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難勝 2011. 11. 24. 19:56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 조주가 한마디를 세 번이나 하다 -

 

조주 화상이 대중의 심기를 일전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흙으로 빚은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고,

금으로 만든 부처는 용광로를 지나가지 못하며,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구덩이를 지나가지 못한다.

 

참된 부처는 각자의 내면 안에 있으니

보리나 열반, 진여니 불성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몸을 감싸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니

이 역시 번뇌라고 이름 해야 한다

 

擧. 趙州示衆三轉語. 泥佛不渡水 金佛不渡爐 木佛不渡火.

(眞佛內裏坐 菩提涅槃 眞如佛性 盡是貼體衣服 亦名煩惱.)

 

 

위의 본문에 원래 '니불부도수(泥佛不渡水)', '금불부도로(金佛不渡爐)', '목불부도화(木佛不渡火)' 란 문장이 없었답니다. 훗날 설두(雪竇) 화상이 이를 놓고 송(訟)을 쓴 것을 보면 아마 본문에 누락 된 것 같다고 하네요. 그리고 괄호안의 문장은《조주록(趙州錄)》에 나오는 뒤 구절이구요.

 

여하간 형상 있는 것은 모두다 흙으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며, 불과 바람으로 흩어지는 것이 진리입니다. 하물며 흙으로 빚은 부처, 금으로, 나무로 만든 부처가 다 형상이 있는 것이니 물이나 용광로나 불구덩이를 지나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불에 타고, 물에 흩어지고, 용광로에서 녹는 것이 진리에 맞는 현상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만든 불상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일찍이 단하(丹霞) 화상은 이를 간파하고 추운 어느 겨울날 법당의 목불을 끌어내려 도끼로 패 불을 살라 언 몸을 녹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그 형상 있는 부처를 찾아 영험이 있네 없네 하며 온갖 정성을 다 바칩니다.

 

오래전에 팔공산 갓 바위에 올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가파른 계단을 수많은 인파가 줄을 지어 올라갔습니다. 갓바위 부처님을 모신 팔공산 꼭대기 넓지 않은 공간에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찬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을 비느라고 여념이 없었습니다.

 

갓 바위 부처님도 골치가 많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셔야 영험 있다고 할 텐데, 혹시라도 정성이 부족한 것은 뉘우치지 않고 공연히 갓 바위 부처님만 영험이 없다고 타박이나 하는 중생이 있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수천 년 동안이나 목불이다, 금불이다, 석불 따위에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드려봤으면 이제 영험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되었으련만, 아직도 그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참된 부처는 각자의 내면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성불(自性佛)을 깨쳐 그 불성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와 합일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인간이 공을 들여 소원을 빌 바엔 진리부처님에게 비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석가모니 당시부터 세존 멸후(滅後) 500년 까지는 무불상(無佛像) 시대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 우주 자연의 진리 그 자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 불상이 생기고 어리석은 중생이 진리 그 당체(當體)는 믿지 않고 인간의 손으로 만든 한낱 우상에 지나지 않는 불상에 지금까지 온갖 치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진리 그 당체를 믿는《일원상(一圓相)》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바로 이《일원상》이 진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진리의 사진이죠.

따라서 어차피 우리가 신앙을 할 바엔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를 믿거나 새 부처님이 천명하신 우주자연의 진리《일원상》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신앙법이고 사실에 맞는 불공법인 것입니다.

 

불상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흩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영원하고 불변하며 영험한 그 무엇을 불상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은 물을 보지 못하고, 용광로는 용광로를 녹이지 못하며, 불은 불을 태우지 못합니다. 오직 영원불멸한 것은 우주 자연의 진리뿐입니다. 그것을 깨쳐야 인간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화두를 두고 설두 화상께서 송을 하셨습니다.

 

진흙 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

혜가의 신비한 빛이 천지를 비추었네.

 

눈 위에 계속 서 있었더라면

어느 누가 모방을 하지 않았으랴.

 

금부처는 용광로를 못 지나가니

사람들이 개 키우는 자호 화상을 찾아갔네.

 

팻말 속에 '개 조심'이라고 쓰여 있으니

어디엔들 맑은 바람이 불지 않으랴.

 

나무부처는 불구덩이를 못 지나가니

조왕신을 제도한 파조타 화상이 생각나네.

 

문득 주장자를 들어 번개같이 내려치니

나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네.

 

泥佛不渡水 神光照天地. 立雪如末休 何人不雕僞

金佛不渡爐 人來訪紫胡. 牌中數箇字 淸風何處無

木佛不渡火 常事破竈墮. 杖子忽擊着 方知辜負我

 

 

옛날에 파조타(破竈墮) 화상이 조왕신을 제도 한 것처럼 사람이 믿을 것은 영험 있는 조왕신이 아닙니다.

부뚜막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

성(聖)은 어디에 있고, 영(靈)은 어디에 있는가요?

 

 

- 덕 산 합장 -

 

 

* 파조타(破竈墮) 

당나라 때의 승려로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다. 숭산(崇山) 혜안(慧安)의 법을 이었다고 한다. 머물던 절 옆에 영험하다는 조왕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제물을 바치는 것을 보다 못해 주장자로 내리치며 조왕신을 제도 했다고 하여 파조타로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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