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 중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마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말이 여러 가지 형태로 파생되어서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개구리 옆 발질하는 소리”, “지렁이 하품하는 소리” 등 여러 형태의 재미있고도 다양한 표현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일부 국어사전에서는 ‘씻나락’이 표준어이고 ‘씨나락’은 남부지방의 방언이라 하며 다음과 같이 그 뜻을 적고 있습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① 분명하지 아니하게 우물우물 말하는 소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 조용하게 몇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비꼬는 말.
③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
그렇다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말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씨나락>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겠지요.
씨 나락은 한해 농사가 끝나면 수확한 벼 중에서 잘 익고 튼실한 것 적당량을 골라 다음 해에 종자로 쓰기 위해 남겨놓은 볍씨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농사꾼에게 있어서 씨 나락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종자 씨가 아니라 내일의 희망이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 나락을 삶아 먹지는 않았습니다.
즉 씨나락을 없앤다는 것은 희망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민간에서 전해오는 재미있는 어원설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농사가 시작되는 새봄이 오면 씨나락을 못자리판에 뿌리는데, 그렇게 충실한 씨앗으로 뿌렸건만 발아가 잘 안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경우를 보고 사람들은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었기 때문’ 이라고 했는데, 귀신이 까먹은 씨나락은 언뜻 보기에는 충실하게 보여도 못자리판에 뿌렸을 때 싹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해에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 바람에 볍씨의 발아가 반도 안 되어서 농사를 완전히 망친 박노인은, 신경이 몹시 곤두서 있었다.
어떻게든지 이번에는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지 못하게 하여,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씨나락은 지금 헛방의 독에 담겨져 있다.
밤잠이 별로 없는 박노인은 온 밤 내내 헛방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뽀시락” 하는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기 무슨 소리고? 틀림없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재?"
"참 내, 아이고마, 고양이 소리 아이요. 신경 쓰지 말고 주무시소 고마."
선잠을 깬 할멈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짜증스럽게 말하자, 박영감이 화를 버럭 내었다.
"멍청한 할망구 같으니라구.. 그래, 임자는 이 판국에 잘도 잠이 오겠다."
할멈에게 타박을 준 박영감은 헛방으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의 귀신아! 내가 네 놈의 짓인 줄을 모를 줄 아느냐? 내 다 알고 있으니 썩 물러가거라."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진 박영감은 이제 바람이 문짝을 조금만 건드려도 큰기침을 하며 달려나가 온 집안을 돌며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이놈의 귀신, 어디로 들어오려고 문고리를 잡고 흔드노? 썩 물러가라, 썩! 썩! 이놈의 씨나락 귀신아!"
야밤중에 갑자기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온 집안 식구들이 깜짝깜짝 놀라 깨어서는 모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른이 엄동설한 한밤중에 바깥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데 어떻게 아랫사람이 뜨뜻한 구들목에 그대로 누워있을 것인가.
온 식구가 다 나가서 박영감의 노기가 가라앉을 때 까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는 들어오게 되는데, 천리만리로 달아난 잠을 내일을 위해 억지로 청해서 설핏 잠이 들려고 하면 또 바깥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야들아! 어서 나와 보그레이. 또 이놈의 귀신이 씨나락을 까묵으러 왔는갑다."
자식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어떤 날은 하루 밤에도 두 세번 씩 오밤중에 벌떡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가는 일이 계속되자, 온 식구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일로 완전히 노이로제에 걸리게 됐다.
"영감, 제발 잠 좀 잡시더. 꼭 귀신이 씨나락을 까묵는다 카는 증거도 없는기고, 귀신이 굳이 씨나락을 까묵을라꼬 마음 묵으마 우리가 이런다꼬 못 까묵겠소? 발 아이들 그만 들볶으소. 그 아이들이 내일 일 나갈 아이들 아이요?"
보다 못한 할멈이 영감을 붙들고 사정을 해보지만, 박영감의 고집을 누가 꺾으랴!
"이 할망구야, 우찌 눈을 뻔히 뜨고 귀신이 씨나락을 뽀시락뽀시락 다 까묵는 걸 보고만 있으란 말이고? 귀신이 안 까묵으모 도대체 누가 까묵었을끼고?"
그 해 겨울 내내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
거의 매일 이렇게 밤잠을 설치다 보니 만성적으로 잠이 부족하게 되어 도무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쯤 되자, 아무리 효자로 소문 난 만식이지만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만식이는 기어이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부지요, 제발...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단 소리 좀 하지 마이소. 인자 고마 미치겠십니더."
이렇게 해서 나온 말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의 유래라고 전합니다.
이 외에 또 한 가지의 유래가 있습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귀신 시나위가락 소리’에서 온 말이라고도 하는데 ‘귀신 시나위가락’이란... 무당이 접신해서 신들린 춤을 추는 춤사위와 함께 무당의 입을 통해서 혼령의 원을 달래는 서글픈 노래 가락을 말합니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에는 "귀신 시나위가락"이라는 말이 몇 차례 나옵니다.
어쨌거나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는지, 안먹는지는 본 사람이 없기에 알 수가 없고 이 말이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는 "멀쩡한 사람 굶어죽게 할 말"이라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마라.”는 말은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귀신(鬼神)
일반 사물과는 다른 존재양식을 지니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결정하여 숭배와 경외의 대상이 되는 존재 또는 권능.
인간의 행·불행을 가늠하는 여러 요인 중에는 인간의 의지로 예측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의 지식한계나 노력을 뛰어넘어 예측도 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전근대사회에 있어서 사람들은 그러한 불가해한 사실들에 대한 설명을 대개는 '귀신현상'에서 찾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하여 인간의 문제들을 풀고자 노력했다. 그결과 우리 겨레는 귀신신앙과 많은 관련을 맺으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해왔다. 흔히 "귀신도 곡할 노릇이다", "귀신도 속이겠다", "귀신같이 잘한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경우에 막힌다", "귀신 듣는 데서는 떡 소리도 못한다", "귀신도 모르는 제사" 등의 속담이나 관용어가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귀신에 대한 관념이 한국인의 의식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민속상에는 "살아 있을 때는 사람이라 하지만, 죽어서는 귀신이라 부른다"는 말이 있다. 곧 귀신은 사람과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지만, 다만 사람이 죽어서 된 그 어떤 상태가 귀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도 저마다 성품과 능력이 다르듯이 귀신의 그것도 각각 다르다고 믿는다. 생전에 비교적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편안한 죽음을 겪은 사람은 죽어서도 좋은 귀신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귀신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좋은 귀신과도 일정한 관계를 갖지만, 느닷없는 화(禍)를 피하기 위해서 나쁜 귀신의 피해를 어떻게 막아내는가에 더욱 관심을 보인다. 특히 불행한 삶을 살고 비정상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잘못된 죽음을 억울하고 갑작스럽게 맞이한 경우, 가령 객사(客死), 횡사(橫死), 급사(急死), 동사(凍死), 몰사(沒死), 분사(憤死), 아사(餓死), 압사(壓死), 오사(誤死), 요사(夭死), 액사(縊死), 익사(溺死), 분사(焚死), 참사(慘死), 그리고 미혼남녀의 죽음 등의 경우에는 나쁜 귀신이 될 수 있다. 이밖에도 무속에서는 무당 귀신인 무녀귀신, 처녀귀신인 손각시, 총각귀신인 몽달귀신, 간사한 여자귀신인 하리가망, 비명횡사한 영산, 죽어서 떠도는 남녀노소 귀신인 상문, 의지없이 떠도는 여자귀신인 말명, 악귀를 따라온 귀신인 수비 등 여러 종류의 귀신 관념이 있다. 결국 이런 귀신이 사람과 관계를 가지려 하면 할수록 사람에게는 불행이 초래된다. 그러나 모든 귀신이 그렇게 나쁜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행복한 삶과 올바른 죽음을 겪은 귀신은 특히 후손을 중심으로 하여,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지닌다. 이들 귀신은 진작 저승으로 무사히 잘 갔고, 기회가 있으면 사람들과 제사나 기타의 방법으로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이른바 올바른 의미에서 어엿한 조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귀신은 엄밀한 의미에서 주로 사령(死靈)을 뜻하지만, 더 넓게는 하늘·땅·산·물·바위 등의 자연이나, 호랑이·소·개·여우·닭 등의 동물이나, 둥구나무 등의 식물, 그리고 어떤 사물이나 질병조차도 상황에 따라서는 귀신이 될 수 있고, 또한 귀신이 그것에 붙을 수 있다고도 믿는다. 가령 마을을 보호해준다는 산신과 마을 입구의 장승, 솟대, 탑, 수구막이 선돌, 둥구나무, 그리고 집안의 여러 귀신들인 성주 조왕 터주 삼신 축신 등도 민속상의 중요한 귀신들이다. 또한 어떠한 일을 할 때에 귀신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길(吉)한 시간과 공간을 찾는다.
사령의 귀신이든, 어떤 사물과 자연의 귀신이든, 그들이 사람을 괴롭힌다고 판단되면 이를 막거나 내보내기 위한 여러 방책이 강구되는데, 민속상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방법들('뱅이')이 있게 된다. 첫째, 귀신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사물로 위해를 막는 것이다. 귀신은 붉은색을 꺼린다 하여 황토를 뿌리고 팥죽을 쑤기도 하며, 피를 바르기도 한다. 곧 디딜방아를 거꾸로 세우고 여기에 월경혈이 묻은 여자 속곳을 씌우면 돌림병이 달아나고, 개피와 닭피도 귀신을 쫓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한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나 가시 많은 엄나루 가지를 사용한다. 둘째, 귀신을 위협하여 쫓아내려는 방법을 쓴다. 이때문에 귀신을 위협하여 구축하는 방법은, 특히 무속을 중심으로 많이 발달하였다. 예컨대 무당이 삼지창으로 병자의 환부(患部)를 찌르는 행위를 하면서 "썩 빨리 나가라!"라고 협박을 하든지, 바가지에 여러 음식물을 조금씩 담고 그것을 환자의 머리 위로 빙빙 돌리면서 "무엇을 먹고 싶은 귀신인지, 이것이라도 빨리 먹고 물러가라!"고 소리친다. 셋째, 귀신을 환대하고 공경하여 잘 달래서 떠나게 하는 방법이다. 가령 마마신이 와서 아이가 병을 앓게 되면, 이 마마손님을 노하지 않도록 잘 보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손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러 음식물이 차려지고, 이 잔치상에 엎드려 절하고 기도하고 노래한다. 또한 손님에게는 수시로 여러 선물이 바쳐지며, 보낼 때에도 성대한 잔치로서 배웅을 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그들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귀신들과 정상적이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을 보장받으려 했고, 바로 이점 때문에 민속상의 다양한 귀신관념과 그와의 관계설정에 대한 여러 방법이 생기게 된 것이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잎새 (0) | 2011.12.09 |
---|---|
다식(茶食) 이야기 (0) | 2011.12.08 |
대설(大雪)과 메주쑤기 (0) | 2011.12.07 |
지혜로운 여자가 되자 (0) | 2011.12.07 |
술버릇으로 성격 알기 (0) | 2011.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