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전후하여 신라의 학승들은 부처님 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갔다.
아리야발마와 혜업은 진평왕 무렵 중국을 거쳐 인도로 가 부다가야의 보리사와 마라난타사에서 연구하고 사경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통일 후 성덕왕대(702~732년)에 혜초(慧超)는 일찍이 당나라로 가서 바닷길로 인도에 도착하여 불교성지를 두루 순례하고 서역 여러 나라까지 답사한 뒤 육로로 서안에 도착하여 이를 기행문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이다. 지금은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왕족 출신으로 알려진 지장(地藏)은 중국에서 이름을 떨친 고승이었다. 기골이 장대하여 장정 열 사람을 상대할 힘을 가졌고 재주 또한 뛰어났다고 한다. 일찍이 유교를 공부하다 불교에 마음이 기울어져 출가하였다고 한다. 출가한 뒤 오래지 않아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가서 지주(池州)의 구화산(九華山) 봉오리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혼자 수행에 힘썼다고 한다. 그 뛰어난 수행력은 산 아랫마을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져 오래지 않아 큰 절이 조성되었는데, 그 명성이 중국 조정에도 알려졌다고 한다.
이윽고 지장의 이름은 본국 신라에까지 알려져 학승들이 바다를 건너 구화산으로 찾아들었다. 지장은 신라 애장왕 4년(803년)에 99세로 입적하였는데, 앉은 채로 입적하여 시신을 함 속에 넣어 두었는데 3년 뒤에 열어 보니 얼굴 모습이 살았을 때와 똑같았다고 한다.
2. 교학의 발전
통일신라시대는 한국 불교학의 전성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불교이론들이 발전하였다. 당나라와의 활발한 문화교류를 배경으로 새로운 불교이론들이 지체 없이 수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기초로 하여 불교이론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시기였다. 특히 독자적인 교학체계를 수립한 원측, 원효, 의상 등의 불교학은 신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불교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동아시아의 불교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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