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엄마의 도시락

難勝 2010. 11. 20. 00:40

 

엄마의 도시락

 

어린 딸과 어머니가 사는 셋방은 둑방 가에 있었다. 어머니가 다니는 시멘트 벽돌 찍어내는 공장이 가까이에 있어서 이사한 곳이었다.

딸은 전에 살던 산동네보다도 그곳이 좋았다. 봄이면 둑방에 올라가 네잎 클로버를 찾으면서 놀았고, 여름이면 질펀하게 피어나는 달맞이꽃을 꺾으면서 놀았다. 한가지 흠이라면 비가 올 때마다 집안으로 빗물이 넘쳐 흘러들기 때문에 옷 보퉁이를 싸는 일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해 뜨기 전부터 벌써 일터로 나가곤 했다. 새벽밥을 해서 몇 숟갈 들고 일터로 나가 머리로 시멘트 벽돌을 이어서 차에 실어 주는 일을 했다.

어떤 날은 먼 데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까지 날라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밤 늦게 새끼줄에 연탄 몇 장을 꿰어 들고 오기도 했고 봉지 쌀을 사서 안고 오기도 했다.

 

그 해에는 장마가 일찍 들이닥쳤다. 옷 보퉁이를 풀 날이 없었다. 그런데 장마보다도 더 큰 걱정거리가 모녀한테 찾아 왔다. 시멘트 벽돌 공장 주인이 빚에 쪼들려 밤사이에 도망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일터를 바꾸었지만 그 동안의 품삯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늘 끼니를 걱정했다. 그러나 딸의 학교만은 절대 쉬어선 안 된다며 꼬박꼬박 납부금을 대주었다.

 

그 날도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지었다. 그리고는 여느 날과 다름 없이 도시락 둘을 쌌다. 딸은 그 날이 마침 당번이어서 엄마보다 먼저 도시락을 챙겨들고 집을 나왔다. 그 날 넷째 시간은 체육이었다. 체육이 넷째 시간인 날은 셋째 시간이 끝나자마자 도시락을 먹어 치우는 학생들이 많았다. 딸도 도시락을 풀었다. 그런데 도시락 뚜껑을 무심히 열던 딸은 황급히 도시락 뚜껑을 닫아 책상 속에 밀어 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물은 그대로 눈물이 되어 버렸는지 눈으로 펑펑 쏟아져 나왔다.

딸은 체육 선생님한테 몸이 아프다고 꾸며대고는 내내 운동장 가의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모처럼 갠 푸른 하늘이 그렇게 슬픈 것은 그 때 처음 느꼈다.

 

바로 그때 딸은 교문을 헐레벌떡 들어오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의 손에는 일터로 들고 나갔던 딸의 것과 똑 같은 작은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딸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그쳐지지 않는 울음을 울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아침에 어머니의 도시락을 잘못 들고 간 딸의 도시락에는 행주가 들어있었다. 시멘트 벽돌을 머리에 이어서 나르는 일을 하는 어머니는 딸한테는 밥이 든 도시락을 들려 보내고 당신은 밥 대신 행주를 담아서 들고 다니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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