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고무신의 추억

難勝 2009. 11. 21. 05:22

 

 

고무신은 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신발


인류가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것은 약 4만년전이라고 학자들은 측정한다.

1991년 해발 3200m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미라 '외치'는 5300년 전의 석기시대인이다.

그는 풀잎 망토와 식물로 잘 짜여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인간이 정착해서 살아가는데 사용해야 할 주거나 생활용품들은 그 지역에서 가장 흔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한반도는 쌀농사가 주종이어서 볏짚이 가장 흔하다.

볏짚으로 집도 짓고, 지붕도 얹고, 비올 때는 도롱이도 만들어 걸치고, 땔감으로도 쓰고, 신발도 만들어 신었던 것이다.

아무나 손쉽게 만들어 신을 수 있었던 짚신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신었던 보편적인 신발이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통풍도 잘 되고 가벼워서 맨발로 신고 다니기에 매우 편리하고 건강상으로도 좋았으리라 여겨진다.

비 오는 날 신고 다녀도 별로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는 버선을 신고 짚신을 신는다고 해도 발이 시렸으리라.

봄에 해토하면 질퍽한 땅을 디뎌야 하는데, 차거운 황토물이 발을 적셔오고 젖은 만큼 시려오는 그 고초를 어떻게 감당했었는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신발의 혁명을 불러온 고무신의 등장은 1922년의 일이다.

고무신은 질겨서 오래 신을 수 있고, 비가와도 물이 새지 않으니 기능성도 있고, 거기에다가 가격도 비싸지 않아 선풍적인 인기속에 대중화 되었다.


고무신처럼 짧은 기간에 전국을 장악한 상품도 없을 것이다.

남자 고무신은 짚신 모형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었고 여자 고무신은 버선의 모형을 본떠 만들었다.


고무신은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신발이다.

1930년대에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옥상에 있었던 까페에서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960년 때 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이런 모습이 많이 있었다.


신발은 신분에 따라 다르다.

왕의 소장품인 금동제 신발이 있는가 하면, 말탈 때 신는 가죽장화도 있고, 서구에서는 구두 높이가 지위를 상징하던 때도 있었고, 14세기에는 구두 앞굽이 길수록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때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시대에는 소가 농사에 큰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개국과 동시에 소 도살을 금지시켜서 가죽문명이 발달 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가죽신발은 극히 일부의 상위계층만의 특권일 수 밖에 없었다.

 


신발은 자신이 봉사해 온 주인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울타리도 없는 시골 외 딴집 툇마루 밑에 벗어 놓은 낡은 검정고무신을 보면 서구의 낡은 구두처럼 주인의 고달픈 인생을 극적으로 보여 주지는 않는다.


고무신은 그저 은근히 힘든 삶을 나타낼 뿐이다.


고무신에는 신분도 없고 유행도 없다.

고무신이 최초로 등장 했을 때 왕(순종)이 처음으로 신었고, 궁녀들도 따라서 신었다.

양반도 신었고 쌍놈도 신었다.

도시에서도 신었고 농촌에서도 신었다.

잘 차려입고 신는 신발도 고무신이요, 일하러 갈 때 신는 신발도 고무신이었다.

명절 날, 학교 갈때, 혼인식장에 갈때, 웃물가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었던 신발이 고무신이다.

그야말로 평등하게 신었던 신발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었던 전천후 신발이기도 하다.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 고무신은 아이들에게 장난감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개울물에 띄우면 배가 되고, 고무신으로 송사리도 잡고, 잡은 송사리는 물이 새지 않는 신발속에 넣어 두기도 한다.

고무신을 반으로 접으면 자동차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 끼리 싸울 때 고무신을 벗어 들고 노려보면 고무신은 무기로서의 위협을 충분히 수행했다.


고무신은 우리의 생활역사를 완전히 바꿔놓고 가 버렸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 흔한 박물관 하나 남겨놓지 않고 사라져가고 있다.


머지않아 아이들이 "고무신이 뭐야"하고 묻는 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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