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제15회 포교사고시 예상문제 해설(11/26)

難勝 2009. 11. 26. 05:30

14.  다음 중 백중에 관한 설명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은? 

 ① 음력 7월 15일로 우란분절이라고도 한다.       ② 스님들은 자자(自恣)를 행하는 날이다.

 ③ 신자들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법회를 갖는다.  ④ 아난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되었다.


우란분절은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목련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됩니다.

참고로 우란분절의 해설 붙입니다.


우란 분절, 백중우란분은 우리말로 ‘거꾸로매달린 자를 풀어 준다’는 뜻으로, 우란분절이란 우란분 법요를 봉행하는 명절을 말한다. 이 낱말의 뜻이 그러하듯 이 날은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린 듯한,또는 그보다 심한 고초를 받는 중생들은 모두 풀어주는 날로서, 부처님의 자비사상이 극치를 이루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우리 눈에 보이는 생명의 고통뿐만 아니라 눈에보이지 않는 귀신 세계 특히 지옥 세계의 중생까지를 그 대상으로 삼아 이들의 구원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도록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 시기는 7월 15일, 제방의 여름 안거가 끝나는 날을 기하라 하였으며, 이 날에 제방의 수행자들이 한여름의 공부를 끝내고 자신들의 공부를되돌아보며 점검하는 의식에 의식에 곁들여 지옥에 있을 선망 부모에서부터 무주고혼들까지 해탈시킬 것을 발원하라고 했다. 우란분경에서는 제사지내는 법으로, 백 가지 맛있는 음식과오과 등을 큰 바가지나 양동이에 가득 담아 불전 올리고 선망부모와현재부모를 위해 축원하고 이어 시주들을 위해 축원한 뒤에 비구들이 음식을 받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선방부모나 현재부모뿐만 아니라 시주들의 가정이 복되기를 바라는 곧 모두가 복 받기를 바라는 날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우란분절을 우리나라에세는 백종(百種)이라 부르고 었으니, 이는 백 가지 음식을 차려 선망부모를 천도한다는 뜻이요, 또 백종(白踵)이라 하였으니 이때는 농부들이 논일을 끝내어 발꿈치가 희어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쨌든 백가지 음식을 정성껏 차려 놓고 주로 선망하신 부모들을 지옥고에서 건져 주려는 효심을 바탕으로 하여 대소 시주의 현재의 안락까지를 보장받는 날로서 일대 사면(赦免)의 날이다. 그래서 불교 교단은 구정이나 신정을 설로 보지 않고 이 우란분절을 설로 삼아서 출가자의 법랍을 세는 기준으로 삼게까지 되었다.


15. 신라 때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주어 지키게 하고 수(隋)나라에 직접 걸사표(乞師表)를 바친 스님은?  

 ① 원효         ② 의상           ③ 원광          ④ 자장


세속5계는 신라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가르친 계로, 국가간 쟁탈전이 심하던 당시의 상황에서의 일종의 방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살생 등의 문제가 있어 세속의 계로 규정하여 계율의 유연한 적용을 주장였습니다.

관련 이야기 첨부합니다.


원광법사(圓光法師)는 신라 불교계에 있어서 혜성과 같은 존재로서 온 국민의 숭앙을 받던 분이다. 성은 박(朴)씨로, 신라 22대 법흥왕 19년(532) 서라벌 계림부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천재로서 어렸을 때 유교에 대한 학문을 모두 전수하고 25세 때 중국에 유학했다. 그 당시 중국은 남북조(南北朝) 시대로 진패선이 양(梁)을 대신하여 황제가 되었으니 이 나라가 곧 진(陳)나라다.


 원광법사는 중국에 들어가 유교의 지식을 넓히는 동시에 불교도에 호기심을 느끼던 참에 대장엄사의 민공스님의 제자에게서 불교의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가 불교의 진리를 듣고 보니 유교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불현듯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먼저 소승론인 아비달마론과 구사론과 성실론을 배우고 연구하였으며 다음에는 대승불교인 십지론과 열반경까지 연구하여 학승으로서 불교의 거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치 아니하고 사교입선(捨敎入禪)… 교를 버리고 선으로 들어서 실지로 마음에 근본바탕이 무언가를 탐구하는 좌선을 여러 해에 걸쳐 수행하였다. 이 참선을 수행할 때는 번화한 곳보다 고적한 곳이라야 된다 하고 호구산에 들어가서 피나는 정진을 하였다. 법사는 이름을 감추고 은거생활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명성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방에서 구름같이 모여들어 감로수를 청하였다. 개중에는 세속신자인 청신사도 많이 모여 법을 청하였으므로 반야경을 강설하기도 하였다.


 법사가 중국에 유학한지 30여년 후인 진 선재 말년에 양견이 난을 일으켜 국도에 침입하였다. 이 때 법사도 그 난리에 휩쓸려서 어느 절에 숨어 있다가 그만 난민에게 붙들려서 꽁꽁 묶이고 말았다. 그런데 적장이 멀리서 그 절을 바라보니 그 절에 불이 나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불길이 타오르고 있지 않는가! 적장은 곧 군사들을 불러 그 곳 절의 불을 꺼 주라고 명령했다.


 군사들이 한 걸음에 그 곳에 와 보니 한 떼의 난민들이 한 스님을 탑에다 꽁꽁 묶어 놓고 돈을 내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약탈당해 쌀 한톨, 돈 한 푼 있을 리 없는 원광은 다만 적묵히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화가 치민 난민들은 그를 죽이려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찰라, 그 스님의 머리 위에 찬란한 불빛이 환하게 서려 원광법사의 주위를 맴돌았다. 무리들은 일변 놀라고 또 밝은 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비틀거라고 있었다. 적의 군사들은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겨 달려들어 법사의 결박을 풀고 그를 곧 적장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적장은 원래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므로 그를 후대하여 극진히 보호하였다. 다음 날 수양제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양제는 그를 스승으로 모고 각별하게 대우하였다.


 원광법사는 누가 보아도 머리가 숙여지고 공경심을 일으키게 할 만한 체격과 학식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키가 7척이나 되고 부리부리한 눈에는 광체가 서려 있고 당당한 풍체는 선풍도골인데, 그가 한번 웃으면 춘풍에 피어나는 꽃과 같고 한번 노하면 추상열일과 같아서 가히 쳐다볼 수 없는 데다가 학문이 바다와 같이 깊고 조행이 빙설같이 청정하므로 누구든지 그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법사는 25세 때 중국에 들어가 69세 때에 본국으로 돌아왔으니 무려 45년간을 중국에서 보낸 셈이다. 법사가 귀국하였을 때 진평왕은 그를 국사로 봉하여 모시고 극진하게 대우하였다.


귀국후에는 왕명에 의해 중국에 군사를 청하는 걸사표를 바치기도 했는데 본래 불교의 사상인 불살생과 대치되어

개차법(開遮法)이라 불리는, 계율의 유연한 적용을 주장함. 이에따라 나온 가르침의 한 예가 세속오계임.


 서라벌 모량리에 귀산과 추항이라는 두 청년이 있었는데 그들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하루는 그들이 원광국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저희들이 처세하는데 평생 지켜 행할 수 있는 계명을 하나 얻어서 몸이 다할 때까지 지키고자 하오니 일러 주십시오.」하였다.

법사는 말씀하되,

「너희가 불교신자라면 불교 5계를 받았을 줄로 안다. 이것만 잘 지키면 그만이지 이 밖에 더 좋은 것이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들에게 세속 5계를 하나 일러 주겠으니 이것을 평생 지키도록 하여라. 이는 내가 스스로 창안한 것인데,

 첫째는 임금을 충성으로써 모실 것이요,

 둘째는 어버이에게 효를 다할 것이요,

 세째는 친구에게 믿음을 지킬 것이요,

 네째는 전쟁터에서 물러서지 말 것이요,

 다섯째는 산 목숨을 가려서 죽일 것이다.」

이것이 원광법사의 유명한 세속5계로 후에는 화랑도의 근본정신이 된 것이다.

이 세속5계에 대해 다른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나 `살생을 하되 가려서 하라'함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라, 이는 매월 6재일에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니, 6재일이란 매달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을 말하는 것으로 이 날은 모든 천신들이 모여서 세간의 선악을 검사하는 날이다. 다시 말하면 선행을 행한 자에게는 복을 주고 죄악을 범한 자에게는 죄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봄이나 여름에 죽이지 말 것이니, 이 때는 짐승들이 새끼를 치는 번식기이다. 또는 인축에 대하여 피해를 주지 않는 동물은 죽이지 말 것이니 토끼, 다람쥐, 노루, 사슴, 곰, 너구리, 까마귀, 꿩, 비둘기, 까치, 기러기, 학, 제비 등이다.


 사람은 원칙적으로 살아있는 것은 죽여서 안 되는 것이지만 적군이 나라를 쳐들어 올 때에는 정당방위로 죽이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전투원인 양민은 죽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일 필요가 없는 것은 죽이지 말고 반드시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쥐, 파리, 독나방 같은 것은 죽여도 무방한 것이다.


 원광법사는 경주 황룡사에서 99세에 조용히 입적하였는데 이 때 하늘에서는 풍악소리가 들려오고 방안에는 향기가 풍겼다.


 상하 군신과 서민이 애통하는 가운데 국장으로 모시게 하여 왕의 장례와 똑같이 치루었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죽은 아기 시체를 법사의 무덤 곁에 몰래 묻었더니 그 날 밤에 뇌성벽력이 천지를 흔들고 그 아기의 무덤에 벼락이 떨어지더니 그 시체가 영역 밖으로 날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법사의 무덤에 예배공경하는 사람이 줄을 잇고 부처님과 같이 숭봉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16.  『삼국유사』에 대한 설명으로 맞지 않는 것은? 

 ① 단군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② 고대의 전설과 불교관계의 기사를 많이 담은 역사서적이다.

 ③ 충렬왕 때 일연스님이 편찬하였다. 

 ④ 삼국사기보다 100년 앞서 편찬되었다.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일연이 충렬왕 7년(1281) 편찬한 역사서입니다.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 인종 23년(1145)경 김부식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정치적인 흥망과 변천을 중심으로 편찬한 역사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