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완주 화암사 극락전 국보로 승격 지정

難勝 2011. 11. 28. 20:23

 

 

 

 

완주 화암사 극락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화암사(花巖寺) 극락전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28일 보물 제663호인 완주 화암사 극락전을 국보 제316호로 승격 지정했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국내에서 유일한 하앙식(下昻式) 목조 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 형태다.

 

하앙(下昻)은 다포식(多包式) 건축양식 중에서도 도리 바로 밑에 있는 살미라는 건축 부재가 서까래와 같은 기울기로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지렛대 형식으로 떠받쳐 균형을 이루게 하는 공포를 말한다.

 

하앙식 건축물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완주 화암사 극락전만 실물로 보고돼 있다.

 

완주 화엄사 극락전은 정유재란 때 피해를 본 뒤 선조 38년(1605)에 중건됐다.

 

[완주 화암사]

 

신라 진성여왕 3년(694년)에 일교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설총도 한때 이곳에서 공부하였다고 전한다.

극락전은 1425년 성달생의 시주로 건립됐으며, 중국 남조시대에 유행했던 하앙식건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다

우화루 또한 고대 건축 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건물로 보물 제 662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해군 때 만들어진 동종은 호영이 주조한 것으로 절이나 나라에 불행한 일이 일을 때에는 스스로 소리를 내어 위급함을 알려주었다고하여 자명종이라고 부른다.

 

 

 

 

산속에 숨어 있는 백제의 향기, 완주 화암사

 

고려시대에 낡아서 다시 지은 건물에는 삼국시대 건물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조선 시대에 화재로 사라진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모습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있는 화암사가 바로 그런 절간이다.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고대 건축, 그 중에서도 백제식의 건물 분위기가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본래의 화암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세웠다.

이곳이 백제 지역이었던 만큼 백제식의 절집이었을 것이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치면서 고려시대에도 남아 있었다. 화암사 중창기에 따르면 고려말 조선 초 성달생이라는 무인이 1425년부터 4년에 걸쳐 중창하고 단청도 다시 칠하였다고 한다.

 

화암사는 상량문에 따르면 1605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끝날 즈음 1597년에 화암사가 불타버렸다. 타버린 극락전을 1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지은 셈이다. 임란 이후에 많은 절간이 다시 지어졌지만 화암사가 가장 빨리 재건한 축에 속한다. 그만큼 화암사는 인근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자락에 위치한 화암사는 욕심이 없는 절간이다. 한 채 가옥 규모밖에 안되는 사찰은 공양간과 극락전, 우화루 등 아기자기한 건축물들이 입구(口)자 형태로 옹기종기 모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