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봄이 되면 생각나는 양귀비(楊貴妃)

難勝 2012. 3. 21. 05:45

 

 

 

양귀비(楊貴妃)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미인 중의 한 사람이다.

양귀비는 당(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의 총애를 받았던 비로 원래 이름은 옥환(玉環)이다.

 

지금의 산서성 영제<永濟>) 출신으로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 양립(楊立)의 집에서 자랐다.

가무(歌舞)와 음률에 뛰어났으며 총명하면서도 용모가 천하절색이었다

 

양귀비는 중국의 대시인 이백(李白)과 백거이(白居易) 등이 그 아름다움을 노래할 정도로 유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명성은 가히 세계적이어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과 무혜비(武惠妃)의 아들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로 궁궐에 들어갔다

당시 양귀비는 17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현종이 우연히 자기의 며느리인 양귀비의 어여쁜 자태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해 버렸던 것이다.

 

그날 이후부터 현종은 양귀비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현종은 자신의 측신이자 당대 최대의 권력가인 환관 고력사(高力士)를 불러 이 일을 의논하였다.

 

결국 고력사는 양귀비의 두 몸종을 매수하여 그녀들에게 양귀비의 마음을 돌리도록 하였다.

양귀비의 몸종들은 매일같이 양귀비를 설득하였으며 양귀비도 본래 수왕(壽王)에 대한 사랑보다는 부귀영화에 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수왕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수왕을 떠난 양귀비는 우선 화산(華山)으로 가서 여도사(女道士) 생활을 하다가 다시 현종의 궁으로 들어왔다.

양태진(楊太眞)이란 이름은 바로 양귀비가 여도사 생활을 할 때 얻은 호이다.

 

현종은 자기의 품으로 돌아온 양귀비를 위해 궁궐을 하나 마련해주고 그것을 태진궁(太眞宮)이라 하였으니 그로부터 이 태진궁은 그들만의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되었다.

 

천보(天寶) 4년(745)에 '귀비(貴妃)'에 책봉된 이후 이미 고인이 되고 없는 황후의 위치를 대신하다시피 하였다.

 

 

 

- 고대 미인화(양귀비) -

 

양귀비는 얼굴만 미인이 아니고 품성 덕성 취미 재주 가무는 기본,

처신하는 태도나 인품이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네요.

 

 

 

그 어떤 대상이든지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으면 사랑도 느낄 수가 없겠지요.

사랑은 아름다움에 의해서만이 싹을 틔우고 아름다움에 의해서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들이 모두 기운에 의해서 모이고 흩어지는데......

어떤 것이든 좋아하면 가까이에 있게 되고 싫어하면 멀어지게 마련이지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참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침서 역할을 해주니까요.

 

 

 

 

 

아름다운 이 그림 많이 보시어 눈이 아름답고 젊어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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