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솔직하고 깔끔한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세상입니다.
▲ 신효섭 조선일보 기사기획 에디터 겸 대중문화부장
[태평로] 강호동을 '바보'로 만든 장관 후보자들
지난 추석연휴를 전후해 가장 큰 뉴스 중 하나는 강호동의 잠정은퇴 선언이었다. 강호동이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온 계기는 '수억원 세금 추징' 보도였다. 그는 방송출연료와 광고모델료, 음식사업 수익 등으로 연간 5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고소득 연예인이다. 그런 그가 세금을, 그것도 수억원이나 추징당했다고 하자 사태는 앞뒤 따질 것 없이 '수억원 고의탈세 의혹'으로 번졌다. 여론의 몰매질이 시작됐고, 한 시민은 그를 형사고발했다. 강씨측은 "고의탈세는 아니고 필요경비 인정 범위를 둘러싼 이견(異見)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서도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그는 나흘 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정당국은 강씨가 사기 등의 부정한 방법을 써서 고의적으로 탈세한 게 아니라 강씨 소속사 담당 세무사의 단순한 착오로 빚어진 일이라고 판단해 강씨를 형사처벌하지 않기로 했다"는 본지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검찰도, 국세청도 이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강호동으로선 '수억원을 탈세한 파렴치범'이란 오명(汚名)은 씻은 셈이다.
당연히 강호동에 대한 여론의 질타와 비판이 성급하고 과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 지금 인터넷에서는 그의 은퇴 번복을 요구하는 카페가 생기고 1만명 넘게 서명하는 등 여론 흐름의 변화가 뚜렷하다. 일각에서는 강호동의 결정을 "인기 하락을 막기 위한 외통수 선택" "연말이나 내년 초 지금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받고 다른 방송사로 말을 갈아타기 위한 정지작업" 등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강호동은 자신 때문에 생긴 문제에 대해 깨끗이 책임짐으로써 사회적 파장과 논란을 조기에 수습한 건 분명하다. 여론의 급반전도 강호동이 수억원에 이를 방송출연료 등 기득권을 포기하고 물러가는 '낮은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대조되는 게 최근 끝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몇몇 장관 후보자들이 보여준 태도이다. 한 장관 후보자는 실거래가가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9000여만원에 샀다고 신고한 게 밝혀졌다. 그가 세금을 규정보다 적게 내기 위해 그랬으리라는 건 초등학생도 안다. 그는 남편이 무주택자만 자격이 있는 사원아파트를 받기 위해 자신의 집을 남에게 판 것처럼 꾸몄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야당은 그의 세금 탈루액이 수백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다른 장관 후보자는 3년 동안 소득공제 대상이 아닌 아버지를 공제대상에 포함시켜 세금을 적게 냈다. 그는 실제 살지도 않는 곳에 주소를 옮겨 '농촌 거주자'로 위장한 뒤 농지를 산 사실도 밝혀졌다.
액수 차이가 날 뿐 편법과 탈법의 질(質)로 본다면 이들 장관 후보자들의 다운계약서 작성, 위장전입, 이중소득공제는 강호동의 '세무사 실수에 의한 세금 과소납부'보다 악성(惡性)이면 악성이었지 결코 모자라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장관이 돼 나라의 법 집행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은 "몰랐다" "불찰이었다" "어머니가 한 일이지만 유감"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들도 결국 몇몇 '선배'들처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장관 배지를 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시선이 아무리 싸늘해도 무시하는 '대범함'도 없고, "불찰이었다" "나는 몰랐다"며 발뺌하는 재주도 없이 '성급히' 자신을 내려놓은 강호동만 바보 아닌 바보가 되고 만 셈이다.
조선일보 신효섭 기사기획 에디터 겸 대중문화부장의 [태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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