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동화사(桐樺寺) - 봉황이 깃든 오동나무 꽃절

難勝 2011. 4. 30. 05:06

봉황이 깃든 오동나무 꽃절, 대구 팔공산 동화사

 

누군가의 글에서 팔공산에 있는 동화사를 `봉황이 깃든 오동나무 꽃 절’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 동화사라는 절 이름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쓰면 `오동나무 꽃 절’로 표현되니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런데 앞에 봉황이 깃들었다는 말은 왜붙였을까? 여기에는 동화사 절터가 봉황이 알을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동화사 풍수지리설이 도사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절 이름이 좀 길긴 하지만, 요리조리 뜯어보고 되새겨 볼수록 안성맞춤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봉황의 머리를 상징하는 동화사 대웅전: 대웅전 뒤에 대밭이 가꾸어져 있다.

 

동화사는 우리고장의 대표 절집이요, 가장 자주 가는 나들이 장소이다. 그러나 절은 알아도 동화사에 속속들이 숨어있는 이야기는 미처 모르는이가 많다. 동화사에 오동나무가 많은 이유는 동화사 창건야사에서 읽을 수 있다.`동화사 사적기’는 `오동나무꽃 절’, 즉 동화사라는 절 이름이탄생한 연유를 밝히고 있다.

 

사적기를 보면 동화사의 본디 이름은 비슬산에있는 유가사와 같은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신라헌덕왕의 아들인 심지대사가 절을 중창할 때, 한겨울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만발하여 오동나무 동(桐)자와 꽃피울 화(華)를써서 동화사로 개칭하였다고 적고 있다.

 

대웅전 천정의 닫집에 걸려 있는 6마리의 봉황들

 

동화사 중창 당시에 오동나무가 있었다는 것을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동화사 대웅전 뒤편 칠성각 옆에 고목인 채로 서 있는 오동나무를 `심지대사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동화사 절집 주변에는 오동나무가 유난히도 많다. 오뉴월이면자주빛 오동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람을가득 채우지만 그저 아름답다고 감탄할 뿐 오동나무의 깊은 내력을 새기는 이 얼마나 되랴.

 

동화사에 봉황과 관련되는 불적이 많은 이유는동화사 절터의 풍수지리에 연유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동화사 절터를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鳳凰抱卵形)이다. 동화사 주변의 지형지세를 보면 팔공산 주맥에서 뻗어 내린 용맥이 몸을 틀면서 남쪽으로 굼틀굼틀 내려오다가 대웅전 가까이에서 똬리를 틀었다.

 

주맥에서 가지 친 청룡은 금당선원 뒤편으로흘러내리고 주맥에서 오른쪽으로 가지 친 백호등은 대웅전과 금당선원을 앞으로 감싸 안아 그끝이 안산을 이루고 있다.

 

 

 

봉황이 둥지에서 알을 품는 봉서루: 계단 아래 자연석이 봉황의 꼬리를 의미한다.

바위 위에는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돌 3개가 안치되어 있다.

 

절간 곳곳 자리잡은 '鳳' 상징물

유난히 많은 오동나무와 대나무

그러다 보니 청룡과 백호가 만나는 수구는 계류만 흐를 정도로 빗장처럼 잠기고, 그 안은 밖에서는 분간하기 어려운 아늑한 터를 만든다. 이 터의 생김새가 마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이다. 자고로 봉황은 오동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대나무 씨앗을 먹고 자란다고 알려져 왔다.

 

봉서루 앞 봉황의 꼬리를 상징하는 바위 위에 얹어 놓은 봉황의 알을 의미하는 돌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자리에 오동나무가 없으면 봉황의 서식지라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동화사가 단순히 `오동나무 꽃 절’이 아니라 `봉황이 깃든’ `오동나무 꽃 절’인 이유를 이해할 수있다. 그렇게 보면 동화사라는 절은 오동나무 꽃보다는 봉황이 주체가 될 성 싶은데, 절 이름에는오동나무만 새겨져 있으니 그 이유를 헤아리기힘들다.

 

동화사 절터의 기본 바탕이 봉황인 만큼 봉황이 주요 이미지를 이루고 있다. 풍수지리설로 설명을 보태면 동화사에는 봉황이 날아가지 않도록하기위해 이런저런 방책을 마련해 놓았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방책을 비보라고 말한다. 먼저 동화사는 일주문에 봉황문이라는 이름을 붙여 봉황의 터전임을 알리고 있다. 규모가 큰 사찰이 갖추고 있는 삼문 중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자 그 절의첫인상을 새겨주는 불적이 일주문이다.

 

 

동화사의 일주문인 봉황문

 

동화사는 첫인상부터 봉황으로 새겨진다. 보통일주문 이름에는 절집이 들어선 산 이름과 절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동화사 일주문에는 `팔공산동화사봉황문(八公山桐樺寺鳳凰門)’이라 하여특별히 봉황이라는 글씨를 넣었다. 봉황의 터전이요, 봉황과 인연이 깊은 절터이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동화사 인악대사비의 받침돌도 봉황 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인악대사비는 봉황문을지나서 비탈진 계곡길을 한 참 오르다 보면 금당선원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인악당(仁岳堂)’이란 편액이 걸린 허름한 비각 안에 비석이 봉안되어 있다. 여기에는 조선 후기 큰 스님인 인악대사의 전기(傳記)를 새겨 놓았다. 비석의 받침돌은 보통 사각형의 다듬은 돌을 많이 썼다. 조선 이전의 격조 높은 비석은 거북모양의 몸체에 거북 머리나 용머리를 조각한 귀부형(龜趺型) 받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인악대사비의 받침돌은 상식을 뛰어넘어 봉황모양을 하고 있다. 새 중의 우두머리요, 초자연적 존재인 봉황 한 마리를 절 초입에 모셔 놓은 꼴이다.

 

절집에서 가장 신성한 영역인 동화사 대웅전(금당) 영역을 찬찬히 살펴보라. 커다란 봉황 한마리를 볼 수 있으리라. 우선 봉서루(鳳棲樓)를보자. 대웅전에 들어서기 전에 봉서루를 만난다.

절집의 가람배치에서 봉서루는 불이문 혹은 해탈문이라는 이름이 붙는 중문에 해당한다.

 

그런데 동화사에서는 이름을 달리하여 봉서루라 하였다. 봉서루는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봉황이 서식하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봉서루는 봉황의 둥지인 셈이다. 봉서루 입구 돌계단을오르기 전에 주변을 살펴보면 봉황이 알을 품고있는 둥지임을 알리는 상징물을 볼 수 있다.

 

봉서루로 오르는 돌계단 중앙 분리대 초입에봉황의 꼬리를 닮은 자연석 바위 하나가 안치되어 있다. 이것이 봉황의 꼬리를 상징하는 돌이다.

 

바위 위에는 알 치고는 제법 큼지막한 흰 색깔의둥근 돌 3개가 얹혀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 이 돌이 바로 봉황의 알을 상징한다. 알고 보면 봉서루는 봉황이 꽁지를내밀고 알을 품고 있는 몸통에 해당한다.

 

 

봉황을 조각한 인악대사비 받침돌

 

알을 품고 있는 봉황은 팔공산 정봉을 향하고있다. 봉황의 몸통은 봉서루이고 긴 목을 빼어 내머리가 닿은 곳이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봉황 머리를 상징한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그런 좌향을설명이라도 하듯 대웅전 뒤에는 울창한 대밭이조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밭 사이에, 그리고 그 주변에 수십 그루의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음도 볼 수 있다. 그 많은 오동나무 중에서도 `어른 오동나무’가 칠성각 옆에 늙은 채 품격을 자랑하는 `심지대사나무’이다.

설명을 듣고 상상해 보자. 오동나무 숲에 둥지를튼 봉황이 대나무 숲에 머리를 박고 열매를 따먹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

 

봉황은 대웅전 안에도 있다. 그것도 여섯 마리나 된다. 대웅전 천정을 살펴보라. 앉아 있는 자태가 마치 글을 읽고 있는 선비와 같은 삼존불상 머리위에 궁전 같은 닫집이 걸려 있고, 그 주위에 극락조라고도 불리는 봉황 여섯 마리가 날개 짓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절집의 금당에는 두세 마리의 봉황이 고작이거늘 동화사 대웅전에는 여섯 마리나 되니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봉황의 터전에는 봉황이 있어야 한다. 그 봉황을 붙들어 두기위해서는 둥지를 트는 오동나무와 먹잇감인 대나무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우리네 마을이나 고을 풍수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쉽게 볼 수있으니, 동화사에 오동나무와 봉황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