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마음 그 하나만 지켜보라

難勝 2011. 3. 9. 05:49

 

 

마음 그 하나만 지켜보라 - 법구경 35게송

  

35.

마음은 가볍고 변덕스러워

좋아하는 대상마다 쉽게 머물러 집착한다.

이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가장 뛰어나니

잘 다스려진 마음에 행복과 평안이 깃든다.

 

 

마음은 가볍고 변덕스럽다. 좋아하는 대상마다 쉽게 머물러 집착한다. 금방 이것에 집착했다가 또 다시 금방 저것에 집착한다. 좋아하는 대상은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붙잡아 집착한다. 집착하여 내 것으로 만들면서 한 평생 쌓고 모으는데 열중한다. 좋아하는 대상이 소유물이 되었든, 명예나 권력이 되었든, 이성이나 가족이 되었든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날뛰며 변덕스럽게 애착하는 것들을 바꾸어가며 집착에 집착을 계속해 나간다. 그것이 우리의 생에서 우리가 해 나가는 일의 전부가 아닐까.

 

바로 이런 애착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뛰어남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것을 향해 내달음치는 이 마음을 잘 다스렸을 때 그 안에 평안과 행복이 깃든다.

 

좋은 것이 무서운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싫은 것은 그것이 싫은 것인 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다스리기가 오히려 수월할 수 있지만 좋은 것에는 애착하고 집착하면서도 스스로 집착하는 것이 병인 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은 좋은 것에서 나온다. 좋은 것에 좋은 느낌[受]을 일으키고 연이어 애욕[愛]을 일으키며 애욕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 취착[取]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집착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온갖 행위와 노력을 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업[有]이다. 그런 업에 의해 윤회를 반복하며 생[生]노병사[老病死]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좋은 것에서 고통이 시작된다는 12연기의 간략한 설명이다. 쉽게 말해 좋은 것에서 애욕과 집착이 일어나고 좋은 것을 내 것으로 취하기 위해 업장을 늘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업장은 곧 생사윤회의 원동력이 된다.

 

코살라국 마띠까라는 시골마을에 어느날 60명의 비구스님들이 수행처를 찾아 들어갔다. 마을 촌장의 어머니가 스님들께 수행처를 제공하고 정성스럽게 우유죽을 공양하며 극진히 모셨다. 그렇게 스님들을 극진히 시봉하던 어머니가 자신도 수행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한 생각이 들어 한 스님께 물었다.

 

“이 수행을 통해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 윤회에서 해탈하는 것은 스님들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입니까 아니면 우리 재가신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까?”

 

“이 수행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 답변에 고무된 촌장의 어머니는 스님들께 여전히 공양을 올리고 극진히 모시면서 동시에 스님들을 따라 배우며 수행 정진하게 되었고 결국 아나함과를 증득하고 아울러 신통력도 가지게 되었다.

 

촌장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나함과를 증득했는데도 불구하고 비구 스님들께서 여전히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의아하여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신통력으로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 보았다. 살펴보니 스님들의 잠재력, 수행처, 도반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한 가지, 스님들께서 드시는 음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스님들을 위해 수행에 도움이 될 만한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렸고 곧 스님들은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신통 또한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수행하는데 음식물 또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의 몸을 형성하고 몸의 기반이 잘 닦여 있어야 그 몸에 깃든 정신 또한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많은 연구에서도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탄산음료 등을 많은 먹은 아이들은 집중력이 저하되고 성격도 포악하고 급해지기 쉽다는 등의 결과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경구만을 보아서는 분명히 어떤 음식이 수행에 방해가 되었는지 또 어떤 음식이 특별한 음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대표적으로 오신채나 육식을 지양해야 할 음식으로 보는데 주로 오신채는 자극적이거나 음욕과 분노를 일으키게 하거나 들뜨게 하는 음식에 속하고, 과도한 육식은 정신을 혼탁하게 하고 마음이 사악해지며 살생의 업을 일으키게 한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능엄경』에서는 ‘중생들이 선의 삼매를 구하려면 오신채를 끊어야 하나니 이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심을 일으키고 생으로 먹으면 분노를 더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60여 명의 스님들이 한 여인의 공양과 정성스런 시봉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이 나자 이를 들은 한 스님이 자신도 그곳에 가서 수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스님이 어떤 생각을 일으키면 촌장의 어머니는 바로 스님이 생각하는 바로 알고 가져다 주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이 스님은 자신이 나쁜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그 마음을 다 알게 될까 두려워 그것을 피해 다시 부처님 도량으로 왔다.

 

이 비구를 보고 부처님께서 위의 게송을 설하셨다. 우리 마음은 이 비구스님 같이 가볍고 변덕스러워서 부처님 처소에서 수행을 하다가 누가 다른 처소가 좋다고 하니 또 바로 그 처소로 옮기고 그곳에 또 작은 장애라도 있으면 바로 변덕을 부려 다른 곳으로 옮기곤 한다. 이렇게 마음은 가볍고 변덕스러워 좋아하는 대상마다 쉽게 머물러 집착한다. 이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가장 뛰어나니 잘 다스려진 마음에 행복과 평안이 깃드는 것이다.

 

깨달음은 어떤 ‘좋은 처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가장 좋은 수행의 처소가 부처님이 계신 도량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중생은 마음이 가볍고 변덕스러워 그 좋은 부처님 도량을 마다하고 누가 다른 곳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좋은 음식을 대접 받았다고 하니 바로 그 좋아하는 대상에 마음이 휩쓸려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변덕스럽고 좋아하는 대상마다 집착하는 그 습성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행복과 평안에 이르는 길이지, 어떤 장소나 좋아하는 대상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로 돌아온 스님이 부처님께 사실을 실토하면서 돌아 온 이유를 설명했다.

 

“부처님! 사람은 물론 고귀한 생각도 하지만 때로는 저열한 생각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단 한 번이라도 나쁜 생각을 하게 되면 그녀가 제 멱살을 잡아 흔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그곳이 너의 수행처다.”

 

스님은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 사이를 오고 가는 이 변덕스런 마음을 어떻게 모두 다 잘 조복받고 지킬 수 있겠느냐며 갈 수 없다고 말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렇다면 이 마음, 저 마음,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을 다 지키려 들지 말고 오직 딱 한 가지만 잘 지키면 된다고 설하신다.

 

“오직 마음 한 가지만 지키도록 하여라. 마음은 통제가 어렵나니 다른 모든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마음 하나만 잘 지켜보도록 하라”

이 설법을 듣고 비구는 결국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켜 본 끝에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수많은 불교의 수행법이 있고, 공부해야 할 수많은 경전의 가르침이 있다. 그 뿐 아니라 내 마음에서는 끊임없이 욕망과 집착이 이어지고, 수많은 번뇌와 생각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나온다. 이 생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불교에 입문할지라도 해야 할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불교 공부, 경전 공부, 참선, 염불, 기도 그리고 욕망도 버려야 하고, 집착도 놓아야 하고, 생각도 조복시켜야 한다. 마음을 비우려고 절에 왔다가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나 오히려 더 번거로와 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를 다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음 하나를 잘 지키면 그것으로 모든 공부는 총섭되는 것이다. 달마스님도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이라고 하여 ‘마음을 관하는 그 하나가 모든 수행을 포괄한다’고 했다.

 

다만 마음을 관찰하면 그것으로 팔만 사천의 불교 수행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반대로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다 보고 독송할지라도 마음을 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불교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불교 공부가 너무 어렵다고 힘겨워 할 필요도 없다. 난해한 불교 교리를 이해하려고 애쓸 시간에 차라리 그 마음을 지켜보라. 끊임없이 올라오는 생각, 번뇌, 욕망, 화, 느낌, 감정 이 모든 마음의 작용을 다만 있는 그대로 지켜보라. 마음을 지켜보는 그 한 가지 수행이야말로 불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