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해설사 자료실

160215 행복원주 강원감영

難勝 2019. 8. 14. 20:40

160215 행복원주 강원감영

 

이 글이 소개 될 즈음이면 겨울의 끝자락이리라.

유난히 추워 웅크렸던 1월을 지나 나들이를 하면 어디가 좋을까.

 

올해가 도전과 창조의 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년이다.

병신년과 관련한 원주 유적은 어디가 있을까?

120년 전의 병신년, 1896년으로 돌아가 본다.

 

그 해에는 강원도청이 춘천으로 정해진 해이며, 원동에 원주성당이 설립된 해이다.

 

[강원도 首部 도시의 상징 강원감영]

 

지금의 강원도 도청 인 강원감영은 1395년 설립되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원주에 있었다.

 

그 수장은 감사, 또는 관찰사로 지금의 도지사와 동급으로 보면 되지만 그 권한은 행정, 군사, 사법, 조세, 교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관장을 하였기에 그 권한은 실로 막강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 있는 곳이 시대의 중심이 된다.

 

그 강원감영이 1895년 폐지가 되고, 120년 전 병신년 1896년 춘천으로 이관하여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 과정을 되돌아보며 역사 속 원주의 자긍심을 찾고, 미래의 교훈을 생각해보자.

 

1895년은 을미년이다.

119년 전의 을미년은 사건이 많은 해이다.

1년 전 갑오년의 개혁정책인 <갑오경장>의 후속 대책으로 조선인의 상투를 자르게 하는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졌고, 일본의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 신체와 머리카락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 하는 유교의 전통을 훼손하고, 국모가 시해당하는 치욕에 저항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니 이를 <을미의병>이라 한다.

 

정국이 어수선하니 전국의 8도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지만, 1년 후인 1896년에 13개의 를 신설할 때 도청이 춘천에 자리잡게 된다.

원주시민에게는 아픈 역사의 한 해이리라.

 

고려 충렬왕 34(1308) 원주목으로 승격하여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조선왕조 500년동안 강원도의 중심지였던 원주.

지금은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을 발판으로 강원도 18개 시.군 중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며, 다시 한 번 강원도의 수부도시로 발돋움 하는 원주.

이런 원주의 상징이 되는 강원감영이 지금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연못, 봉래각, 관풍루, 환선정 등 후원 공간을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중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병신년의 아픈 기억을 잊고, 시민들의 자긍심 고취와 더불어 넉넉한 휴식공간이 제공되리라 믿는다.

 

조선시대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원주를 두고

`산골짜기가 가까워 난을 피하여 숨기가 쉽고, 한양이 멀지 않아 태평시절에는 나아가기가 쉬운 곳`이라 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이들을 받아들여 포용을 하고, 큰 꿈이 있는 이들을 대처로 보내는 넉넉한 원주에 살고 있는 것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

 

- 원주시 문화관광해설사 難勝 목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