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황룡사의 구층탑과 명장 아비지

難勝 2009. 11. 25. 04:05

황룡사의 구층탑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때다.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율사는 태화지를 지나다 갑자기 나타난 신인을 만나 수법을 받았다.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자를 왕으로 삼았으므로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소. 때문에 이웃나라에서 침략을 도모하는 것이니 그대는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시오.]

[돌오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요?]

[황룡사 호법룡은 나의 장자로소 범왕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 그 절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9개의 야만족이 와서 조공을 바치며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오. 또 탑을 세운 후 팔관회를 베풀고 죄인을 구하면 왜적이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경기남쪽에 한정사를 짓고 나에게 복을 빌면 나도 또한 그 덕을 갚을 것입니다.]

선인은 말을 마친 후 홀연히 사라졌다.

선덕여왕12년 (643), 당나라 황제로부터 불경, 불상, 가사 등을 받아가지고 귀국한 자장율사는 즉시 왕에게 와뢰었다.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시면 외국의 침략을 막을 뿐 아니라 이 나라 백성들이 안녕을 누릴 것이옵니다.]

 

선덕여왕은 이 의견을 신하들에게 물었다.

신하들은 한 결 같이 조각계의 명장으로 소문난 백제의 아비지를 데려다 탑을 조성하자고 말 했다. 신라 조정에서는 보물과 비단을 백제에 보내고 아비지를 청했다.

신라의 대탑 조성을 위해 특별히 초청을 받은 아비지는 내심 즐거웠다.

[신라에는 나만한 공장이 없는 모양이지. 이 기회에 내 예술성을 과시해야지. 아냐 하필이면 원수국에다 백제인의 솜씨를 심을 필요가 있을까?]

즐거움도 잠시, 망설임에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리는 아비지에게 백제의 벼슬아치들과 가까운 친구들은 {예술성 국경이 없다}며 서라벌 중심부에 백제인의 넋을 심고 돌아올 것을 권했다.

사비성을 떠나 서라벌에 도착한 아비지는 이간(신라 17관등의 제 2위) 용춘이 거느린 소장 2백여 명과 함께 탑불사에 들어갔다.

두 달 남짓한 세월이 지나 황룡사 법당 앞에는 높다란 탑주가 세워졌다.

탑 주가 세웠던 날 밤. 경내엔 휘영청 밝은 달빛만 가득할 뿐 주위는 죽은 듯 고요했다. 아비지는 절 마당에 내려와 탑주를 바라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영겁에 빛날 탑을 세워야지.]

순간 아비지의 뇌리엔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신라는 왜 갑자기 9층탑을 세우는 것일까? 절을 지을 때 함께 세울 일이지 이제 와서...]

그 날 밤 아비지는 백제가 적국의 침공으로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뒤숭숭한 꿈자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아비지는 백제로 도망칠 결심을 했다.

[예술이고 백제의 넋이고 뭐고 간에 얼른 처자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짐을 챙긴 후 밤이 되길 기다린 아비지는 용춘의 집을 빠져나와 황룡사로 갔다. 그는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꿈이 다만 꿈이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법당에서 나와 다시 한 번 탑주를 바라보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기 전에]

마음을 다져먹고 막 돌아서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어디선가 일대 광풍이 몰아치면서 달빛에 먹구름이 가리우 더니 천둥번개가 천지를 진동하는 것이었다. 놀라 법당으로 뛰어들어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던 아비지는 또 다시 놀랬다.

광풍이 멈춘 법당 앞에는 어디선가 노스님 한분과 키가 구척이나 되는 장수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자기가 세운 탑주와 똑같은 탐주를 순시간에 세웠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그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는 필시 부처님께서 날 보고 탑 불사를 계속하라는 계시일게다.]

아비지는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일에 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지의 가슴에 또 하나의 파문이 일었다.

[이 탑이 완성되면 9개 나라에서 우리 신라에 조공을 바친다며...]

[그렇다는구먼.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 응유, 6층 말갈, 7층 단원, 8층은 여적, 9층은 백제와 고구려를 상징 한다는구먼.

일터에서 인부들이 주고받은 말을 무심히 듣게 된 아비지는 그동안의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더 이상 탑을 조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몸져누워 생병을 앓았다. 아비지에게 사모의 정을 품은 채 늘 가슴만 조이던 용춘의 딸 아미는 아비지의 방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정성껏 간병했다.

[낭자, 낭자는 9층탑을 세우는 이유를 자세히 알고 있지요?]

[소녀,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그대 역시 신라의 여인이구려.]

아미 낭자는 가슴이 아팠으나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며칠간 병석에서 번민한 아비지는 모든 것을 부처님의 뜻으로 돌리고 탑 불사에 전력, 총 높이 2백 25척의 거대한 탑을 완성했다.

찬란한 햇살 속에 새로 탄생 된 신라의 보물을 바라보는 아비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 그는 은빛 햇살이 반짝이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소리에 뒤이어 또 하나의 [풍덩]소리가 들렸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비지를 따르던 아미 낭자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른 것이다.

신라는 이 탑을 세운 뒤 삼국을 통일했고 황룡사 9층 석탑을 신라의 3대보물중의 하나가 됐다.

이 탑이 있던 경주 황룡사의 일대를 구황동이라 부른다. 황룡사를 비롯 분황사 황복사 등 [黃]자가 든 아홉 절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또 일설에는 진흥왕때 황룡사터에 신궁을 지으려고 하는데 아홉 마리의 황룡이 나타나 승천하므로 궁전대신 절을 세우고 구황동이라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