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해설사 자료실

치악산 구룡사, 이것만은 보고 오자

難勝 2013. 12. 11. 19:09

치악산 구룡사

 

 

구룡사

 

흔히 사찰이라 하면 왠지 엄숙할 것 같고, 어느 곳을 가도 똑같은 건물에 비슷한 불상이 있어 구분하기도 어려워 그냥 휙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종교가 다를 경우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사찰은 아는만큼 보인다.

종교시설인 사찰은 1천3백년 이상 이어오면서 우리 문화의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알고 보면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원주의 대찰인 치악산 구룡사, 이것만은 보고 오자.

 

 

 

구룡사, 이것만은 보고 오자

 

사천왕문

 

 

사천왕문은 말 그대로 네 분의 천왕이 있는 문이다.

4대천왕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동서남북 4개의 문을 지킨다. 동쪽의 지국(持國)천왕, 남쪽의 증장(增長)천왕, 서쪽의 광목(廣目)천왕, 북쪽의 다문(多聞)천왕이 있다.

 

손에 든 물건(持物)과 얼굴 색깔로 구분된다.

비파를 든 지국천왕은 기쁨과 봄을 관장하며 푸른색을, 큰 칼을 든 증장천왕은 사랑과 여름을 주관하며 붉은색을 띤다. 흰 얼굴의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 분노와 가을을, 검은색 다문천왕은 큰 창과 보탑을 들고 즐거움과 겨울을 각각 상징한다.

 

눈을 부릅뜨고 험상궂은 얼굴을 한 4천왕은 사찰 경내의 부처, 불법, 승려, 불자를 지키며 선업을 쌓은 중생은 통과시키고, 악업을 지은 중생과 천상을 어지럽히는 마군들은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외부의 악한 기운이나 침입자를 막아 청정도량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이 사천왕문만 무사히 통과하면 지금까지 선업을 쌓으며 잘 살았다고 스스로 자부해도 좋으니 한 번 시험해 보시라.

 

 

보광루

 

 

강원도 지정 유형문화재 145호...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사항은 몰라도 왜 문화재일까만 보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기둥 아랫부분을 보면 보수공사의 흔적인 이어붙인 부분을 볼 수 있고, 자연석을 주춧돌로 사용하고 기둥의 아랫부분을 돌의 면대로 다듬어 세운 것을 볼 수 있으며, 기둥은 잘 다듬은게 아니고 통나무의 껍질만 벗겨서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미를 살린 이런 건축물이 우리 지역에 있음을 알고 계셨는지...

 

 

괘불대

 

 

괘불대란 말 그대로 괘불을 거는 기둥을 받치는 받침대다.

외형은 당간지주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당간지주는 한 개로 사찰 외곽에 있고, 괘불대는 본당 앞에 한 쌍으로 설치를 한다.

 

사찰의 큰 행사가 있을 때 많은 신도가 몰림으로 해서 대웅전에 모두 수용이 불가능하면 부처님의 그림, 즉, 괘불을 대웅전 앞 마당에 두 개의 기둥사이에 내걸고 야외법회를 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이 야외법회를 한자로 야단법석(野檀法席)라 불렀다.

 

어른들이야 심중 소구소원이 있으니 열심히 기도를 하지만, 따라온 아이들은 장난치고 싸우고 소란을 떨어 절을 떠들썩하게 해서 <야단법석>이 시끄럽고 소란스럽다는 의미로 변형 사용되게 되었다.

 

괘불은 보통 10미터 이상의 대형불화로 사찰에 많은 대중들이 모이는 부처님 오신 날, 천도제 등 야외법회를 행할 때 사용된다. 괘불은 불전(佛殿) 불단(佛壇) 뒤의 궤(机)에 보관되어 있다가 특별한 행사가 있을 경우 불전 앞마당에 괘불대를 설치하고 괘불이운(掛佛移運) 행사를 거쳐서 괘불대에 걸어 야외법회를 진행한다. 그러므로 괘불은 평소에는 보기 힘들고, 특별한 행사일 경우에만 볼 수 있는 의식용불화이다.

 

참고로, 치악산 구룡사의 괘불은 보광루 천정 부분에 모셔져 있으니 찾아보시라.

 

 

범종

 

 

치악산 구룡사의 범종은 1978년도에 제작된 것으로 년도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새겨진 명문을 보면 많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대통령 박정희, 최규하, 이후락, 김용태....

원주 출신의 유일한 대통령인 최규하씨가 국무총리 재직 시절에 대통령과 당시의 내노라 하는 실세들과 치악산 구룡사에 보시하신 범종으로, 현직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찾아보기 드문 범종이다.

더구나 1979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를 하였으니 잘 보존만 하면 장차 보물이 되고 국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닐까 한다.

미래의 문화재를 미리 본다는 마음으로 감상하시라.

 

또한, 자녀를 동반하는 탐방객이라면 범종을 거는 윗부분 고리(용뉴龍鈕라고 함) 부분에서 옛날 설화를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문무왕과 만파식적>

약소국인 신라를 걱정한 문무왕은 죽어 바다의 용이 되어 외적을 막을 것이니 바다에 장사지내라 유언을 하니 감포 앞바다의 대왕암, 문무왕릉에 모시게 됐고,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은 그래도 걱정이 되어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과 합심해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도록 했는데, 나라가 어려울 때 이 피리를 불면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이 낫고, 물결은 평온해지는 등 모든 풍파를 잠재운다는 내용이다.

 

신라에서 범종을 만들면서 범종 고유의 소리를 살리고자 소리통을 설치할 때 종을 거는 고리 부분을 문무왕이 변한 용과, 그 용이 보낸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을 조화시켜서 디자인한 것이 우리나라 고유의 양식이 되었다.

 

범종의 윗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시라.

용이 보이고 대나무 피리의 마디마디가 보이시리라.

 

 

 

 

관음전에는 그림에 꿩이 있고, 거북이가 있고, 용이 있어 치악산 구룡사를 의미하는 후불탱화가 있다.

 

관음전 앞에서 보는 치악산이야말로 사시사철 움직이는 산수화라 할 수 있으니 포토존으로 손색이 없는 자리이다.

 

 

맺는 말

 

사찰은 자유로운 곳이다.

스님들이 수행하고 기거하는 몇몇 전각을 제외하고는 출입이나 탐방이 자유로우니 스스로 경계를 만들지 말고 찬찬히 둘러 볼 일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찰을 비롯한 우리의 문화, 역사, 관광자원은 아는만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