拈華茶室

다산 정약용의 걸명소(乞茗疏)

難勝 2011. 6. 28. 22:34

 

 

 

걸명소

 

나그네는 근래 차 버러지가 되어 버렸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

차가운데 묘한 법은

육우의 3편 다경이 통달케 하였으니

병든 큰 누에는 마침내,

노동(盧同)도 남긴 일곱째 잔을 마르게 하였소.

정력이 쇠퇴했다 하나 기모경의 말은 잊지 않았고

막힘을 풀고 흉터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찬황의 차마시는 버릇을 얻었소.

아아, 윤택할진저~~

아침에 달이는 차는 흰 구름이 맑은 하늘에 떠 있는듯 하고,

낮잠에서 깨어나 달이는 차는

밝은 달이 푸른 물 위에 잔잔히 부서지는듯 하오.

다연(차맷돌)에 차 갈 때면 잔구슬처럼 휘날리는 옥가루들

산골의 등잔불로서는 좋은 것 가리기 아득해도

자주빛 어린 차순 향내 그윽하고,

불 일어 새 샘물 길어다 들에서 달이는 차의 맛은

신령께 바치는 백포의 맛과 같소.

꽃청자 홍옥다완을 쓰던 노공(盧公=盧同)의 호사스러움 따를 길 없고

돌솥 푸른 연기의 검소함은 한비자에 미치지 못하나

물 끓이는 흥취를 게눈 고기눈에 비기던

옛 선비들의 취미만 부질없이 즐기는 사이,

용단봉병 등 왕실에서 보내주신 진귀한 차는 바닥이 났소.

이에 나물 캐기와 땔감을 조차할 수 없게 마음이 병드니

부끄러움 무릅쓰고 차 보내 주시는 정다움 비는 바요

듣건데 죽은 뒤, 고해의 다리 건너는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 줌 보내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부디 물리치지 말고 베품 주소서.

 

 

乞茗疏

 

乞茗疏 乙丑冬(1805년) 贈兒菴禪師 - 茶山 丁若鏞

 

旅人近作茶饕 書中妙辟 全通陸羽之三篇

兼充藥餌 病裡雄蠶 遂竭盧仝之七椀

雖浸精瘠氣 不忘綦 毋煚之言 而消壅破瘢 終有李贊皇之癖

洎乎朝華始起 浮雲皛皛 於晴天

午睡初醒 明月離離 乎碧澗

細珠飛雪山燈 瓢紫筍之香 活火新泉野席 薦白包之味

花瓷紅玉繁華 雖遜於潞公 石鼎靑煙澹素 庶乏於韓子

蟹眼魚眼 昔人之玩好徒深 龍團鳳餠內府之 珍頒已罄

玆有采薪之疾 聊伸乞茗之情

竊聞苦海津梁 最重檀那之施 名山膏液 潛輸瑞草之魁

宜念渴希 毋慳波惠.

 

 

결명소(乞茗疏) : 차를 얻고자 적음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乙丑冬(1805년) 贈兒菴禪師 :을축년(1805) 겨울, 아암선사에게 보냄.

 

旅人近作茶饕(여인근작차도) : 나그네가 요즈음 茶를 탐음하고

書中妙辟(서중묘벽) : 책속에 오묘함 열어준

全通陸羽之三篇(전통육우지삼편) : 육우의 다경 三편을 전통하고

兼充藥餌(겸충약이) : 겸하여 약으로 충당한다오.

病裡雄蠶(병리웅잠) : 병을 다스리자니 한밥잡힌 누에로

遂竭盧仝之七椀(수갈노동지칠완) : 마침내 노동 칠완을 다 들이키고

雖浸精瘠氣(수침정척기) : 비록 수척하고 정신이 잠기나

不忘綦毋煚(慮)之言(불망기무경(려)지언) : 기무려의 말을 잊지 않은지라.

而消壅破瘢(이소옹파반) : 옹체를 해소하고 흉터(죽은 깨)를 지우자하니

終有李贊皇之癖(종유이찬황지벽) : 끝내는 이찬황의 버릇이 생겼오.

洎乎朝華始起(계호조화시기) : 아침에 꽃이 갓 필 때,

浮雲皛皛於晴天(부운효효어청천) : 구름이 개인 하늘에 선연히 떠갈 때,

午睡初醒(오수초성) : 낮잠에서 막 깨어날 때,

明月離離乎碧澗(명월리리호벽간) : 明月이 점차 산 개울에서 멀어갈 때,

細珠飛雪山(세주비설산) : 솥에 물을 부으면 작은 구슬은 설산에 나르고

燈瓢紫筍之香(등표자순지향) : 등불은 자순차 향기에 나부끼느니,

活火新泉(활화신천) : 새 샘물 활력있는 불은

野席薦白包之味(야석천백포지미) : 야원에 백토시의 맛을 바치고

花瓷紅玉(화자홍옥) : 붉은 옥호 피어난 사발에

繁華雖遜於潞公(번화수손어로공) : 번영하는 유화는 비록 노국공에 못미치나

石鼎靑煙(석정청연) : 돌솥에 푸른 연기

澹素庶乏於韓子(담소서핍어한자) : 담박 질소하여 한자에는 가까우리.

蟹眼魚眼(해안어안) : 해안 어안은

昔人之玩好(석인지완호) : 옛사람들 즐겨 완미했거니,

徒深龍團鳳餠(도심룡단봉병) : 다만 심궁의 용단 봉병은

內府之珍頒已罄(내부지진반이경) : 나라안 곳집의 반급할 진장품은 이미 빈 그릇이라.

玆有采薪之疾(자유채신지질) : 이 사람 섶나무조차 못할 질고로 하여

聊伸乞茗之情(요신걸명지정) : 애오라지 茶 비는 정분을 신항함이라.

竊聞苦海津梁(절문고해진량) : 저으기 들으니 인생고해는 부처님의 진량중

最重檀那之施(최중단나지시) : 가장 소중함이 단나의 보시라 하고,

名山膏液潛輸(명산고액잠수) : 名山에 잠긴 경혈과 고액은

潛輸瑞草之魁(서초지괴) : 서초(茶)가 으뜸이라 하거늘

宜念渴希(의념갈희) : 마땅히 갈망 희구함에

毋慳波惠(무간파혜) : 아끼지 마시고 파도같은 은혜 베풀기 염원합니다.

 

* 아암 혜장선사(兒菴禪師) : 조선 정조 때의 스님(1772~1811).

속성은 김(金). 속명은 팔득(八得). 자는 무진(無盡).

호는 연파(蓮坡)·아암(兒庵). 1790년에 즉원(卽圓)의 법을 이어받았다.

변려문을 잘하였으며, 성리학에도 뛰어났다. 저서에 《아암집(兒庵集)》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걸명소(乞茗疏)

 

걸명소(乞茗疏)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이 유배시절에 아암 선사(혜장:1772-1811)에게 茶를 보내주길 간절히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글로 茶를 사랑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는 유명한 고전이다.

 

조선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선생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경북)로 유배됐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강진으로 유배됐다. 처음에는 강진의 동문 밖 주막집에서 4년간 머물렀고, 1805년 겨울에는 혜장스님의 주선으로 강진 읍내 고성사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 1806년 가을에는 이학래의 집에 있다가, 드디어 동백꽃 피고 지는 1808년 봄에 만덕산 기슭의 초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57세 된 1818년 9월 해배될 때까지 보낸 18년의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을 이 초당에서 지낸 것이다.

 

다산초당에서 생활의 안정을 얻은 그가 학문에 몰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외에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지만, 한편 차를 좋아했던 다산이 차나무 많은 만덕산에서 본격적인 다도를 즐겼던 것은 ‘다산 4경’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다산 4경’은 정석바위,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으로 뜰 앞의 평평한 바윗돌은 솔방울로 불을 지펴 찻물을 끓이던 부뚜막이요, 초당 왼편 뒤쪽의 맑은 샘물이 찻물로 쓰던 약천(藥泉;담도 삭이고 묵은 병도 낫게 했다 하여 약천이라 불렀다)이다. 동백 그늘 드리워진 뜰 오른쪽의 아담한 연못은 다산이 직접 축대를 쌓고 못을 파 물고기도 기르고 꽃나무도 줄지어 심고 물을 끌어 폭포도 만들었던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과 초당 뒤쪽의 바위벽에 그가 해배될 때 썼다는 정석(丁石)이란 글씨가 그것이다.

 

걸명소가 쓰여진 시기는 그의 나이 44세(1805) 겨울, 고성사의 보은산방이다. 다산은 백련사의 혜장선사에게 기력이 쇠약하고 정기가 부족하여 산에 나무하러도 못 가고 병든 큰 누에처럼 생각만으로 차를 마시고 있으니, 명산(名山)의 진액이며 풀 중의 영약으로 으뜸인 차(茗)를 좀 보시(普施;베풀어 달라는 뜻)하기를 목마르게 바란다는 내용이다. 또한 걸명소에는 육우의 다경을 통달하고 노동의 칠완다는 물론 차 끓이는 방법, 차의 빛깔과 향기, 물 끓는 모습, 차 맷돌에 차를 가는 방법, 좋은 다완, 용봉단의 고급차 등의 해박한 지식이 잘 나타나 있다.

 

걸명소의 내용에는 ‘차 맷돌에 차를 갈 때면 잔 옥구슬이 눈발처럼 휘날리네’ 라는 구절이 있다. 또 ‘떡차는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아주 곱게 빻은 다음 반드시 돌샘물로 고루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 작은 떡으로 만든 뒤라야 찰져서 먹을 수가 있다’고 떡차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나이 마흔에(1801) 유배를 가서 18년을 지내다 1818년 해배되어 18년을 더 사시다 76세(1836)에 세상을 뜬 다산선생은 돌아가신 날까지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언제나 찻잔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타계한 법정스님도 글 쓰시는 원고 위에 조그마한 찻잔이 있었으니, 집중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요즘처럼 날이 우중충하여 몸 무거울 때, 우리도 茶를 약으로 마셔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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