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 푸른 솔숲 사이로 상쾌한 기운이...

難勝 2011. 4. 21. 19:31

 

이인문 '송계한담도'

 

깎아지른 석벽 앞 평평한 냇가에 모처럼 세 벗이 모였다.

두 사람은 앉고 한 사람은 등을 보인 채 옆으로 기댔는데 낙락장송 성근 가지 사이로 솔 향기를 실은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계곡의 턱진 시내에서도 냇바위에 부딪쳐 나는 차가운 물소리가 콸콸 하고 쏟아져내려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쓸어준다. 풀벌레 소리 중에 이따금씩 쓰르람쓰르람 하는 쓰르라미 소리가 반갑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쁘고 정다운 소리는 바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펼치는 사랑하는 벗들의 음성이다.

‘논어’에 ‘익자삼우(益者三友)’라 하였다.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박학다식한 사람을 벗하라’는 말이다.

 

마주보고 선 두 절벽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절집이 얼비친다. 그나마 아스라하게 머니 이곳은 속세와 인연이 먼, 깊은 자연의 속살이다. 군더더기를 다 떨궈내고 오랜 풍상을 견딘 늠름한 소나무 가지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제 생긴 모양대로 뻗었는데 그 조화는 정교한 글씨를 보는 듯 기막힌 균형을 보여준다. 이것은 조물주의 서예 솜씨다! 앞쪽에 그려진 각진 바위가 근경(近景)을 막고 다가서서 오히려 공간의 깊이를 아늑하게 해 준다. 이 바위와 오른편 절벽의 표면 질감(質感)은 도끼로 장작을 팼을 때 생긴 단면처럼 보인다. 붓을 뉘여 홱 잡아챈 부벽준(斧劈皴)이다.

 

이 도끼 자국 같은 붓질은 먹물이 말라 상큼한 느낌을 준다. 자연 속의 시원한 여름 맛을 한층 살린 것은 소나무와 시내 위쪽을 온통 여백으로 비워 둔 넉넉함에 있다. 그러고 보니 그림은 오른편 윗쪽에서 왼편 아래쪽으로 흐르는 대각선을 중심으로 그려졌다. 소나무의 긴 가지며 절벽에 친 부벽준, 그리고 물결이 모두 이 방향으로 흐른다. 옛사람의 글쓰기가 세로쓰기여서 같은 방향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것이다. 바위 윤곽선과 틈새의 잡풀을 묘사한 태점(苔點) 또한 성글게 흩뿌려져 답답하지 않다. 그것은 해맑게 펼쳐낸 파르스름한 바림 위에 떠서 더욱 깔끔하다.

 

벗들이 소나무 숲에 앉아 한가롭게 여담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송계한담도’는 이인문의 노년작이다. 언제 그렸다는 글씨도 없고 심지어 작가 이름을 적은 관지(款識)조차 없지만 이렇듯 칼칼하게 자연의 정수만을 뽑아 그려낼 인물은 그밖에 없다. 이인문은 키가 크고 깡말랐으며 눈빛이 형형했던 사람이었다. 그림은 작가를 닮는다. 환갑이 넘어 건강을 잃었던 동갑친구 김홍도와는 달리 이인문은 늙을수록 더욱 강건했다고 하는데 80세에 그린 정교한 병풍 그림이 아직도 전한다. 그의 호(號)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이다. 여기 그린 ‘늙은 솔(古松)’과 ‘흐르는 물(流水)’ 역시 작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푸른 솔숲 사이로 상쾌한 기운.

이인문의 송계한담도 

휘휘 늘어진 소나무, 푸른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계곡에 촬촬 흐르는 맑은 물,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 지는 것 같다.

 

선면위에 그린 소폭의 그림이지만 알맞은 화면구성과 세련된 필치와 맑은 청록의 채색이 주는 유현한 분위기에 청아함을 불러일으키는 이 그림(사진)은 이인문의 ‘송계한담도’이다.

 

이인문(李寅文: 1745;영조 21∼1821;순조 21)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본관은 해주(海州)요, 자는 문욱(文郁), 호는 유춘(有春)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자연옹(紫煙翁)이며, 아버지는 신대(愼大)이다.

화원이 되어 주부와 연풍현감을 지냈다. 김홍도(金弘道)와 동갑으로 함께 도화서에 있으면서 친하게 지냈고, 당시 문인 화가였던 강세황, 신위 등과도 가까이 지냈다.

인물·영모(翎毛)·포도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그중 가장 뛰어난 분야는 산수화였다. 특히 송림(松林)을 즐겨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명암이 엇갈리고 몸이 뒤틀린 모습의 소나무와 단아한 필치의 수목들과 각진 바위들을 특징있게 묘사했던 그는 남종화와 북종화에 각 체의 화법을 혼합하여 특유의 산수화풍을 이룩했다.

 

그의 작품들은 비교적 섬세한 필치로 단단하고 각이 진 모습의 선묘적 경향과 깔끔하고 청정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며, 만년에는 강하고 대담한 발묵(潑墨) 위주의 붓질로 격식을 초월한 그림을 즐겨 그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길이가 8m 56cm에 달하는 거작으로 그의 회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작품)’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와 여기서 보는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등이 있다.

 

시원한 솔바람과 맑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노송 밑에 앉아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 무슨 말들을 하고 있을까?

“계곡물은 술이요, 솔바람은 안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