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낙엽을 태우면서

難勝 2009. 11. 4. 04:54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