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 의해 삼국의 통일이 이뤄지면서 사회는 크게 변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불교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불교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불교의 정치이념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었고, 그 대신에 개인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측면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수용되면서 국가체제의 정비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불교사상을 이용한 측면이 많았다. 반면 통일신라에서는 불교의 철학적, 종교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세계와 인생의 가치에 대한 반성 및 불교신앙을 통한 대중들의 삶의 위안 등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삼국통일을 이루어 낸 중기 왕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또한 태종무열왕(김춘추) 이후의 왕실에서는 왕실의 정당성을 종교적 신성성이 아닌 군주의 도덕적 자질과 백성들에 대한 실제적 혜택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유교적 정치이념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는 불미스럽게 폐위당한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가 이전의 국왕들처럼 신성함을 주장하기에 부족했다는 출신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관련된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시에 불교적 신성성을 근거로 하여 왕실의 권위를 내세운다는 것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불교 수용 이후 신라가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팽창하면서 불교적 정치이념은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선덕여왕대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으로 국가의 세력이 위축되면서 불교적인 수식만으로는 왕실의 권위를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었다. 더욱이 여왕의 즉위에 불만을 가진 일부 정치세력들이 여왕의 교체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또한 격화되어 가는 삼국의 항쟁 속에서 백성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정책들도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이제는 실제적으로 정치를 안정시키고 외국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정치적 운영이 절실하게 요구되었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왕위에 오른 김춘추는 불교적 정치이념 대신 국왕의 실제적 능력과 백성에 대한 덕치(德治)를 강조하는 유교적 정치이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김춘추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웃 나라들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하여 고구려는 물론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외교 활동을 벌였고 가야 왕실 출신인 김유신과 함께 군사력을 증강시키기 위한 노력을 벌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왕실의 입장만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새로운 정치운영 원리를 모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춘추의 아들로 통일을 달성하였던 문무왕이 ‘용은 미물로서 국왕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라는 승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스스로 동해의 용이 되고자 했던 것은 불교적 신성함보다 국가와 백성에 대한 군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왕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삼국통일을 이룬 중기 왕실이 정치운영에 있어서 불교보다 유교의 원리를 중시하였지만 불교에 대한 신앙을 경시했던 것은 아니다.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은 사후에 자신의 유해를 불교식으로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고, 고승들에 대한 왕실의 귀의도 여전하였다. 또한 선왕들을 위한 원찰을 건립하는 것도 중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었고 불교를 정치에 직접 이용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치에서 불교적 이념 대신 유교적 원리가 강조되면서 불교계에 대한 운영방식도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통일 이전에는 자장을 대국통에 임명하고 불교계의 운영을 맡긴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가 직접 불교계를 통제하기보다는 자율적인 운영을 중시하였다.
반면에 통일 이후에는 이러한 불교계의 자체적인 조직과 별도로 중앙에 불교계의 운영을 담당하는 관청인 정법전(政法典)을 설치하고, 일반 관료들이 불교계에 관여하도록 하였다. 또한 주요 사찰을 건립하고 운영하는 일도 승려가 아닌 고위관료들이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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