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앉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앉아야 좌선이지"
큰스님 열여덟 분 깨달음의 말씀 오롯이 담아 낸 <산승불회>
"옛날 지엄 선사가 화두를 하나 받기 위해 벽송 선사에게 10년을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공을 들여도 화두를 주지 않습니다. 하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우레같이 소리 질러 항의하고 울며 돌아내려 갑니다.
그때 벽송 선사가 '지엄아, 지엄아!'하고 부르는데 그 소리에 단박에 깨닫습니다. 스스로 깨달은 것이지 화두로 깨달은 게 아닙니다. 지엄 선사가 간절한 마음을 내도록 해준 벽송 선사가 진정한 선지식(善知識)입니다."
함양 황대선원 조실(祖室) 성수(性壽) 스님은 "화두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선(禪)은 누가 일러줄 수 없는 자오자득(自悟自得)의 길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새벽 별을 보고 대각(大覺)을 이뤘지만 새벽 별에게 화두 달라고 마음 낸 일도 없고, 새벽 별도 싯다르타에게 화두를 준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4월까지 1년 반 동안 전국의 암자를 다니며 발품을 팔아 좀처럼 친견하기 어려운 큰스님 18명이 전하는 깨달음의 말을 오롯이 담아냈다.
한마디 한마디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고승들의 생생한 사자후다.
저자는 "한국 불교에 선지식이 없다는 이들, 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르침을 받을 만한 스승을 찾기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이 열여덟 분의 스님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교 2학년 때인 1946년 우연히 형님을 따라 봉암사에 놀러 갔다가 '절 구경한 소감'을 묻는 스님에게 "신선 공부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다시 절로 꼭 오라"는 말이 가슴에 남아 출가했다는 혜정 스님(도선사 조실) 등의 출가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다.(그때 혜정 스님이 만났던 분은 성철 스님) 선승들의 처절한 수행 과정과 뼈를 깎는 경전 공부 과정, 고승들 사이에 벌어졌던 수행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출가 수행자들의 세계를 생생히 전해준다.
"불교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봉암사 수좌 적명(寂明) 스님은 "삼매(三昧)와 깨달음, 이 두 가지다. 삼매를 경험해 내 안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면 남과 다투는 일이 없어지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게 되면 보살행을 하게 된다"고 답한다.
"선이라고 하면 좌선을 떠올리는데, 몸이 앉는 것이 좌선이 아니라 마음이 앉는 것이 좌선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감화를 줄 수 있다"는 봉화 금봉암 고우(古愚) 스님의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유철주·조계종총무원 지음 | 불광 | 352쪽 |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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