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의 가르침
당나라 고승 감진의 이야기다.
그가 몸담은 사찰의 주지승은 날이 궂건 개건 감진에게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게 했다.
비바람을 뚫고 돌아온 다음 날, 감진은 해가 하늘 가운데 걸리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이상히 여긴 주지승이 방으로 들어왔다가 이불 옆에 놓은 수십 켤레의 신발을 보았다.
“동냥하러 가지도 않으면서, 낡은 신발은 왜 쌓아 둔 게냐?”
“다른 사람은 일 년이 지나도 신발 하나 닳지 않는데 저는 일 년 만에 이렇게 많은 신발이 해졌습니다.”
주지승은 감진의 불만을 눈치 채고 말했다.
“어젯밤에 비가 한바탕 내렸더구나. 절 앞에 나가 보자.”
절 앞길은 진흙탕으로 변해 질퍽거렸다.
그걸 본 주지승은 감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어제 이 길을 지나왔겠지. 여기서 너의 발자국을 찾을 수 있느냐?”
감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는 길이 질퍽하지 않았는데, 발자국이 남았을리가요.”
그러자 주지승은 진흙탕에서 몇 걸음 걸은 뒤 말했다.
“그럼 내 발자국은 찾을 수 있느냐?”
“당연하지요.”
주지승은 웃으며 말했다.
“진흙 길이어야 발자국이 남는다.
한평생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은 사람은
마른땅을 밟은 것처럼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법이다.”
감진은 낡은 신발을 신은 뒤 동냥 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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