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만드는 이가 짝을 지어 같은 시대를 산 경우가 더러 있다. 그들은 때로 협력자이고 때로 라이벌이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같았다.
원효(元曉, 617~686)와 의상(義湘, 625~702)은 그 같은 예의 하나이다. 저 낮은 자리에서 바보처럼 우직하게 낮은 자와 함께 한 두 사람. 그들은 바보 성자(聖者)의 전통을 연 이들이기도 하였다.
전국의 오래된 사찰치고 원효와 의상 이름 들어가지 않은 곳이 드물다. 원효와 의상이 창건했다는 절을 합쳐 셈하다 보면, 축지법을 쓰지 않고서 이렇게 먼, 이렇게 많은 곳을 다녀갔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이것은 역사상 이 두 승려의 영향력을 웅변한다. 우리 역사의 중요한 정신적 축을 지탱하는 불교이지만, 그 축은 다시 원효와 의상이라는 두 걸출한 승려에 의해 떠받들어지고 있다 해서 과언이 아니다. 역사의 인물이 수없이 많지만, 한국 불교 역사의 거의 전부라고도 할 만한 두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다 갔다는 점도, 다른 시대를 산 사람에게는 약간 섭섭한 일이다.
별 것 아닌 주제가 화제에 오를 경우가 있다.
"원효와 의상 중 누가 더 미남일까? 두 스님 중 누가 더 고승일까? 요석 공주와 선묘 아씨 중 누가 더 예쁠까?"
여덟 살 위인 원효는 압량 촌사람인데 반해 의상은 서라벌 출신으로 둘 다 스물아홉에 출가했다. 함께 유학 길에 오른 걸 보면 특히 나이 어린 의상의 수행과 공부가 만만찮았던 모양이다.
카메라가 없어 정확히 판별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정황을 유추해 보면 인물은 의상이 출중했겠지만 여인을 호리는 끼는 단연 원효가 앞선 것 같다. 그러나 의상도 부처님의 품을 잠시 벗어나 그 계에서 대표선수로 뛸 수 있었다면 서라벌에는 또 다른 '설총'이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역사에는 'If I was...'라는 가정법이 통하지 않는다.
원효는 재(才)가 승한 지장이라면 의상은 덕(德)이 많은 덕장이다.
둘은 당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요동까지 함께 가면서 공동묘지에서 잠을 잤다. 원효는 심한 갈증 끝에 머리맡에 둔 표주박의 물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아마 곡차가 과하셨겠지. 그것은 해골에 담긴 빗물이었다. 역사는 "유심(唯心)의 도리를 그 자리에서 깨쳤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솔직히 말해서 과장이다. 원효는 그 길로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서라벌로 향해 걸었고 의상은 초지일관, 중국 화엄종의 제2조인 지엄의 문하에 들어가 12년 동안 화엄학을 공부했다.
서라벌로 돌아온 원효는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 받칠 기둥을 찍으련다"고 외치고 다녔다. 원효와는 급수가 동급인 무열왕이 말뜻을 알아듣고 사신을 보내 다리 위를 지나가는 원효를 물에 빠트려 혼자 살고 있는 딸의 집인 요석궁에 데려와 옷을 말리게 한다. 이상하게도 단잠 한 숨 자고 났을 뿐인데 요석공주에게서 아들 설총을 얻는다.
원효가 구멍에 도끼자루를 박고 있을 때 의상의 곁에는 선묘라는 하숙집 아가씨가 몸이 달아있었다. 선묘는 37세의 노총각 스님에게 흠뻑 빠져 버렸다. 그러나 의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의상이 신라로 떠나는 날 아침의 부두. 드라마는 여기서 절정을 이룬다. 고동을 울리며 배는 떠나고, 한발 늦게 의복이며 음식을 가득 들고 나타난 선묘 아씨는 상자를 바다에 던지곤 혼절한다. 다시 깨어난 선묘 아씨는 "이 몸이 용이 되어 임이 가시는 뱃길을 호위하게 하소서"하며 바다에 몸을 던진다. 부석사는 당나라에서 돌아 온 의상이 세운 절이지만 사실은 사랑의 힘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절이다. 부석사에 갈 때마다 선묘 아씨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 서러워 때론 의상이 미워지곤 한다.
의상도 원효처럼 아들 하나를 얻어 '김총'이라 부르고 대처승 주지로 그렇게 살다 열반에 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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