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으로 떠나는 천년 역사기행
▲신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경주 남산.
그곳에는 아직도 신라인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 남산을 기단으로 삼아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별칭이 따르는 '용장사지 석탑' 아래 서면 서라벌의 경관이 한 눈에 펼쳐진다. 절집을 나와 들길을 지나면 삼릉숲이다. 이곳부터 본격 트레킹이 시작된다. 삼릉은 신라 왕릉 3기가 나란히 있는 곳으로 주변 솔숲이 압권이다. 낙락장송의 아름다운 자태에 취할 만한 곳이다. 특히 솔숲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올라 '소나무와 진달래'라는 한국적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들이 남산의 봄을 수놓는다. 특히 잡목 숲에 피어나는 진달래가 자칫 봄이면 으레 피어나는 들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경주 남산에는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다.
봄철 경주 남산 솔숲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오른다
여행하기 좋은 철이 왔지만 머릿속에 그리는 화사한 봄을 만끽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꽃샘추위 탓이다. 며칠 후, 청명(4월5일) 즈음이면 개나리, 진달래를 필두로 벚꽃도 망울을 터뜨릴 태세다.
이 무렵 몸과 마음이 충일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천년고도 경주 기행이다. 그중에서도 신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경주 남산이 백미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에 다름없는 곳으로, 과연 '남산을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산이다. 비록 봄꽃 향기를 접하지 못했어도 서운하지가 않다. 신라문화의 향훈을 따라 온 산을 헤매다 보면 어느덧 그 깊은 매력에 푹 젖어들고 만다.
▲ '신라의 미소' 배리삼존불
경주 남산으로 떠나는 느릿한 역사문화기행
경주 남산을 오르는 것은 경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정이다. 따라서 건강을 챙기는 스피디한 산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천천히, 그리고 느릿하게 신라인의 천변만화 표정과 맵시를 살피며, 그 매력을 탐닉하는 시간이다.
남산은 신라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곳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나정이 남산 자락이고, 신라의 종말을 가져온 포석정 또한 남산에 자리하고 있다.
서라벌의 진산(鎭山)격인 경주 남산은 예로부터 '절집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는 말이 따를 정도로 산사와 문화유적이 즐비한 문명의 공간이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을 사이에 두고 사방으로 펼쳐진 능선 골짜기에는 왕릉이 13기, 절터가 147곳이나 있다. 또 불상은 118기, 탑이 96기 등 문화유적의 수가 모두 670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유적이 산재한 노천 박물관은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망월사 석탑
이 같이 경주 남산에 유독 많은 불상이 새겨져 있는 것에 대해 사가들은 "남산의 바위가 신라인들의 정신적 수호신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라인들은 남산의 바위 속에 신들이 머물며 백성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었다. 이후 불교가 전래된 뒤 바위를 정성껏 새겨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경주 남산을 굳이 봄철에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봄날의 풍치가 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헌강왕-정강왕릉 주변의 아름드리 솔숲은 그 규모나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자태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다. 이맘 때 쯤이면 솔숲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오른다. 어느 시구처럼 '진달래 사태진 골'로 변신하게 된다. 하지만 올 봄은 아직 꽃소식이 늦다. 그래도 4월 상순이면 소나무와 진달래의 멋진 어우러짐을 목격할 수 있을 듯싶다.
▲ 삼릉계 마애관음보살상. 입술이 루즈를 바른듯 붉다.
천년의 세월이 녹아내린 숲속으로 들어서다 '삼불사 주차장~상선암'
남산 답사길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곳이 있다. 삼릉계곡이다. 삼릉곡에서는 10기 이상의 대표적 부처와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삼릉곡 산행은 삼불사에서 부터 시작된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를 품은 배리 삼존불이 주차장에서 가깝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불에 필적할 신라의 대표적 미소에 해당된다. 하지만 배리 삼존불은 보호각이 설치되며 아름다운 미소를 잃고 말았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에 내리쬐던 햇살이 더 이상 미치지 못하니 얼굴이 전혀 딴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햇살이 표정에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절대적이다.
본격 남산 탐방에 앞서 또 빼놓을 수없는 사찰이 있다. 망월사다. 삼불사 지척의 망월사는 수수한 절집이다. 사천왕상을 그려 넣은 대문이 사천왕문을 대신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절 안마당에는 귀한 볼거리가 있다. 망월사의 석탑은 드물게 연못 안에 탑을 세워 놓았다.
절집을 나와 들길을 지나면 삼릉숲이다. 이곳부터 본격 트레킹이 시작된다. 삼릉은 신라 왕릉 3기가 나란히 있는 곳으로 주변 솔숲이 압권이다. 낙락장송의 아름다운 자태에 취할 만한 곳이다. 특히 솔숲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올라 '소나무와 진달래'라는 한국적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들이 남산의 봄을 수놓는다. 특히 잡목 숲에 피어나는 진달래가 자칫 봄이면 으레 피어나는 들꽃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소나무 아래의 진달래는 그 자태가 더 도드라져 곱고도 수수한 두견화(杜鵑花) 본래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 삼릉계 선각육존불
솔숲 터널을 지나 맨 처음 만나는 부처는 목이 없는 석조여래좌상.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에 희생된 부처다. 불상 인근 바위에는 아담한 크기의 마애관음보살이 서있다. 얼굴 표정이며 자태가 오밀조밀 귀엽다. 문화유산 해설사 박택선씨는 "남산에서 가장 매력 있는 불상으로, '미스 신라'라는 별명을 지녔다"고 설명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키가 154cm에 입술엔 루즈를 바른 듯 붉은색이 감돈다. 석공이 붉은 빛이 도는 돌 부분에 부러 입술을 새겨둔 것이다. 마애관음보살은 한 손엔 전병을 들고 있다. 사가들은 이를 중생을 구제할 약병으로 해석하고 있다. 발가락 끝을 오므리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신라인들의 염원에 마애관음보살이 하늘에서 내려와 막 벼랑 끝에 멈춰선 형상이란다. 남산의 석상들은 이처럼 찬찬히 뜯어보면 한결같이 깊은 의미와 재미난 얘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 상선암. 여염집처럼 작고 소박하다.
거대 바위에 그림처럼 새겨둔 선각육존불도 신라인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현세의 기복을 염원하는 문수-보현보살과 내세의 영생을 염원하는 아미타부처 여섯 분을 새겨 두었다.
선각육존불을 지나면 두툼한 얼굴과 입술이 마치 농부의 얼굴처럼 소박한 선각여래좌상, 그리고 부부 금슬이 좋아진다는 부부바위가 나타난다. 이후 만나는 게 석굴암의 부처를 빼닮은 삼릉계석불좌상. 이 부처는 '성형수술'을 했다. 떨어진 불두를 이어 붙이는 바람에 얼굴에는 시멘트 성형수술 자국이 있다. 등 뒤의 광배도 복원을 해두었다.
▲ 마애석가여래좌상
삼릉계곡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상선암이다. 절집 치고는 작고 초라하다. 하지만 등 뒤에 땀이 꼽꼽하게 배어날 즈음 다리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푸근한 마음의 쉼터가 된다.
상선암에는 남산의 불상 중 좌불로는 가장 큰 마애불상이 절집 인근 바위에 새겨져 있다. 불상은 구름위에 둥둥 떠 있는 형상이다. 광배부위 균열된 곳에서 예전에는 진달래가 피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시멘트로 발라 봄이면 귀에 진달래꽃을 꽂은 듯한 마애불상의 모습을 더이상 만날 수가 없다.
▲ 금오봉 정상비
남산의 명물을 만난다 '바둑바위 ~용장골'
상선암 마애불상을 뒤로 하고 능선에 오르자 사방이 툭 트인 바둑바위가 나선다. 경주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로 멀리 무열왕릉, 대릉원, 반월성 등 경주의 주요 문화유적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어 능선을 따라 금오산 정상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삼삼오오 도시락을 까먹는 산행객들이 여럿 보였다. 바위에 배낭을 풀고 점심 식사 대열에 동참했다. 김 밥 한줄에 단무지 몇 조각이지만 학창시절 소풍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금오봉 정상 아래로는 남산을 가로지르는 임도가 나선다. 통일전과 포석정을 잇는 길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수인들의 노역으로 닦인 길이다.
봉화산 아랫녘은 남산에서 제일 크고 깊은 용장골이다. 조선 전기 매월당 김시습이 은둔하며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용장사가 있던 곳이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단종 폐위에 관직을 버리고 산천을 주유하다가 경치 좋은 경주 남산 용장골에 절을 짓고 집필에 몰두했다.
▲ 용장사곡 석불좌상
용장골의 명물은 용장사지 석탑이다. 로프 등을 잡고 가파른 바위를 타고 내려가야 탑을 만날 수 있다. 4.5m 높이의 기품 있는 삼층석탑을 두고 경주사람들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부른다. 용장사지 석탑이 남산을 기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석탑은 해발 380m 지점에 세워져 있는데, 산만큼의 기단 높이를 더하게 되니 '국내 최대 높이의 탑'이 된다는 주장이다.
탑 아래 삼륜대좌불 또한 명물이다. 용장사곡 석불좌상은 원반 같은 3개의 돌받침(삼륜대좌) 위에 부처를 모신 특이 구조다. 용장사터는 삼륜대좌불 아래에 있다. 다시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용장사터는 을씨년스럽게 잡초와 시누대 숲만 우거져 있다. 옛 용장사 승병들은 이 시누대를 잘라 화살을 만들었다.
▲ 생강나무꽃
아름드리 솔숲을 따라 내려오면 용장골 계곡을 만난다. 기암괴석이 제법 멋진 풍광을 그려대지만 계곡수는 적은 편이다. 설잠교를 지나 만나는 반석은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몸이 불편하고 나이든 신라 사람들이 석탑을 바라보며 합장을 했던 곳이다. 반석 주변 개울가 생강나무가 연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서 있다. 깨끗한 계곡수 만큼이나 청신한 자태는 잿빛 용장골에 화사한 봄기운을 더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 용장골계곡수
여행 메모
▶가는 길=경주 나들이가 무척 빨라졌다. 지난해 KTX의 개통으로 서울~신경주역 까지 2시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KTX신경주역에서 시내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경주의 특별 택시 '천년 마중'=경주에는 KTX 개통과 함께 '천년마중' 택시 서비스가 등장했다. 경주의 역사와 친절교육을 마스터한 택시기사들이 해설사역을 겸한 여행 가이드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신라문화원에서 개설한 경주 문화관광 소양교육을 마친 29명의 기사들이 참여 했다.
▲ 천년마중택시
'천년 마중'택시 기사협회 정순권 회장은 "친절교육과 경주의 역사문화교육을 충실히 받은 천년마중 기사들이 방문객 여러분을 안전하고 친절하게 모시고 있다"며 "최고의 여행 안내자가 된다는 사명감으로 핸들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천년마중택시를 이용할 경우 다양한 경주 여정을 소화할 수 있다. 대여료는 하루 8만~15만원 선. (054)775-7979
▶KTX& 렌트카=코레일관광개발이 운영하는 렌트카를 신경주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코레일 렌트카 회원과 철도 이용객이 렌트카 이용 시 40%의 할인율이 적용 된다. 렌트카 이용은 코레일 렌트카 홈페이지(www.korailrentcar.com)와 대표번호(1544-7755<내선 3번>)로 실시간 예약 가능하며, 지점(054-746-7788) 전화 예약도 가능하다.
▶체험 프로그램=신라문화원(www.silla.or.kr)은 매달 보름 즈음에 맞춰 진행되는 인기프로그램인 '신라달빛기행'을 4월 9일부터 시작한다. 유적답사 국악공연 탑돌이 등이 이뤄진다. 참가비 2만원(어른 기준). 신라문화원에서는 또 대릉원과 첨성대 사이 홍원심인당에 1000㎡규모의 체험장을 마련하고 경주만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문화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종이금관만들기, 탁본, 첨성대-신라의미소-와당 등을 초콜릿과 비누로 만들기, 한지공예, 연만들기, 연날리기, 다도, 국악공연 등 다양한 체험거리를 운영하고 있다. 종류에 따라 3000~5000원. (054)777-1950
▶경주 맛집=경주에는 황남빵, 팔우정 해장국 등 맛난 별미거리가 제법 있다. 보문단지에서는 최상급 한우와 함께 갓 지은 무쇠솥 밥맛이 일미인 '운수대통'(054-763-6767)이 맛집으로 통한다. 이 집은 화산 한우단지에 본점을 두고 있다.
▼ '소나무정원'의 곤드레돌솥밥정식 경주 남산 용장골 아래에는 소나무숲이 멋지게 펼쳐진 곳에 갤러리를 연상케하는 예쁜 집이 있다. '소나무 정원(054-746-0020)'이라는 이름의 밥집인데, 곤드레 돌솥밥에 된장찌개, 미나리무쌈, 파슬리 들깨무침, 연근3색 튀김, 마전, 애호박 갈이전, 미나리무쌈, 우엉김치 등 손이 많이 가고 정갈한 음식이 한상 가득 나오는 밥상(1인 1만원)을 대할 수 있다. 서양화가인 주인 안정희씨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도 돋보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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