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 나는 김치와 눈물나는 우정 이야기
김장을 담글 철이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보니 온통 김장감 투성이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배추를 삼십 포기나 샀어요? 무도 잔뜩 사고……
아내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가볍게 눈을 흘겼습니다.
남편 강씨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김장거리를 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무와 배추를 이렇게 몰래 갖다 놓았을까?”
여기저기 전화를 해봐도 범인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앞집 아주머니의 말로는, 마흔 좀 안되어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택시를 몰고 와 배추를 잔뜩 내려놓고 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택시라는 말에서 단서를 잡았습니다.
오랜 친구, 그 녀석이 두고 간 것일까.
아마 그럴 게다. 틀림없을 것이다.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강씨는 어떤 가정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학비를 보탰습니다.
2월말쯤, 그 집에서 묵은 김치를 버리려고 퍼내고 있었습니다.
“사모님, 그 김치 버리실 거면 제가 좀 가져가도 될까요?”
군내 나는 김치를 그렇게 얻어 양동이에 담았습니다.
비닐로 윗부분을 덮고 고무줄로 단단히 동여맸습니다.
응봉동에 살고 있는 고향친구가 생각나서였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윈 그는 서울에 올라와 택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아내를 두고 살림을 시작했지만 겨우내 김장김치 한번 못 먹었다는 가난한 친구였습니다.
김치가 든 양동이를 낑낑대고 운반하여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그 친구는 집에 없었고 배가 부른 친구 아내가 판자집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오히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런 걸 누가 먹는다고 가져왔느냐고 역정을 낼 것 같아 그냥 언덕배기를 뛰어내려왔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택시기사를 해온 친구가 작지만 자기 집을 사서 집들이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강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김장 김치를 먹으면 네 생각이 나. 우리 집사람 첫 애 가져 배불러 있을 때 그 신 김치 먹으며 얼마나 맛있어 하던지....
며칠을 두고 국도 끓어 먹고 찌개도 끓이고 볶아먹기도 하고, 하루 두 끼 밥도 못 먹을 때였잖아...”
그 친구의 말을 듣던 친구 아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금 쌀 열 가마보다 큰 양식이었어요. 그 군내 나는 김치가....”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콧등이 시큰거렸습니다.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어 올렸습니다.
“친구 있어요? 접니다.”
“아, 강선생님!”
친구의 아내가 반색을 하더니. 친구에게 전화를 바꿔 주었습니다.
“운전수 친구가 뭐 자랑스럽다구... 너 창피할까봐 놔두고 도망쳤지... 하하하....”
“에이 미친 놈. 창피하긴, 하하하…....”
그들은 그렇게 눈가에 물기가 번질 때까지 한참 웃으며 울었답니다.
<아동문학가 강 모씨의 이야기중에서...>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보다 강한 사랑 (0) | 2010.11.22 |
---|---|
추수감사절의 유래 (0) | 2010.11.21 |
엄마의 도시락 (0) | 2010.11.20 |
보리달마 이야기 (0) | 2010.11.19 |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 최치원 (0) | 2010.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