 아래 동굴 곁에서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려 개국(開國)의 꿈을 이뤘다는 곳이다. 이성계 아니라도 누구나 금산의 예사롭지 않은 풍광에서 상서롭고 영험한 기운을 느낀다. 남해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금산 정기를 타고났다는 믿음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밴다고 한다. 그래선지 정·관계에서 입신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들 말한다.
▶이성계는 절벽 오른쪽 보리암을 향해 기도하면서 "소원이 이뤄지면 산에 비단(錦)을 둘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조선 18대 현종이 산 이름을 금산으로 바꾸고, 보리암을 왕실의 소원을 비는 원당(願堂)으로 삼았다. 정상 망대(望臺) 아래 절벽에 걸리듯 들어선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기도 효험이 가장 크다는 3대 관음도량에 꼽힌다.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 해수관음상과 마주 서면 뒤로 나란히 선 제석·일월·화엄·대장 네 봉우리가 불상 그 자체다.
▶남해군이 보리암 저 아래 바닷가 상주에서 금산까지 3.1㎞ 케이블카를 놓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추진했다가 금산이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들어 있어 포기했던 계획이다. 그러다 환경부가 2㎞로 제한했던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 케이블카 길이를 5㎞로 늘려 완화하는 자연공원법 시행령 입법예고를 한 게 계기가 됐다. 작년 통영 미륵도에 놓은 케이블카가 한 해 8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려주는 데서도 자극을 받았다.
▶금산은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이면 8부 능선 주차장에 닿는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 자기 차로도 오를 수 있다. 그 3㎞ 포장도로를 북쪽으로 낸 것도 바다 쪽 장쾌한 전망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케이블카는 상주 면민과 향우회의 숙원이라고 한다.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뜻을 이해하면서도 금산과 보리암의 기운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걱정스럽다. 케이블카를 놓게 되더라도 금산의 기상에 흠이 나지 않도록 노선을 잘 고르는 현명함이 필요할 것 같다.
조선일보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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