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통일신라의 불교학 - 풍수지리설의 유입

難勝 2007. 9. 17. 05:50
 

선종의 수용과 함께 새로운 문화사조들도 수용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풍수지리설이다.


수도를 정할 때라든지 대형 건물을 세울 때에 주변의 산세와 하천의 방향을 고려하는 등의 풍수적 관념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중국의 풍수지리 이론을 덧붙여서 체계적인 풍수지리설이 확립되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선종의 수용이 본격화되던 9세기 중반 이후였다. 그리고 그러한 체계적인 풍수지리설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선승이었던 도선(道詵, 827~898년)이라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도선이 직접 중국에 유학하여 선과 풍수지리의 이론을 배워 온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고려 의종 4년(1150)에 편찬된 도선의 비문에는 도선은 본래 혜철이 동리산에서 선법을 펼칠 때에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어느 신비한 사람으로부터 풍수지리에 대한 이론을 배웠다고 한다.


도선은 광양의 옥룡사에 산문을 세우고 선을 교화하면서 동시에 세속 사회에 풍수지리의 이론을 전하였는데, 특히 개경지역을 방문하여 왕건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것을 예언하였다.


도선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신비적인 이야기들이 적지 않아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풍수지리설의 전개에 선승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은 당시의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도선의 비문에서 그에게 풍수지리를 가르친 사람은 그 이전에 중국에 유학하여 풍수지리를 배웠을 터이고, 도선은 이러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을 것이다.


선승들이 풍수지리설을 전개한 것은 이들이 중국에 유학하는 과정에서 당시 발전하고 있던 풍수지리의 이론에 접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중국과 신라에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리에 대한 지식을 몸에 익히고 이를 이론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선이 전개한 풍수지리설은 풍수이론을 불교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서 지리적 결함을 사찰이나 탑을 건립하여 보완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이다.


풍수지리 이론에 의할 때 사찰은 단순히 불교신앙의 터전일 뿐 아니라 국토의 안정을 보장하는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단순히 지형의 우열을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토지의 균형적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으로서 새롭게 등장한 지방 세력가들이 자신들의 지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이론으로도 활용되었다. 왕건의 왕조 개창 과정에서 보듯이, 지역의 지리적 결점을 합리적으로 보완하면 오히려 지역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尋劍堂'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의 상징 - 법륜  (0) 2007.09.20
불교의 상징 - 卍자  (0) 2007.09.19
통일신라의 불교학 - 선종의 수용 단계  (0) 2007.09.15
9월 15일 무상님 자료입니다.  (0) 2007.09.14
9월 15일 자료입니다.  (0) 2007.09.14