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해설사 자료실

<원주8경> 제1경 구룡사

難勝 2013. 12. 24. 05:09

 

 

원주 8경

 

제1경 구룡사

 

아홉 바다의 용이 구름을 풀어 놓은 듯한 신령스러운 전설이 살아 있는 고찰

 

구룡사 이야기길

구룡사에는 이야기가 있다. 구룡사로 가기 위한 치악산 입구의 황장금표와 금강소나무부터 시작하여 계곡의 나무와 구룡사의 구석구석까지 천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과 함께한 만큼 구룡사로 가는 길목에는 이야깃거리들이 많다. 1,000m가 넘는 준봉들과 계곡이 많은 치악산은 자락자락이 넓고 깊어 산행로도 많고 입구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 구룡사지구다. 1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룡사는 풍수지리적으로 "천 년이 지난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영험한 아홉 바다의 구룡을 풀어 놓는 형상을 한 천하의 승지"라고 하여 서기 668년(신라 문무왕 8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오랜 역사만큼의 전설을 갖고 있는 구룡사 전설을 들어보자.

 

전설이야기

아홉 마리 용 전설

명산인 치악산에 큰절을 세우고자 한 스님이 찾아 들었다. 지금의 구룡골에 접어들었는데 동편에는 시루봉을 쳐다보며 아늑한 협곡으로 되어있는 이곳 풍치의 아름다움은 가히 절경이었다. 그러나 명당을 골라 절을 세우려고 주변을 살펴본즉 대웅전을 앉혀야 할 자리가 꼭 연못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그 연못을 메우려고 했다. 이때 이 연못 속에서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용들로서는 큰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살 곳을 메우다니 그런 무자비한 일을 스님이 어떻게 할 수 있소?" 하고 항의 했다. 그러나 스님은 "존엄하신 부처님을 모시려면 너희들이 사는 연못이어야 하는데 어떡하겠나?" 하고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스님과 용들은 메우겠다 못 메운다 한참 실갱이를 벌이다 용 쪽에서의 제의로 내기를 하여 이긴 쪽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용들은 먹구름을 불러 일으키며 하늘로 치솟으니 갑자기 뇌성벽력과 함께 장대 같은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삽시간에 계곡이 넘쳐 스님이 서 있는 데까지 잠겨버렸다. 이와 같은 용의 재주를 미리 짐작하고 시루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를 건너 매어 놓고 태연히 기다리고 있던 스님은 배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용 쪽에서 볼 때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한 수 부려볼까?"

스님은 부적을 한 장 그려서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연못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르더니 연못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용들은 견딜 수 없어 하늘로 달아났는데 그 중 눈먼 용 한마리가 달아나지 못하고 근처 연못으로 옮겨 앉았다. 스님은 예정대로 그 연못을 메우고 대웅전을 지음으로써 오늘의 구룡사가 들어 앉게 되었다.

구룡사에서 보면 동해를 향한 여덟 개의 골이 된 산봉우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때 여덟 마리의 용이 급히 도망치느라 골이 생긴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 절을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곳이라 하여 "구룡사"라 했다 한다. 지금은 아홉구(九)대신 거북구(龜) 자를 쓰는데 이자를 바꾸게 된 연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거북바위 전설

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쇠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 이조에 들어서면서 치악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좋거나 나쁘거나 구룡사 스님의 검사 하나로 통과되는지라 인근 사람들은 나물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별도로 뇌물을 바치기도 했다. 견물생심이라 아무리 부처님 같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여기엔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성하기는 하였으나 정신도장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럴 즈음 한 스님 이 찾아와 몰락한 이 절을 보고 개탄하면서 이 절이 흥하지 못하는 것은 금에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이니 그 거북바위를 쪼개 없애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절에서는 그 스님의 말을 믿어 거북바위를 쪼개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후부터 찾아오는 신도도 더욱 적어지고 거찰로서의 명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절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럴 때 어느 날 도승 한 분이 찾아왔다. "이 절이 왜 이렇게 몰락하는가 하면 그 이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말했다.

주지스님은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고 물었다.

"본시 이 절은 절 입구를 지키고 있던 거북바위가 절운을 지켜왔는데 누가 그 바위를 두동강으로 잘라 혈맥을 끊어버렸으니 운이 막힌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지 스님은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그 도승은 거북을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아홉구(九)에서 거북구(龜)자를 쓴 구룡사로 쓰기로 했다 한다.

 

보광루, 일주문, 부도… 있는 그대로가 유적이 된다.

구룡사 매표를 지나 구룡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황장금표와 굽이굽이 금송길이 펼쳐지는 구룡 테마 탐방로가 나온다. 다양한 곤충서식지와 나무이야기를 보며 원통문과 사리를 모신 부도탑을 지나 1km남짓한 숲 길을 걷다 보면 구룡사에 도착한다. 구룡사가는 길은 계곡도 아름답고 길도 경사가 없어 산책을 즐기며 걷기에도 그만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보광루와 대웅전 등의 경내의 모습이 보여진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내의 건물들은 대부분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면5칸, 측면2칸의 이층누각의 보광루는 그 규모로도 고찰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오래된 절들은 그 기운만으로도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데, 구룡사 역시 산사에서 들리는 풍경소리만으로도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마당에 자리잡은 미륵불의 인자한 미소에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구룡사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템플스테이도 진행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어지러울 때 산사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구룡사로 가는 교통편은 많은 편이다. 버스 이용 시 원주 시내에서 41번 버스를 이용하면 구룡사 종점까지 운행한다. 종점에서 도보로 10정도 소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