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소동파(蘇東坡)의 삼생 인연

難勝 2011. 4. 27. 05:56

 

소동파의 삼생인연

 

옛날 중국 쌍림에 한 절이 있었는데 거기에 오계승이라고 하는 스님과 칠계승이라 하는 두 스님(사형/사제간)이 공부하고 있었다.

 

하루는 칠계승이 하는 일이 없어 도제(徒弟) 한 사람과 함께 세상에 나갔다가 삼차로구(三叉路區)라 하는데 이르러 한 유아가 엎드러져 우는 것을 보았다. 칠계승이 도제를 시켜, "가 보아 여아이면 그대로 두고 남아이면 데리고 오라." 하였다.

 

그런데 가보니 그 애는 여자였다.

그대로 놓아두니 더욱 울음소리가 기박하여 하는 수 없이 데리고 오다가 어느 다방에 이르러 다방 주인에게 은 몇 냥을 주고 그 어린애를 맡겼다.

 

그 후 십육년, 칠계승이 또 하산하게 되어 삼차로에 이르렀다가 홀연히 그 아이 생각이 나 다방에 들렀더니 아이는 사뭇 장성하여 봄꽃 가을 달과 같이 아름다웠다.

 

주인 응윤에게,

"이름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벽연(碧蓮)이라 합니다."

"과연 벽연처럼 아름답군요."

"뜻이 있으시다면 내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일과가 끝나면 그를 데리고 내 방 뒷문으로 들어 오시요."

하고 칠계승은 돈 몇 냥을 응윤에게 주었다.

 

응윤은 밤이 깊어 벽연을 아름답게 단장시키고 그 절로 찾아갔다.

과연 칠계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로 인해 칠계승은 계를 범하고 육개월이 넘도록 벽연과 함께 사정을 통했다.

 

그런데 하루는 사형 오계승이 좌선을 하다가 정중(定中)에서 칠계승이 벽연과 함께 부정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곧 시자에게 다과를 준비하게 하고 사숙(師弟)칠계승을 불러오라 하였다.

 

때가 8월 한가위 날이라 칠계승은 시자의 안내를 받고 아무 의심없이 사형방에 들어갔다.

"한 집에 산지는 오래지만 피차 수행에 전념하다 보니 만나기가 어려워 오늘은 내가 특별히 청했오."

"감사합니다. 사형"

 

이렇게 인사가 끝난 뒤 그들은 다과를 들면서 그동안 수도생활에 장애됐던 일과 진취득과한 일들을 주고받다가 오계승이,

"오늘은 연 꽃을 시제로 하여 한번 지어보세."

"좋습니다. 그럼 형님께서 먼저 지어보십시요."

"아니야, 오늘은 내가 자네를 청해 먹으니 시는 자네가 먼저 짓게."

 

그래서 칠계승이 먼저 시를 짓게 되었다.

햇빛이 붉은 노을에 비치니 못 가운데 가득 차는구나.

가을 바람을 가득 머금고 얼마나 오래 지냈는가?

한 가지에 비켜 누우니 물방울이 후두둑 는데

만자의 꽃다움을 주는 것은 홍연의 향기구나.

 

하고 지으니 다음은 오계승이 지었다.

달이 푸른 노을에 비치니 못 가운데 두루하고

가을을 맞이하여 밤이슬에 젖은 것이 얼마이던가?

가을 달속에서 어린 다잎 익히는 것을 구경하니

벽연이 홍연의 향기를 이기는구나.

 

칠계승이 듣고 사형 오계승이 자기의 부정한 일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 낯을 붉히며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와 응윤을 부르고,

"내가 벽연에게 정을 둔 일을 사형이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요. 내 은전 몇 냥을 더 줄터이니 벽연을 집으로 데리고 가 자유롭게 살게하고 다시 나의 생각을 하지말라 하여 주십시요."

하니 응윤은 쾌히 승락하고 벽연과 함께 돈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칠계승은 그날 밤,

"내 나이 사십칠세 만사가 하나로 돌아가니 단지 생각함의 차이라 오늘 아침에 급히 가노라. 깨달은 스님을 대하여 어찌 수고롭게 구걸하겠는가, 허황한 소리 번개불 같으니 옛을 의지하여 충천에 숨으리라."

하는 시를 지어 탁자위에 올려놓고 벽에 기대어 그대로 죽었다.

 

다음날 도제가 이것을 보고 오계승에게 알리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뒤 수개월이 지나서 하루는 오계승이 도제더러,

"무위승(無爲僧)이 할 일 없으니 세상 구경이나 하여보자"

하고 같이 나가자 하였다.

 

오계승이 사방으로 유람하다가 하루는 한 촌락에 이르렀을 때 흰 장닭 한 마리가 꼬꼬댁 거리며 따라왔다.

"가련하다 칠계승아, 벽연에 반년 뿌린 인연이 오늘 백계(白鷄)의 몸을 받게 하였구나!"

 

한탄하고 곧 주인을 찾아가,

"이 닭은 먹여도 이익이 없으니 나에게 팔면 절에 가지고 가서 시간가는 줄이나 알게 하겠오." 하니 쾌히 승락했다.

 

오계승은 도제에게,

"이 닭을 안고 사중에 들어가 왼쪽 눈을 빼어 버리고 오른쪽 다리를 꺾어 버린뒤 닭장에 넣어 절문 입구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스님들의 경읽는 소리를 듣게 하라." 하였다.

 

도제가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그 닭은 곧 스님의 수기를 받고 죽어 소주 소가(蘇家)의 집에 태어나 호를 동파라하고 이름을 자첨이라 하였다.

오계승이 비로소 안심하고,

"사제가 이제 사람 몸을 받았으니 나도 죽어 몸을 바꾸리라." 하고 곧 앉아서 죽어 소주 진가의 집에 태어나 이름을 단향이라 하였다.

십육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의 벼슬에 오르더니 사월 팔일 부처님 탄일에 호악사 스님을 만나 출가하여 불인(佛印)이라 법명을 얻었다.

 

한편 소동파는 십팔세에 이르러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가다가 한 중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고,

"스님은 출가한 사람으로 마땅히 재계를 해야할 것인데 어찌하여 술을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십니까?" 하니

스님은 도리여 화를 내면서,

"너는 네 할 일이나 할 것이지 네 일도 다 못 보는 놈이 남의 일에 무슨 참견이냐?" 하며 큰 소리를 쳤다.

 

소동파는,

"내가 만일 과거에 급제하면 마땅히 승도들을 국법으로 다스려 성안 출입을 금하리라." 맹세하고 서울로 올라가 대과에 급제했다.

 

하루는 한림학사 왕안석이 화정에 내려 왔다가,

'어젯밤 서풍이 꽃밭을 지나니 바람에 떨어진 누른 꽃이 땅에 가득차 황금색이다.' 하는 시를 지었는데 밖에 손님이 왔다 하여 나가보니 나이어린 동파였다.

 

맞아 접대하여 보냈는데 가고 난 뒤에 보니,

`가을 꽃을 봄 꽃 지는데 비길 것인가? 시인에게 분부하노니 자세히 읊어 보아라.`

책상 위에 이러한 글이 쓰여 있었다.

`어린 놈이 법도가 전혀없군.`

하고 이튿날 임금님께 이 이야기를 하여 곧 소주 자사로 좌천시켜 버렸다.

 

동파는 자사로 부임하자마자 전날 술집의 스님이 생각나 승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엄중히 고시했다.

'엄중히 백성에게 시달한다.

이 곳을 살펴보니 승도가 많이 출입하여 민심을 미혹하게 하고 백성의 재물을 화주하여 막행막식하니 지금부터 출입을 보고도 관가에 알리지 않는 자가 있으면 같은 벌을 적용한다.' 하였다.

 

호악사 불인선사가 이 소문을 듣고 소주거리에 내려와,

"소승이 걸음을 옮겨 산을 나오니 백 걸음에 한 걸음도 편치 못한 것이 마치 산 언덕 돌길 같으니 다만 광고를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도다."

하고 성문 앞에 앉았으니 수문장이 보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대의 상전을 만나러 왔노라. 안에 들어가 시 잘하는 중이 문 밖에서 기다린다. 일러라."

하니 호악사란 제목으로 시를 지어오라 한다.

"그래, 그러면 지어야지" 하고 곧 스님은 붓을 들고,

'호악사 늙은 중이 뿌리 없는 나무를 알려고 능히 하늘의 달을 취하고 바다밑에 등불을 켠다.

남산 호랑이도 잡고 북해의 용도 잡으며, 머리 가운데 옥선이 있어 한 가지도 못하는 것이 없다.'

 

동파가 글을 보고 들어오기를 허락하였다.

동파가 시를 지어 이르되,

강물이 넘치는데 위가 끊기지 않고 다만 물이 떨어져 동으로 흘러간다.

하였다.

불인선사는 동파의 마음이 불쾌한 줄 알고

어제는 호악산 위에 앉았더니 한 바퀴 돌아 밝은 달이 소주에 비쳤도다. 하니

 

그제서야 마음을 풀고,

"스님께서는 문학이 풍부하고 재주가 뛰어난데 어찌하여 벼슬하여 부모와 선영에 음덕을 쌓고 처자와 자손에 영화를 주지 않습니까?" 하였다.

 

스님이,

"어릴 때부터 학당에 들어가 글을 읽어 자래머리 진재하니 천가지 속에 단계를 헤칠때 만리에 향내난다. 세번 물결에 급하니 용이 손바람을 드리고 아홉겹 구름밖에 봉황의 상서를 받드니 도리혀 출가하여 수행 하는 것이 좋고 환가에서 동향하는 것 보다 좋다." 하고 또,

 

"부평금갑은 화당에 차고 알지 못하는 명월은 천리를 통하여 아침 바람 모래위에 불어오니 재비는 흙을 물고 그림들보에 두르고 있네." 하는 시를 지어 대답했다.

 

동파가 듣고 있다가,

"스님은 과연 시를 잘 하십니다. 색심을 알지 못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마침 그 때 한 미인이 차를 들고 왔다.

 

열 손가락으로 찻잔을 받드니

애교와 몸 태도와 모양은 꽃과 같고

동파의 액정은 천금보배 같으니

소승이 보기는 좋으니 삼동외의 맛이다.

 

동파가 이 시를 듣고 크게 뉘우쳐,

"지금까지 영화의 빛을 끊지 못하고 원정무가의 보를 보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일어나 스님께 절하였다.

스님이 혹 동파의 마음이 퇴심할까 염려하여,

"조정에 재상과 왕후는 여러 겁을 닦아 전생에 지은것 금생에 받나니 어찌 노력하여 고를 구하는가. 만일 즐거히 현중에서 한 생각 돌리면 서방(극락)가는길 선근이 되네. 서간 다소가 명이의 객, 생각에 빠져 머리를 못 돌리네."

 

동파가 스님의 뜻을 알고 다시 계를 지어 바쳤다.

"알았으니 홍진을 헤쳐나 출가하겠읍니다."

 

오호와 사해 단사를 놓고

배 고프면 산꽃 열매 먹고

목 마르면 맑은 우물 다로 마시고

이리저리 다니며 나무 뿌리나 캐어 먹고

한 세상 늙을까 합니다.

 

잠이 오면 도화에서 자고 나는 이제 신선되어

이름을 송조(松朝)에 두지 않겠습니다.

 

불인선사는 마지막으로,

천지 인륜 마가의 도는 한이 없어라.

좋은 집, 많은 사람 고운 여자와

평생을 지내어도 그 몸이 그 몸

이 신선의 여아는 눈 앞의 꽃이요

인생은 빙빙 돌아 의자와 같나니

모든 애착 다 버리고 어서 뛰어 나소서.

 

이로 인해 동파는 곧 불인선사를 따라 출가하여 용맹정진 하다가 깨닫고 보니 자기도 그 옛날 칠계승의 후신이고 불인선사는 오계승이라.

"사형 사형 이제사 알았습니다. 한 생각 뭉게구름 흐르는 물을---"

 

<불교설화 -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死者還生)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