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香爐)
불단위에 갖춰야 할 의식용 법구의 하나
소향공양은 부처님의 법신 설법내용 상징
나쁜 냄새를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향은 범어로는 Gandha이며, 건타(乾陀)ㆍ건두(健杜) 등으로 음역된다. 향을 피우지 않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거나 의식을 행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향은 불교 의례에서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소향(燒香) 용기인 향로 또한 없어서는 안 될 불구(佛具)로 간주되고 있다. 향로는 법구(法具)로서 막중한 상징성을 갖고 있기에 불자들은 깊은 신앙심으로 향로를 부처님께 바쳤다. 옛 불자들이 만든 향로 중에는 기능성을 뛰어 넘는 심오한 상징성과 높은 예술미를 갖춘 걸작품들이 적지 않다.
의장내용 제작기술 예술미 등 모든 방면 최고 걸작은 부여능산리 백제금동대향로
은입사 기법 표충사청동함은향완 ‘수작’
현존 옛사찰 향로 대부분은 ‘향완’ 형태
불단 위에는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의식 용구가 올려진다. 불을 켜는 두 개의 촛대, 꽃을 꽂는 두 개의 화병, 향을 피우는 향로 한 개가 그것이다. 이를 함께 일러 오구족(五具足)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이 다섯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정상적인 예불이나 의식이 진행될 수 있다고 불자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오구족 중에서 특별히 향로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향을 태우는 공양기라는 점 때문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불교의식에서 소향(燒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금강명경(金剛明經)〉 사천왕품에서 부처님은 소향의 영험과 공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였다. “손으로 향로를 받들고 경전에 공양할 때에 그 향기가 잠깐 동안에 삼천대천세계의 백억 해와 달과 백억 큰 바다와 백억 수미산과 백억 큰 철위산(鐵圍山), 작은 철위산과 모든 산왕(山王)과 백억 천하, 백억 사천왕, 백억 삼십삼천과 나아가 백억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천까지 두루 퍼진다.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백억 삼십삼천과 온갖 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들의 궁전과 허공에 여러 가지 향기의 일산(日傘)이 가득 차고 그 일산의 금빛은 궁전까지 비출 것이다.”
향을 피우면 향훈(香薰)이 백천만억 부처님 세계까지 널리 퍼져 여러 부처님들이 향기를 맡고 법문을 듣거나 공양하는 이들을 실제로 보고 알게 되는 큰 공덕이 있는 것이다. 향(香)ㆍ등(燈)ㆍ차(茶)ㆍ화(花)ㆍ과(果)ㆍ미(米) 등 여섯 가지를 공양하는 것을 육법공양이라고 하는데, 육법공양 중에서 향공양을 제일로 치는 것도 향공양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한편 부처님이 갖추신 다섯 가지 공덕을 찬탄하는 의식인 오분향례(五分香禮) 때에 부처님의 공덕, 즉 계신(戒身)ㆍ정신(定身)ㆍ혜신(慧身)ㆍ해탈신(解脫身)ㆍ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의 오분법신을 향에 대비시켜 계향ㆍ정향ㆍ혜향ㆍ해탈향ㆍ해탈지견향으로 부른다. 이때의 소향(燒香) 공양은 모두가 부처님의 법신과 설법 내용을 향에 비유한 것으로 그 근본적인 뜻은 소향의 신성(神聖)으로써 종교 의식의 내실을 기하려는 데 있다.
향과 관련된 풍습으로 매향(埋香)의 풍습이 있다. 매향이란 미래세의 미륵불에게 올릴 향을 강이나 바다 가까운 개펄에 묻어 두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미륵하생신앙과 관련이 깊다. 옛 향도(香徒 : 불교 신앙 활동을 위해 결성한 신도들의 단체)들은 미래세에 미륵 용화회(龍華會)가 열릴 때 미리 준비해 두었던 침향(沈香)으로 미륵부처님께 향공양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했고, 미륵불과 함께 미륵정토에서 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빌었다. 지금도 다수 전해지고 있는데, 고성 삼일포매향비, 정주매향비. 사천매향비, 암태도매향비, 해미매향비 등이 그것이다. 삼일포 매향비 기록에 의하면 1500개의 침향목(沈香木)을 개펄에 묻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통해 당시 불자들의 미륵 하강에 대한 절실한 기원을 알 수 있다.
향로라고 하는 것은 모양에 관계없이 향을 피우는 도구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향완(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향로의 일종으로 밥 그릇모양의 몸체, 몸체 위의 넓은 전(口緣部), 나팔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받침대를 갖춘 향로를 가리킨다. 현존하는 옛 사찰 향로의 대부분은 향완의 형태로 되어 있다. 향완은 예불 또는 의식 때 불단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향로로, 대개 청동제품으로 되어 있고 손잡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향완이 불단의 중심 위치에 놓이는 중요한 불구인 만큼 향도들은 제작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는데, 특히 문양 장식에 쏟는 정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향완의 문양은 그냥 그린 것은 드물고, 무늬를 선각(線刻)하고 그 틈에 은실, 또는 금실을 꼼꼼하게 박아 장식한 입사(入絲) 문양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향완에 세밀하게 장식된 문양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성격별로 분류해보면, 자연현상, 문자, 기물, 동물, 식물 등이 있다. 자연현상문은 구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기물문은 여의두문이 있으며, 동물문으로는 용, 봉황, 기러기, 오리가 있으며, 식물문으로는 연꽃, 당초, 보상당초, 덩쿨무늬, 풀무늬 등이 있다. 그리고 문자문은 ‘옴’,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 등의 범어(梵語) 문자가 많이 새겨져 있다. 특히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은 범종, 운판, 단청 등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향로에 집중적으로 장식돼 있어 주목된다. 진언은 깨달음의 심경과 팔만사천 경전 의미를 축약적으로 담고 있기에 다라니(摠持)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진언을 염송하면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고, 깨달음의 심경, 또는 경전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불교의 진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으뜸 되는 진언이 바로 ‘옴마니반메훔’인 것이다.
향로 하나가 문화재 발굴 종사자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들뜨게 했던 일이 1993년 12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있었다. 금동제 향로 하나가 발굴되었는데, 고려 명종 7년(1177)에 제작된 표충사청동함은향완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향로로 알려져 있었던 때에 이 향로의 발굴은 향로의 역사를 수백 년 이상 끌어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발굴 장소가 절터라는 근거에 의해 불교 의식용 향로로 판정된 이 향로는 발굴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대향로’라는 이름으로 국보 제287호로 지정될 정도로 의장(意匠) 내용이나 제작 기술, 그리고 예술미 등 모든 방면에 있어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몸체는 연꽃 봉오리로, 뚜껑은 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고, 몸체 아래에는 용이 향로 전체를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박산향로(博山香爐 : 발해 동쪽 바다의 신선이 산다는 상상의 산을 본떠 만든 향로)와 형태가 비슷하지만 몸체 부분이 연꽃 봉오리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상징적 의미의 중심이 연화화생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향로 뚜껑에는 첩첩의 산, 사슴, 학, 신선, 봉황 등 도교적 색채가 강한 문양들이 시문되어 있는데, 불교와 도교의 융합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술성이 높은 향완 하나를 더 소개하자면, 표충사청동함은향완(국보 제75호)을 들 수 있다. 고려 명종 때 제작된 이 향완은 주둥이 부분에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나팔모양의 받침을 갖추고 있다. 은입사(銀入絲) 기법을 사용한 청동제 공예품은 고려 이후의 불교 공예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표충사 향완도 바탕에 무늬를 새기고 그 틈에 은실을 박아 장식한 은입사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넓은 전의 윗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6개의 원 안에 범자를 은입사 했고, 그 사이사이에 구름무늬를 장식했다. 몸체에도 역시 굵고 가는 여러 선으로 그린 원 안에 은입사한 범어 문자를 4곳에 배치하고 받침에 구름과 용무늬를 새겼는데, 모습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밖에 고려시대 유물로 흥왕사명청동은입사운룡문향완(국보 제214호, 호암미술관 소장), 동제은입사향완(보물 제288호, 개인소장), 봉업사명청동향로(보물 제1414호, 호암미술관 소장), 지정4년명고려천동누은향로(보물 제321호,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통도사은입사동제향완(보물 제334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 향완(보물 제778호, 호암미술관 소장), 마곡사동제은입사향로(시도유형문화제 제20호) 등이 있다. 조선시대 유물로는 청동은상감향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 강희13년명동제은입사향로(보물 제1354호, 통도사 소장) 등이 있으며, 왕실제작 향로로는 조선 정조 임금이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용주사에 내려준 금동향로ㆍ청동향로(시도유형문화재 제11호ㆍ제12호)가 있다. 이 향로는 8각을 기본형으로, 각 면에 산수 무늬를 양각한 궁중 취향의 화려하고 섬세한 향로이다.
'尋劍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선 이야기 - 산승불회 (0) | 2011.09.09 |
---|---|
탑에 깃들인 역사와 미학 (0) | 2011.09.07 |
수미단 - 부처님 모시는 불단 (0) | 2011.09.02 |
불교에만 진리 있는 것 아니다 - 조계종의 '21세기 아소카 선언' (0) | 2011.08.26 |
내 이제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0) | 2011.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