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목욕(沐浴)

難勝 2010. 9. 9. 06:44

 

 

목욕(沐浴)

 

침묵 속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낸다

 

한 중 일의 선종 사찰에서는 칠당가람(七堂伽藍)이라하여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7개의 건물이 있다. 불전(佛殿) 법당(法堂).승당(僧堂).고방(庫房, 혹은 廚庫).산문(山門).서정(西淨).욕실(浴室)이 그것이다.

 

불전(佛殿)은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며, 법당은 설법이나 법회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다.

승당은 스님들이 좌선 정진하며 공양하는 곳, 고방은 후원이라고도 하는데 부엌 창고 등 절 살림을사는 곳이다.

동사는 측옥(厠屋)이라고도 하는 변소인데 동쪽에 있을 때를 동사, 서쪽에 있으면 서정(西淨)이라고 한다.

이중에서 승당 욕실 동사 세 곳에서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해서 삼묵당(三墨堂)이라고 한다. 식사와 배설 목욕은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인데 불교는 이 때 침묵하라고 했다.

 

보조 지눌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는 “침묵을 지켜 말없이 하며 잡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須默無言說 須防護雜念)는 훈계가 있다. 이 말속에는 인간의가장 기본 생리활동 중에서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더운물로 얼굴 씻은 후 위부터 천천히…’ 목욕법 규정

여름은 매일, 봄과 가을은 닷새, 겨울은 보름마다 목욕

 

불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목욕은 불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성도하기전 고행을 중단하고 목욕한 ‘사건’ 일 것이다. 부처님은 성도하기전 극심한 고행을 통한 해탈을 추구했지만 몸만 쇠약해지고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는 이를 버렸다. 그런 뒤 나이란자나 강에서 목욕하고 수자타라는 처녀가 공양하는 우유죽을 먹었다. 건강을 회복한 부처님은 보리수 밑에서 선정에 들은 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부처님에게 목욕은 심신의 피로를 씻어주고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도 쿠쿠다 강에서 마지막으로 목욕했다.

목욕은 인도에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종교행위다. 브라만교에서 목욕은 죄를 씻는 것(淨罪)이라고 했다.

지금도 힌두교도들은 아침마다 강이나 저수지에서 목욕하고 시바신 등의 신상(神像)에 예배한 뒤 식사를 한다. 하지만 자력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에서 목욕은 죄를 씻는 의미 보다는 마음의 때를 벗어낸다는 의미가 강하다.

 

잡아함 44권 〈손타리경〉에서 부처님은 강에서 목욕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말하는 바라문에게 “죄업을 없애기위해서는 청정한 범행을 해야지 목욕한다고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초기 교단의 계율을 정한 〈사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등 모든 율장에도 목욕법이 나온다. 소리내지 말며, 반달에 한번은 행하며, 남이 보는데서 하지 말라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불교의 목욕의식은 한국과 일본의 목욕문화를 바꿔놓았다. 현대의 대중목욕탕은 신라때 사찰에 처음 만들어져 백제를 통해 일본 사찰에 전파된 것이다.

목욕예법이 구체화되는 것은 중국의 선종 사찰에서다. 선종 사찰에서는 목욕을 관장하는 욕두(浴頭)를 둘 정도로 이를 중시 여겼다. 욕두는 목욕일이 되면 욕실을 청소하고 물을 끓인다. 또 목욕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미리 준비해야한다.

 

송나라 때 종색 스님이 편찬한 ‘선원청규’(禪苑淸規)에 의하면 욕두는 공양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양이 끝난 뒤 목욕을 알리는 판(板)을 친 뒤 불전에 나아가 분향예배하고 불보살의 입욕을 청한다고 했다. 이어 타종을 울리면 대중스님들이 입실하는데 처음에는 순서가 일반 대중스님, 행자, 주지 등 소임자 순이었다. 선불교의 가풍이 살아있을 때는 참선 수행하는 대중스님들을 가장 우대했다. 하지만 후대에 들면서 목욕탕 입실 순서도 주지 소임자 대중 순으로 바뀐다. 주지 등 스님이 관료화된 탓이다.

 

욕실에서는 절대 침묵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은 타판(打板)에 따라 움직였다. 판을 한번 치면 탕에 들어가고 두 번 치면 목욕하며 세 번 치면 마쳤다. ‘사미율의’에서는 탕의 물이 차면 두 번 울리고 뜨거우면 세 번 울리며, 물을 더 쓰면 한번 울린다고 했다. 탕에서의 규율이 엄했는데 소리 내어 말하고 웃어서는 안되며, 옷을 빨거나 이를 잡는 것도 금했다. 발가벗고 욕실 안을 뛰어다니면 안된다는 규칙까지 있다.

 

전통적으로 목욕은 삭발과 마찬가지로 통상 한달에 두 번했다. 이는 보름과 그믐의 포살에 앞서 몸을 청결히 하는데서 삭발 목욕일이 유래했기 때문이다. ‘사미율의’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병에 걸리거나 운력 혹은 먼 길을 다녀와서는 목욕을 한다고 했다.

 

〈십송율〉 제57권에서는 목욕의 목적에 대해 때를 제거하고, 몸의 피부를 보호하여 화색이 돌게하고, 추위를 이기고, 풍기를 없애고, 병의 고통을 들어주는 것 등 다섯가지를 들고 있다. 〈사미율의〉 입욕편에서는 ‘눈이 밝아지고 몸이 청정해진다’고 했으며, 〈사분율〉에서도 목욕을 하는 이유는 진애(塵埃)가 끼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때를 씻는 것이라고 했다.

목욕일은 한달 두 번 즉 포살일 전인 14일과 29일나 30일을 기본으로 했지만 계절 따라 약간 씩 달랐다.

 

청규에서는 봄(곡우~하지),가을(처서~추분)에는 5일에 한번, 여름(하지~처서)에는 매일, 겨울(추분~곡우)에는 보름에 한번이라고 했다. 이를 문수목욕일이라고 했다.

 

목욕은 삭발이 끝난 뒤 전 대중스님이 함께 했다. 보일러가 들어오기전 군불을 때던 시절에는 목욕일이 되면 경내 가운데 쇠솥을 걸어두고 물을 데웠다. 더운물을 들고 욕탕에 들어가 삭발한 머리부터 끼얹는 것으로 목욕은 끝났다.

 

요즘도 절에 가면 법당 옆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돌물확이나 나무구시 등이 바로 목욕할 때 쓰던 용구다. 목욕탕이 좁다 보니 노스님들에게 양보하고 한겨울에도 개울로 나가 얼음을 깨고 중요한 부분만 간단히 손질하는 것으로 끝내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스님들은 마을 공중목욕탕에 내려가 ‘본격적인’ 목욕을 하기도 했다.

 

날이 풀리면 사찰 주위의 계곡 등에서 목욕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도 해인사 송광사 등 큰 절은 삭발이 끝나면 함께 목욕한다. 목욕은 스님들간의 정을 돈독하게 했다. 은사스님의 등을 밀어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현재는 사찰마다 욕탕시설을 갖추고 있는데다 온수가 끊이지 않아 목욕하기가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강원 등 대중 스님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목욕법을 청규로 제정해 엄격히 지키고 있다. 〈사미율의〉에 근거해서 만든 목욕청규는 스님들의 철저한 수행생활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욕실에 들어가기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다. 먼저 얼굴을 씻고, 위로부터 아래로 차츰 내려간다. 뜨거운 물이 옆 사람에게 튕기면 안된다. 욕실에서 오줌 누면 안된다. 남과 이야기하거나 웃으면 안된다. 으슥한 데를 씻으면 못쓴다. 오래 씻어서 뒤에 사람에게 방해되면 안된다. 옷을 벗고 입을 적에 천천히 해야한다…” 여기에 더해 비구니 스님들은 신도, 아이, 하인들과 함께 목욕하지 말 것 등 몇가지 규칙을 더 지켜야 했다.

 

이렇게 목욕에 대한 관습이 엄격했던 것은 그 자체가 수행자가 지켜야할 위의이기 때문이다. 옛날 큰 스님을 모시고 살았던 스님들은 아직도 사미율의에 나오는 입욕예절을 잊지 않고 있다. ‘마음의 때’를 씻어내야 한다는 가르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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