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울금(鬱金), 샤프란 이야기

難勝 2011. 2. 15. 06:58

 

 

울금(鬱金)

 

불교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외래 유용식물들 삼국시대에서 고려조까지 우리 겨레의 정신적 지주는 불교사상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야 했으므로 모든 생활 속에 불교가 깊이 뿌리 내렸을 것이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관련 외래식물도 많이 들어왔다. 연꽃이나 수련, 상사화는 물론 쪽, 치자, 울금 같은 염료식물도 함께 전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전에는 울금(鬱金)이란 식물이 나온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智觀經)》에 의하면 “울금화는 시든 것일지라도 다른 싱싱한 꽃보다 가치가 있다. 정견(正見)을 가진 비구도 이와 같아서 중생보다 백천만 배나 훌륭하다.”고 했다.

 

또 《근본설일체유부나야(根本說一切有部奈耶)》 제3권에는 물건의 가치를 논하고 있다. “물건은 서로 다른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무게가 무거워서 가치가 있는 것이요, 둘째는 가볍지만 아주 값진 것이 있고, 셋째는 무거우면서도 쓸모 없는 것이 있으며, 넷째는 가볍고 가치도 없는 것이다.”

 

네 가지 물건 중에서 세 번째의 가장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여기에 답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바로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은 비단과 울금향(鬱金香), 그리고 소읍미라(蘇泣迷羅)이다.

 

비단이란 올이 가늘어야 감촉이 부드럽고 가볍다. 고급 비단일수록 얇고 부드러우며 광택이 난다. 여기에 아름다운 모양으로 수놓아진 것이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다.

 

소읍미라는 산스크리트 어를 수크스마일라(Suksmaila)라 하는 향료이다.

적은 양으로도 짙은 향기를 내뿜기 때문에 매우 값진 물건에 속한다. 아래에 따로 기술했지만 이 때의 울금향은 붓꽃과의 샤프란을 말한다. 샤프란의 꽃술에서 딴 향료는 매우 적은 양이지만 값은 그 어느 보석보다 비싸다. 그래서 불경에서는 부피가 작은 것이 가치 있다는 것으로 자주 인용되곤 한다.

 

 

소아시아 원산의 값진 방향식물, 샤프란

 

 

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더 맵다’라는 말이 있다.

고추는 큰 것이라 해도 매운 맛을 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작지만 코를 쏠 정도를 매운 놈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체격이 작은 사람이 사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해내고, 허우대가 멀쩡한 사람이 남을 속이고,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생각했던 인사가 국가의 재산을 훔쳐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도 있다.

 

불경에서는 미세한 울금향의 꽃가루에서 뽑아 낸 향기가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하듯 올바른 삶이야말로 세상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불경에서 말하는 울금은 식물학에서 지칭하는 울금과는 다른 식물이다. 한역된 불경에서 울금이라 하지만 사실은 샤프란을 말한다. 이 샤프란이란 괴경에서 4~5 송이의 꽃이 피는 다년초이다.

 

샤프란은 유럽 남부, 소아시아 원산의 붓꽃과에 속하는 다년초이다. 3장의 꽃잎과 3장의 외화편이 한 송이의 꽃을 이뤄 6장의 꽃잎이 핀 것으로 보인다. 수술이 3개이고 중앙에 있는 1개의 암술은 끝은 3개로 길게 갈라진다. 암술머리에서 뽑은 샤프란(Saffraan) 성분은 의약품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음식물의 빛깔을 내는 식용색소로도 쓰인다.

 

샤프란 성분은 빛깔 외에도 요리의 맛을 내는 향신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세 서양에서도 샤프란 꽃의 암술머리에서 채취한 샤프란 색소를 비단을 염색하는데 썼다. 특히 보라색을 고귀한 색깔로 여긴 중세 서양에서는 성직자들이 입는 보라색 성의를 염색할 때 이 샤프란 색소를 사용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고급 생선 요리는 샤프란으로 맛을 내고

 

미세한 암술머리에서 딴 색소로 옷 한 벌을 염색해야 했으니 얼마나 많은 꽃을 희생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니 자연히 값도 비쌀 수밖에 없다. 1g 정도의 암술머리를 모으기 위해서는 500송이의 꽃이 필요하다고 하니 얼마나 고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샤프란은 무덤가에 심는 꽃이다. 그리스에서는 샤프란을 불멸에 대한 희망으로 생각했다. 샤프란의 황금빛 암술머리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죽은이를 화장할 때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8~9월에 괴경을 심으면 늦가을쯤 다른 꽃들이 모두 시들 때 아름다운 꽃이 핀다. 보라색이 기본 색이지만 분홍, 흰색, 자주 등 꽃 색에 변이가 많다. 최근에는 겹꽃까지 개발되는 등 갖가지 원예품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샤프란 괴경은 부인병 치료제로 쓰인다. 샤프란의 가치는 여성의 최음제로 널리 쓰였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샤프란 암술을 수확해야만 했다. 유럽에서는 생리장애가 있을 때 끓여서 그 물을 마셨으며, 생즙을 내 상처에 붙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생선찜 요리 부이아베스는 샤프란 향으로 맛을 낸 것이다. 또 스페인 요리 파에라에는 고기, 생선과 야채를 섞어 지은 쌀밥에 샤프란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샤프란 꽃은 오래 가지 못한다. 활짝 핀 것이라 해도 반쯤 벌어지며 날씨가 쌀쌀하거나 저녁 해가 기울면 꽃잎을 오므려서 속에 든 꽃술을 추위로부터 보호한다. 보통 꽃이 피면 2~3일만에 시들고 말아 꽃의 아름다움에 비해 개화기는 극히 짧은 편이다.

 

꽃이 지고 난 뒤에도 꽃술은 금방 시들지 않는다. 암술머리는 길게 밖으로 빠져 나오고 붉은 색을 잃지 않는다. 암술머리에는 진기한 갖가지 물질이 모여 있다. 향기, 색깔, 맛을 내는 물질과 에테르, 글리코사이드와 약간의 독성까지도 포함된다. 암술대는 카르티노이드 색소와 크로친 배당체를 함유하고 있다. 크로친 배당체 때문에 강한 향기를 내며 아직까지도 향료 식물로 아낌을 받는다.

 

샤프란의 암술머리를 수확할 때는 처음 꽃이 핀 날 오전 중이 좋다. 노란 꽃술을 따면 부드러운 종이를 깐 바구니에 담아 말린다. 그 다음 몇 개씩 뭉쳐서 은박지에 싼 다음 오븐에 넣어 건조시킨 후 병 같은 것에 담아 보관한다.

 

요리에 사용할 때는 뜨거운 물이나 우유, 술에 녹여 쓴다. 음식의 빛깔을 곱게 하고 요리에 감미로운 향기를 더한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약효가 있고, 소화제, 진통제로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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