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스크랩] 무량사(無量寺)와 함께 하는 백제의 色 부여 여행

難勝 2011. 1. 8. 07:06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백제의 색' 부여

작지만 너른, 빛나되 은은한… 떠돌이 김시습 품어준 무량사(無量寺)

 

백제(百濟), 하얀 제국이었나.

옛 수도 부여로 가는 길이었다. 이날 서해안 지방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흩날리는 눈이 그림자를 지우고 사물의 색을 지웠다. 부여의 산야는 입체감을 잃고 제 색을 떨어냈다.

 

도시의 공간감과 색이 사라질 때, 다시 말해 한 도시가 수묵화의 풍경을 닮아갈 때, 때로 사라진 것들은 밖이 아닌 내부로 침잠해 자신을 사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여가 그랬다. 한때 백제 문화를 꽃피웠던 고도(古都)는 이제 인구 7만여 명의 소도시가 되어 조용히 호흡했다. 공식적으로는 시(市)가 아니라 군(郡)이다. 그 부여가 한겨울에 내뱉는 입김엔 차분한 침잠의 기운이 서려 있다.

 

새해에 부여를 찾는 건 그래서다. 들뜨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부여의 느리지만 강건한 호흡에 자기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다. 그리고 차분히 새해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삼국사기는 백제문화를 일컬어 이렇게 기록했다. 화이불치 검이불누(華而不侈 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무량사(無量寺)의 색(色)이 그렇다. 무량사는 색을 빛내지 않는다. 안으로 끌어안는다. 색의 빛을 안은 대신 색의 잔영을 내보인다. 그 색은 은은하다. 바람과 비와 눈의 시간이 오래 빚어낸 색이다.

 

무량사는 부여 외산면 만수산(萬壽山)에 있다. 무량이나 만수나 뜻은 하나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의미의 공간은, 그러나 넓지 않다. 넓지 않은 대신 무량사는 공간을 중첩한다. 천왕문으로 오를 때 문 너머의 풍경은 천왕문의 사각 틀 안에 정물화처럼 모여 있다. 액자로 제 너머의 풍경을 가둔 천왕문은 원근(遠近)의 감각을 최소화한다. 입체보다 평면에 가까운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는 이렇다. 틀의 상단에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 차곡차곡 횡으로 쌓인 석등과 석탑, 극락전(極樂殿).

 

천왕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무량사는 제 이름처럼 압축됐던 공간을 팽창한다. 평면으로 납작했던 공간은 천왕문을 경계로 활짝 몸을 펴낸다. 옹기종기 모였던 사물들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는다. 석등과 석탑과 극락전이 무량한 공간의 축을 잡고 굳건하게 선다. 그 옆으로 빗겨선 소나무는 느티나무와 함께 풍경에 생기를 더한다. 그 밖으로 우화궁(雨花宮)과 명부전, 청한당(靑閒堂), 범종각 등이 규칙을 가늠할 수 없는 거리로 제각기 서 있다.

 

 

사실 무량사는 백제 수도 부여에 자리 잡았으되 백제의 절이 아니다. 또렷한 기록은 없다. 다만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됐다고 전한다. 2층 구조의 극락전 역시 조선 중기 건물이다.

 

시기적으론 뒤에 창건됐으되 백제의 색이 짙은 무량사는 조선시대 갈 곳 잃은 이를 제 품으로 안았다.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 여기서 은거하다 세상을 떴다. 해서 무량사 곳곳엔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우화궁 뒤쪽 현판 없는 영정각은 김시습 초상화를 안고 있다. 그의 부도도 여기 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정취를 쌓은 무량사는 지난 2007년 근래의 풍취를 덧붙였다. 산신각 옆 청한당이 그곳. 김시습이 머물고 임종을 맞은 곳으로 알려진 자리에 단출한 처소를 세웠다. 청한당(靑閒堂)이란 이름은 김시습의 다른 호, 청한자(淸寒子)에서 따 왔다. 다만 평생 떠돌던 그에게 죽어서도 '찰 한(寒)' 자를 붙이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한가할 한(閒)'으로 고쳤다. 뿐인가. 청한당 현판에서 이 '한(閒)' 자를 풀어 '월(月)' 자를 위에 걸고 '문(門)' 자를 거꾸로 썼다. 글자가 어여쁘다.

 

성흥산은 낮다. 해발고도 268m다. 부여의 서북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에 비하면 작은 언덕 수준이다. 그러나 야트막한 구릉의 연속인 부여 서남부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홀로 우뚝한 성흥산의 전망은 탁월하다. 부여읍내를 굽이굽이 흐르는 백마강이 한눈이다.

 

필시 백제 동성왕은 성흥산의 전망으로 새 수도를 방어할 수 있으리라 보았을 것이다. 삼국사기는 백제가 동성왕 23년(501년)에 가림성(加林城·지금의 성흥산성)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에게 성을 지키라고 명했다 전한다. 그로부터 37년 뒤인 538년 백제는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했다. 성흥산성은 시간적으로 웅진과 사비 사이다.

 

성흥산성은 마땅히 아침에 올라야 한다. 아침이면 낮은 구릉 사이로 새벽 안개가 출렁인다. 안개는 1000년 넘게 사람이 쌓아온 흔적을 지워낸다. 그 아련한 분위기 속에서 옛 백제의 땅과 가장 닮은 모습으로 부여가 성흥산 아래 펼쳐진다.

 

무량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성흥산성 역시 후대의 흔적으로 제 정취의 느낌을 강화했다. 산성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길을 잡는 것이 수령 4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경쟁자 없이 성흥산 정상에서 자라나 가지를 사방으로 맘껏 뻗었다. 대체로 수평을 지향하는 성흥산의 풍경에서 홀로 우뚝하다. 우뚝한 느티나무는 산성 어디에 서도 주위와 조화를 이룬다.

 

성흥산성에 올랐다면 산성 아래 대조사(大鳥寺)도 함께 찾을 일이다. 절은 새의 전설을 품고 있다. 한 스님이 큰 바위 아래서 수도하는 중 관음조(觀音鳥) 한 마리가 날아와 바위 위에 앉았다. 스님이 놀라 잠을 깨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해 있어 절 이름을 대조사라 칭했다 전한다. 전설의 새는 이제 없지만 높이 10m가 넘는 석조보살입상이 대조사에 있다.

 

 

◆백제문화단지―백제를 재현하다

 

작년 한 해 국내 축제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행사 중 하나가 세계 대백제전이다. 한 달간 369만 명이 충남 공주와 부여를 오갔다. 이 축제의 중심이 됐던 곳이 바로 백제문화단지다.

 

문화단지는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읍내와 마주한다. 강만 건너면 삼천 궁녀의 전설을 안은 낙화암을 필두로 백제의 마지막 왕성인 부소산성과 정림사지 5층 석탑, 백제 인공정원 궁남지 등 과거의 흔적이 읍내에 퍼져 있다.

 

그 아련한 역사를 보듬어 백제문화단지는 백제를 재현한다. 왕궁 사비성과 왕실 사찰인 능사(陵寺),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위례성을 한곳에 모았다. 이들이 자리 잡은 백제문화권 특정지역에 1993년부터 작년까지 17년간 6904억원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이곳은 복원이 아니라 재현이다. 백제시대 건축물은 이 세상에 없다. 기록도 찾기 어렵다. 해서 백제건축기술을 받아들여 지었다는 일본 사찰을 돌며 형태를 잡았다. 출토된 건축물 파편을 한 조각씩 복원해 그와 비례한 형태를 도출했다.

 

사비궁에서 능사를 거쳐 위례성, 생활문화마을까지 도는 동안 발걸음은 자꾸만 멈칫한다. 백제문화단지는 백제를 재현했으되 백제와 지금 사이의 시간을 생략했다. 백제문화단지의 시각적 인상은 매우 또렷하다. 무량사와 성흥산성이 가진 세월의 흔적은 그곳에 없다. 흔들리고 아련한 과거의 이미지를 문화단지는 하나로 고정한다. 가끔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지만, 이 둘의 간극이 커 때로 충돌한다. 그래서 위태하다.

 

 

여·행·수·첩

 

추천 코스(수도권 기준)

 

①무량사는 보령과의 경계에, 성흥산성은 부여읍내에서 15㎞쯤 떨어진 남쪽에 있다. 부여에 하루 묵을 요량이라면 무량사→성흥산성→백제문화단지 순이 낫다. 시간이 난다면 성흥산성과 백제문화단지 사이, 부여읍내에 두루 퍼져 있는 백제 유적지를 같이 둘러보자. 부소산성·낙화암·정림사지 5층 석탑·궁남지·국립부여박물관·능산리 고분군이 모두 읍내에 있다.

 

②무량사까지는 서해안고속도로 대천IC→부여 방면 표지판을 따르다 윗장터삼거리에서 무량사 방면으로 좌회전. 서울에서 약 3시간.

 

③성흥산성으로 가려면 다시 돌아 나와 윗장터삼거리에서 우회전→외산사거리에서 좌회전→지티교 앞 우회전→교원삼거리에서 부여 방면으로 좌회전→구룡·무정리 방면으로 빠져 첫 사거리에서 우회전→남면사무소 앞에서 좌회전→10㎞쯤 직진하다 성흥산성 표지판을 따른다.

 

④돌아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부여 방면으로 직진→나복삼거리에서 우회전→신리사거리에서 좌회전해 2㎞쯤 가면 백제문화단지다. 여기서 백마강교를 건너면 부여읍내다.

 

백제문화단지 앞 롯데부여리조트가 최근 개장했다. (041)832-1127. 이외에 부여군청 문화관광과는 한옥 백제관(041-832-2722), 백제관광호텔(041-835-0870), 스타팰리스(041-833-3005), VIP모텔(041-832-3700), 명진모텔(041-835-0371)을 추천했다. 모두 부여읍내에 있다.

 

부소산성 정문 맞은편 백제의 집에서 마와 연을 주재료로 한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연잎밥 8000원, 마밥 1만원. (041)834-1212, 읍내 구드레돌쌈밥도 유명하다. 돌쌈밥은 돌솥밥과 쌈밥을 줄인 말. 돌쌈밥 1만2000원. (041)836-0463

 

부여군청 문화관광과: (041) 830-2010, www.buyeotour.net

 

백제문화단지: 성인 9000원. (041) 830-3400, www.bhm.or.kr

 

무량사: 성인 2000원. (041)836-5066, www.muryangsa.or.kr

출처 : 원주불교대학 제7기
글쓴이 : 다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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