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전
미륵부처님 모셔 미래의 희망 발원
미륵전은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신 전각이다.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이 용화세계의 용화수 아래이므로 용화전이라고도 하며, 장륙존상을 모신다고 하여 장륙전(丈六殿)이라고도 부른다. 특별히 산호전으로 불렸던 경우는 보은 법주사 산호전을 들 수 있다.
현존 우리나라 미륵전의 규모를 살펴보면 한 칸짜리 작은 건물에서부터 금산사미륵전처럼 3층의 대규모 건물에 이르기까지 그 모양이 다양하다. 미륵신앙이란 지난날 석존이 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미륵에게 장차 성불하여 제1인자가 될 것이라고 수기(授記)한 것을 근거로 삼고, 이를 부연하여 편찬한 〈미륵삼부경〉을 토대로 하여 발생한 신앙이다. 이 삼부경은 각각 상생과 하생과 성불에 관한 세 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륵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부지런히 덕을 닦고 노력하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뿐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미륵이 성불할 때 그를 좇아 사바세계로 내려와 제일 먼저 미륵불의 법회에 참석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미륵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 미륵전이다. 미륵전은 용화전이라고도 불리는 것을 봐서 알 수 있듯이 미륵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불전이다.
미륵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적광전이나 극락전, 대웅전처럼 사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일주문에서 금당으로 이어지는 중심 축선(軸線)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다. 이것은 부처님이지만 수기불이라는 점, 그리고 미래불로서의 미륵이 가진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현존 미륵전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건물은 김제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사적기〉에서 금산사는 서기 600년 백제 법왕의 원찰로서 창건되었다고 하며, 신라 성덕왕 때 진표 율사가 4년 여 기간에 걸쳐 금산사를 중창할 때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주존으로 모셨다고 하니 금산사미륵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240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찰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형태 다양
김제 금산사 미륵전 가장 크고 아름다워
용화전. 장륙전. 산호전이라 부르기도
미륵전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선조 때까지 별 탈 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정유재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후 인조 때 복원된 후에 몇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금산사 미륵전 안에는 좌협시로 법화림보살, 우협시로 대묘상보살을 거느린 미륵장륙상이 모셔져 있다. 이 미륵장륙상은 법주사 ‘시멘트미륵불입상’(지금은 청동상으로 대체됨)을 제작한 근대 조각가 김복진에 의해 재현된 것이다. 원래 있던 미륵장륙상은 1935년 3월 9일 밤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훼손되었다.
당시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3월 9일 밤 11시경 미륵전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서 높이 33척이나 되는 미륵상과 대묘상보살의 왼쪽 팔과 연화대 약 2평을 태우고 10일 아침 7시 반에 겨우 진화되었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는 좌협시인 법화림보살상이 등판 부분이 무너져 내리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금산사 미륵전은 외형은 3층처럼 보이나 내부는 통층 구조로 된 목조 건물로 구조와 건축미의 측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3층 건물의 각 층마다 편액이 하나씩 걸려 있는데, 3층의 ‘彌勒殿’이라고 쓴 편액 외에 1층에 ‘大慈寶殿’, 2층에 ‘龍華之會’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다.
이것은 모두 미륵전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1910년 경에 찍은 미륵전 외경 사진을 보면 맨 위층의 ‘彌勒殿’ 편액만 보일 뿐 1층과 2층에는 편액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통해 ‘龍華之會’, ‘大慈寶殿’ 편액은 나중에 보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금산사 미륵전을 더욱 숭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내외벽 각 구획마다 그려진 불.보살도, 나한도, 신중도, 산수도, 화조도 등의 여러 가지 그림들이다. 제작 시기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으나 화불(化佛)과 보살, 신중도 등에서 화공의 뛰어난 묘사력과 예술적 감수성이 눈에 띈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 조성된 포벽에 불.보살상과 나한상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화불과 보살을 그린 화공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 화불은 신광과 두광을 갖추고 있는데, 신광과 두광의 채색이 다르게 되어 있다. 수인과 옷주름의 표현이 유려하고, 색감이 미려하다. 또 한 가지 관심을 끄는 것은 백의관음에게 공례(拱禮) 하는 남순동자와 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백의관음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그림은 다른 불전 포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 밖에도 연꽃을 든 관음보살, 육환장을 짚고 있는 지장보살 등 다양한 보살들이 출현하고 있는데,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의 표현이 보살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 사천왕, 범천, 제석천, 금강역사 등 불법 수호 기능을 가진 신중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또한 보살상의 필치 못지않은 활달한 표현법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사천왕상은 사실적인 얼굴표정과 포즈, 치밀한 갑옷의 무늬와 흩날리는 천의(天衣)의 모습 등 뛰어난 묘사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넓은 벽면에는 지장보살, 지장의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보살과 신장 등이 묘사되어 있다. 건물 2, 3층에는 산수도, 화조도 이외에도 비천이나 화훼도, 나한도, 사군자 등이 요소마다 빈틈없이 장식되어 있다.
일부 퇴색된 그림이 섞여 있기는 하나 이 모든 그림들이 금산사 미륵전을 한층 숭엄하고 아름다운 미륵도량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한편 양산 통도사 용화전은 건물 규모나 장식그림에 있어서는 금산사미륵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미륵신앙의 현장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용화전은 고려 공민왕 때 지어진 건물로, 조선 영조 때 보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팔작지붕, 다포 양식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통도사 용화전은 그 앞에 세워진 석조 봉발대에 의해 미륵신앙의 현장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봉발대에는 석존, 가섭존자, 그리고 미륵하생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석존이 열반에 들기 얼마 전에 가섭존자를 불러 “56억 7000만 년 후 미래세에 미륵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이니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세상에 남아 있다가 내 법(法)의 신표인 발우와 가사를 미륵 부처님께 전하라.”고 부촉했다. 후에 가섭존자는 석존 열반 후 20년이 되던 해, 열반하지 않고 계족산(鷄足山, 인도 중부의 마가타국 가야성 동남쪽에 있는 산) 동굴 속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미륵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와서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는 중에 이 산에 이르러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니 산이 저절로 열리고, 가섭존자가 그곳에서 걸어 나와 미륵불께 석존의 가사, 발우와 함께 유훈을 전달한 후, 비로소 스스로의 몸을 태워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봉발대 위에 올려놓은 석조 발우가 바로 가섭이 미륵불에게 전하려고 했던 그 발우인 것이다. 봉발대로 인해 통도사용화전은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이밖에 한국 미륵신앙의 대표적 도량의 하나인 보은 법주사의 용화보전이 유명하다. 지금은 원래 건물이 없어지고 유지(遺址)만 남아 있지만 용화보전은 법주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중심 법당이었다.
용화보전은 산호전이라 불리었고 산호보광명전(珊瑚普光明殿)이라고도 불렸는데, 산호전이라는 명칭은 이 전각의 후면 암석을 산호대라고 불렀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사적기〉에 의하면 용화보전은 평면 35칸의 2층 건물로, 이 전각 안에 금색의 장륙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고종 시대에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 복원을 위한 당백전 주조의 명목으로 불상이 압수당하고 용화보전도 헐렸다고 한다. 이 용화보전 터에는 1964년 시멘트로 만든 미륵불입상이 조성되었으며, 1986년에는 이를 헐고 높이 33m의 청동미륵대불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 미륵전 중에는 불전의 일반적 형태를 벗어난 건물도 있다. 안성 죽산면 매산리에 있는 미륵불 봉안 건물이 그것인데, 네모기둥처럼 생긴 여섯 개의 화강암 주춧돌 위에 가늘고 둥근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올린 형식의 건물이다. 기둥 사이에 벽면이 없어서 불전이라 하기보다 보호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 건물이지만 미륵불을 모시고 있으니 미륵전이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산사 미륵전, 통도사 용화전 등 몇 개의 미륵전을 제외하면 건축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건물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보 제308호로 승격된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모셔진 북미륵암 용화전, 군위 대율동 석불입상(보물 제988호)이 봉안된 군위 대율사 용화전, 상주 석각천인상(보물 제661호)이 안치된 상주 신봉동 용화전 등은 그 안에 봉안된 불상의 높은 문화재적 가치 때문에 중요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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