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의 시무 28조
1. 요지(要地)를 가려 국경을 정하고, 그 지방에서 활 잘 쏘고 말 잘 타는 사람을 뽑아 국방을 맡도록 하소서.
2. 불사(佛事)를 많이 베풀어 백성의 고혈(기름과 피)을 짜내는 일이 많고, 죄를 지은 자가 중을 가장하고, 구걸하는 무리들이 중들과 서로 섞여 지내는 일이 많습니다. 원컨대 군왕의 체통을 지켜 이로울 것이 없는 일은 하지 마소서.
3. 우리 왕조의 시위하는 군졸은 태조 때에는 그 수효가 많지 않았으나, 뒤에 광종이 풍채 좋은 자를 뽑아 시위케 하여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태조 때의 법을 따라 날쌔고 용맹스런 자만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모두 돌려 보내어 원망이 없도록 하소서.
4. 왕께서 미음과 술과 두부국으로 길가는 사람에게 보시(법이나 재물을 베품)하나, 적은 은혜는 두루 베풀어지지 못합니다. 상벌을 밝혀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한다면 복을 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일은 임금의 체통이 아니오니 폐지하소서.
5. 태조께서는 수년에 한 번씩 사신을 보내어 사대의 예를 닦았을 뿐인데, 지금은 사신뿐 아니라, 무역으로 인하여 사신의 왕래가 빈번하니, 지금부터는 사신 편에 무역을 겸하게 하되, 그 밖의 때에 어긋나는 매매는 일체 금지하도록 하소서.
6. 불보(佛寶)의 돈과 곡식은 여러 절의 중이 각기 주군(州郡)에서 사람을 시켜 관장하며, 해마다 장리(비싼 이자)를 주어 백성을 괴롭게 하니 이를 모두 금지하소서.
7. 태조께서 나라를 통일한 후에 군현에 수령을 두고자 하였으나 대개 초창기에 일이 번다하여 미처 이 일을 시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청컨대 외관(지방관)을 두소서.
9. 관료들로 하여금 조회할 때에는 모두 중국 및 신라의 제도에 의하여 공복을 입도록 하여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분별하도록 하소서.
11. 풍속은 각기 그 토질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모든 것을 반드시 구차하게 중국과 같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12. 공물과 요역을 공평하게 하소서.
13. 우리 나라에서는 봄에는 연등(煙燈)을 설치하고, 겨울에는 팔관(八關)을 베풀어 사람을 많이 동원하고 노역이 심히 번다하오니 원컨대 이를 감하여 백성이 힘펴게 하소서.
14. 임금께서는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공손히 대하고, 죄지은 자는 모두 법에 따라 벌의 경중을 결정하소서.
16. 중들이 다투어 절을 짓는데, 수령들이 백성을 동원하여 일을 시키니 백성이 매우 고통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엄히 금하소서.
17. 근래에 사람들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재력만 있으면 다투어 큰집을 지으니 그 폐단이 많습니다. 제도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헐어 버리도록 명하여 뒷날에 경계가 되게 하소서.
18. 신라 말기에 불경과 불상을 만드는 데 모두 금·은을 사용하여 사치가 지나쳤으므로 마침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근래에도 그 풍습이 없어지지 않았으니 엄중히 금하여 그 폐단을 고치게 하소서.
19. 공신의 등급에 따라 그 자손을 등용하여 업신여김을 받고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20. 불교를 행하는 것은 몸을 닦는 근본이며, 유교를 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니, 몸을 닦는 것은 내생(來生)을 위한 것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곧 오늘의 일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가깝고 내생은 지극히 먼 것이니,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구하는 일이 또한 그릇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21. 우리 왕조는 종묘 사직의 제사는 아직 법대로 하지 않으면서 산악(山嶽)과 성수(星宿)에 대 한 초제는 번거롭게 합니다. 그 제사의 비용은 모두 백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민심을 얻으면 그 복이 기원하는 복보다 많을 것이니,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됩니다.
22. 광종이 노비를 안검하니 …천한 노예들이 주인을 모함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즉, 선대의 일에 구애되지 말고, 노비와 주인의 송사를 판결할 때는 분명하게 하여 후회가 없도록 힘써야 합니다.
최승로의 28조 항에 달하는 시무책은 아쉽게도 22조만이 고려시대 정사인 최승로전에 수록되어 있다. 최승로는 시무책을 통해 성종에게 서슴지 않고 일의 잘되고 못됨을 지적했다. 규탄할 것은 규탄하고 시정할 것은 낱낱이 지적하여 나라를 위한 높고 깊은 뜻을 시무 28조에 펴보였다.
시무 28조 내용
최승로는 경주 출신으로 신라가 항복할 때 아버지와 함께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귀순하여 일찍부터 고려에서 벼슬을 한 학자 출신의 중앙 관료였다. 최승로의 시무책은, 광종 사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 수립의 필요성을 느낀 성종 때에 건의된다. 유교적 정치 이념의 구현을 목표로 했기에 많은 조목에서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고 있으며, 유교의 ‘민본 정치 구현’과 관련된 민생의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호족 세력의 억제와 외관 파견의 주장 등으로 전국적 규모의 중앙 집권적 정치 형태를 구상하면서도 시위 군졸의 축소 등으로 왕권의 전제화를 견제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중앙 집권적 관료 사회에 애착을 가졌고, 귀족 관료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사회적 재편성을 원했기 때문이다.
최승로
신라 6두품 집안에서 태어나 고려의 재상까지 오른 최승로(崔承老 927~989)는 고려 6대 왕 성종의 즉위와 함께 그의 신임을 받아 유교적 통치 이념에 따른 제도 정비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최승로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그가 쓴 시무 28조일 것이다. 고려는 광종 대에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였지만, 그것은 힘에 의한 일시적인 안정에 불과한 것이었다. 최승로가 활약했던 성종 대는 왕권과 신권의 화해가 필요한 시기였고 그 소임을 맡은 인물이 최승로였다. 시무 28조는 유교적 통치 이념에 입각한 정치를 실현하고자 한 것으로 최승로의 등장 이후 고려사회는 본격적인 문치(文治)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음보살의 은혜로 태어나다]
최승로는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였던 바로 그 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라 6두품 출신의 최은함(崔殷含)으로 [삼국유사]에 출생 일화가 전하고 있다.
당나라의 신통한 화공이 신라에 와서 경주 중생사(衆生寺)에 관음보살상을 만들었다. 신라사람들이 모두 이를 우러러 공경하고 기도하여 복을 얻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라 말에 최은함이 결혼한 지 오래도록 아들이 없자 이 절에서 기도하고 아들을 얻었다. 석 달이 채 못되어 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습격하여 왕이 죽고 수도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백제군의 공격을 피해 은함이 아들을 안고 중생사로 와서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백제군이 갑자기 쳐들어와 저희 부자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어린 자식과 함께 도망을 치면 둘 다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진실로 부처께서 아기를 저에게 준 것이라면 대자대비의 힘으로 우리 부자를 훗날 다시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
은함이 울면서 세 번을 반복하여 기도하고 나서 관음상 뒤에 아기를 감추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15일이 지나고 백제군이 물러간 뒤에 다시 중생사를 찾아오니 아기가 마치 금방 목욕한 듯 깨끗하고 젖 냄새도 났다. 부처님께 감사하며 아이를 안고 돌아와 기르니, 점점 성장하면서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남달랐다. 이 사람이 승로이니, 그의 아비 은함은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들어와 대성(大姓)이 되었다. ([삼국유사], 삼소관음 중생사, 三所觀音 衆生寺에서)
최승로의 나이 10세 되던 해에 경순왕은 신라의 천 년 사직을 고려 태조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최승로는 이처럼 급변하는 사대에 태어나고 자랐다. 신라가 망하자 서라벌 사람들은 경순왕을 따라 새 서울 송도로 떠나갔다. 이때 어린 승로도 아버지를 따라 송도인으로 생활하였다.
최승로는 어릴 때부터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은 천재였다. 최승로가 태조 왕건을 만나 논어를 줄줄 외는 총명함을 보였을 때 그의 나이 불과 12살이었다. 최승로의 천재성에 감탄한 태조는 상을 내리고 그를 학자들이 드나드는 원봉성(元鳳省)의 학생으로 보내어 영재교육을 받도록 했다. 어린 시절부터 태조를 비롯한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최승로였으므로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그는 어린 시절에 만난 태조를 필두로 혜종∙정종∙광종∙경종을 거쳐 6대 성종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을 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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