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사의 차정신과 게송
한생을 걸림없이 살다가신 초의선사의 차정신은 무엇인가.
선사는 그의 다론(茶論)에서 말씀 하시기를 ‘8덕(八德)을 겸비한 진수(眞水)를 얻어 진다(眞茶)와 어울려 체(體)와 신(神)을 규명하고 거칠고 더러운 것을 없애고 나면 대도(大道)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옛부터 성현님네가 즐겨 마시게 되었고 그 성품은 군자를 닮아 사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악하지 않은 차, 이 차는 묘한 근원을 가지고 있어 그 근원에 집착하지 않으면 바라밀(婆羅密)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바라밀이란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걸림이 없으므로서 자유자재한 경지에 이른것을 말한다. 차를 마시면서 신과 체를 규명하여 건과 영을 얻어 집착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바라밀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현묘(玄妙)한 경지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차(茶)이다.
선사는 이와 같이 바라밀에 이르는 길에서 모든 법이 불이(不二)하니 선(禪)과 차(茶)도 불이하고 제법(諸法)이 일여(一如)하다고 했다. 그래서 선사는 차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이같은 선사의 차정신은 ‘모든 법이 둘이 아니니 선과 차도 한 경지니라(諸法不二 禪茶一如)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불이사상(不二思想)은 모든 면에 나타나 선과 차가 둘이 아니고 시(詩)와 선이 둘이 아니고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니고, 차와 시가 둘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선의 여가에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며 글씨를 썼으니 세인들은 시.서.화(詩書畵) 3절(三絶)이라고 일컬었다.
이처럼 선사는 차를 마시다가 흥얼흥얼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 세상사를 잃어버리기도 하며, 정적에 잠긴 난간에 기대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기도 하며, 깊숙한 오솔길을 따라 송림에 걸린 달을 보기도 하고, 향을 사루어 은은히 퍼질 때 차 한잔 달여놓고 무심히 앉아 있으니, 선사의 청고하고 담적한 차생활은 참으로 쉽고 편안하다.
이러한 선사의 사상은 다산(茶山)과 추사(秋史)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니 추사가 선사께 보낸글귀 가운데 이런 사상을 내포한 글이 많이 있다. 명선(茗禪)과 선탑다연(禪榻茶烟) 그리고 정좌 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가 그것이다. 이는 모두 선다일여(禪茶一如)의 경지를 천명한 것이다.
여기에 선사의 게송 한 구절을 소개한다.
대도(大道)는 지극히 깊고도 넓어
가 없는 바다와 같고
중생이 큰 은혜에 의지함은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는 것과 같네.
오묘한 이치는 밝고 역역한 것이라.
억지로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는 것.
어찌 감히 불근(不根)으로써
일찍이 해조음(海潮音)을 듣고서
황망히 군자의 방에 들어가
함께 진리를 말할 수 있으랴.
달빛도 차가운 눈 오는 밤에
고요히 쉬니 온갖 인연이 침노하네
그대는 아는가 무생(無生)의 이치를,
옛날이 곧 오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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