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존댓말 살리기

難勝 2010. 8. 6. 15:59

 

 

실종된 존댓말


①"아저씨,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길 가던 젊은이)

②"아버님, 식사하세요"(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③"아버지가 편찮으십니다"(손자가 할아버지에게)

④"주례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결혼식 사회자)


이 중에 제대로 된 말은?

없다. 


①은 "말씀 좀 여쭤보겠습니다"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요즘엔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도 나은 편이다. "뭐 좀 물어봅시다"라거나, 다짜고짜 묻기 일쑤다.


②는 "진지 잡수십시오"가 맞다. 젊은 세대에선 '말씀' '진지' '생신' '연세' '병환' 같은 어휘 자체가 실종됐다. '여쭈다' '잡수시다' '주무시다'도 좀처럼 듣기 어렵다.


③은 "아버지가 아픕니다"라고 해야 한다. 손위 제3자 이야기를 할 때도 3자가 듣는 이보다 손아래이면 낮춰 말해야 옳다.


④는 어법도 제대로 못 배운 채 무조건 높이다 보니 행위나 물건까지 존대하는 사례다.


▶국어학자들은 존댓말이 6·25 후, 산업화 초기에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나 먼저 먹고 나 먼저 가려는 마음이 앞서면서 남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면서다. 사람들은 존댓말을 쓰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낮아진다고 느낀다.

속담에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들고 온다'고 했다. 남을 배려하는 말씨를 쓰면 남도 나를 배려한다.


▶서울 신당초등학교가 3년 전부터 존댓말을 공용어로 썼더니 싸우거나 선생님에게 대드는 일이 확 줄었다고 한다. 어린이들끼리, 그리고 선생님이 존댓말을 쓰면서 어린이들이 스스로 존댓말을 듣는 인격체라는 걸 깨닫고 서로 존중하는 덕분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맥도날드'에서 존댓말을 배운다는 우스개가 있다. 우리 못지않게 존댓말이 까다로운 일본도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서 처음 존댓말을 알게 된다는 얘기다.


▶일본 교육 당국은 고민 끝에 몇 년 전 문답식 '경어지침'을 내놓았다.


"왜 자기가 다니는 큰 회사를 소사(小社·작은 회사)라고 하고, 총명한 자녀를 우식(愚息·어리석은 자식)이라고 하는가."

답은 "자기와 관계된 것을 낮추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니까"다.


그래도 일본 가정에 전화를 걸었을 때 "우리 남편 주무시는데요"라는 황당한 말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당 정인보는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했다. 존댓말이 살아나면 우리네 심성(心性)에 난 모도 많이 깎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